류호정 ‘원피스 운동화 등원’…품위 지적 수준 넘어 ‘젊은 여성의원’ 비하

조문희 기자

“티켓다방이 생각난다”

여성 차별 ‘성희롱’ 댓글

“신선해” 응원 목소리도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4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원피스와 운동화를 착용한 채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4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원피스와 운동화를 착용한 채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류 의원 “그냥 흔한 옷인데…
양복·넥타이로 상징되는
50대 남성 국회 관행 깨야”

류호정 정의당 국회의원이 지난 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입은 의상을 두고 비난성 글이 게시됐다. 이에 맞서 여성 차별, 일부 민주당 지지층의 이중잣대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의 ‘더불어민주당 100만 당원 모임’ 페이지 등에 류 의원의 의상을 비난하는 글이 게시됐다. 한 게시자는 “때와 장소에 맞게 옷을 갖춰 입는 것도 상대방에 대한 예의라고 합니다. 튀고 싶은 girl, 예의 없는 girl”이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 글에는 “때와 장소를 가려라” “관종인가” “국회는 성매매 영업 중” “티켓다방 생각난다” 등 댓글이 달렸다.

류 의원은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 다이아몬드 무늬로 빨간색, 파란색, 흰색 등이 섞인 원피스를 입고 검은 운동화를 신은 채 참석했다. 일부 언론이 본회의장을 나서는 류 의원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그의 복장을 두고 누리꾼들은 갑론을박했다. 포털사이트의 뉴스 댓글엔 “국회로 바캉스 갔냐” “BJ(인터넷방송 진행자)도 아니고” “비례대표에 좌파 여성 청년정치인 수준 딱 보여주는 케이스” 등 비난성 댓글이 달렸다.

이와 달리 “복장과 일처리가 무슨 상관” “보수적인 국회에서 파격적인 의상을 보니 신선하고 좋다” 등 류 의원을 옹호하는 글도 일부 있었다. 고민정 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류 의원)가 입은 옷으로 과도한 비난을 받는 것에 대해선 동의할 수 없다. 오히려 국회의 과도한 엄숙주의와 권위주의를 깨준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썼다. 비난글이 올라온 페이스북 페이지에도 “이 사진이 비아냥 당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국회에 정해진 복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 하는 행동이 구태면 옳은 방향성 제시 자체가 어렵다”는 글이 올라왔다.

국회의원이 복장으로 논란이 된 건 류 의원이 처음은 아니다. 2003년 유시민 당시 국민개혁정당 국회의원도 캐주얼한 복장으로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다. 당시 재선거로 당선된 유 의원은 의원 선서를 하러 국회 본회의장에 가면서 넥타이를 매지 않고 회색 티셔츠와 남색 재킷, 흰 면바지를 입었다. 동료 의원들은 유 의원을 향해 “여기 탁구 치러 왔느냐” “국민에 대한 예의가 없다” “밖으로 나가라” 등 목소리를 내며 항의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집단퇴장해 의원 선서가 미뤄지기도 했다. 유 의원은 결국 정장에 넥타이를 맨 채 다음날 의원 선서를 해야 했다.

당시나 지금이나 국회의원의 복장 규정은 따로 없다. 국회법 25조가 “의원은 의원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하여야 한다”고 포괄적으로 규정할 뿐이다. 한복을 입고 등원한 의원도 있었다. 2004년 강기갑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은 수염을 기른 채 두루마기를 입고 고무신을 신었다. 그 모습이 영화 <반지의 제왕> 속 마술사 ‘간달프’와 닮았다고 해서 ‘강달프’란 별명을 얻었다. 강 전 의원의 ‘농민’ 복장은 유 전 의원의 ‘빽바지’ 논란 때보다는 거부감이 덜한 편이었다.

전문가들은 류 의원을 향한 비난이 여성 차별적 시각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유 전 의원 등의 사례와 다르다고 분석했다. 손희정 문화평론가는 “유시민의 빽바지가 (보수 측이) 진보 정치인들의 ‘자격 없음’을 의상을 통해 연결 지은 사례라면, 류 의원에 대한 댓글은 젊은 여성 정치인을 폄하한 것”이라며 “여성은 끊임없이 외모, 성적 이미지로 축소 평가된다. 의원은 옷차림이 아니라 의정활동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 평론가는 이어 “굳이 이미지로 평가한다면, 똑같이 넥타이를 맨 사람만 있던 국회에 다른 색을 더해줬다는 걸 오히려 인상적으로 봐야 하지 않나”라고 물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내로남불’을 지적했다. 이 교수는 “과거 유시민의 복장에 대해선 당시 민주당계 지지자들이 ‘파격’ ‘탈권위’ 등 키워드를 동원해 지지를 표했다. 그런 분들이 왜 류호정의 파격은 받아들이지 못하는가”라며 “일부 386이 혁신 단어를 선점하고 있었는데, 약자·소수자를 대변하는 상징으로 여성이 등장하면서 충격이 생겼다. (386은) 자기들이 생각하는 진보-보수 프레임으로 끌고 가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이어 “현재 한국 의회 민주주의에서 자신의 소수자성을 대변하는 집단은 여성밖에 없다. 이들마저 배제된다면, 장애인·이주노동자 등 다른 소수자는 전혀 보이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류 의원은 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나는 ‘입법 노동자’이고 국회는 나의 일터다. 일하러 가는 것이기 때문에 정장 아닌 것도 입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양복과 넥타이로만 상징되는 50대 남성 중심 국회 관행도 깨고 싶었다”고 말했다. 류 의원에 따르면 그가 전날 입은 옷은 지난 3일 청년 국회의원 포럼 ‘2040청년다방’에 입고 간 것이다. 당시 류 의원은 공동대표인 유정주 민주당 의원과 함께 ‘오늘 입은 옷을 내일 본회의에도 입고 가자’고 다짐했다. 류 의원은 “어제 입었던 옷은 굉장히 흔한,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피스였다. 그럼에도 성희롱성 발언이 쏟아진 것은, 우리 일상 속에서 보통의 여성들을 우리 사회가 그동안 어떻게 보았는지를 보여준 것 같다”면서 “다만 내가 공인이다보니 더 눈에 띄었을 뿐이다. 더 이상 침묵할 게 아니라 이런 관행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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