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 또 해고’ 이게 다 코로나 때문인가

반기웅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비정규직을 강타한 코로나19발 해고 도미노가 상용직 노동자로 향하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 해고’를 막기 위해 기업체에 지원하는 고용유지지원금을 한시적으로 두 달 연장하기로 했다. 그런데 정작 기업이 고용유지지원금을 거부한다. 고용유지지원금을 받고 정리해고를 단행하는 기업도 있다. 이들 기업은 해고 회피 절차를 건너뛰고 폐업 수준의 대규모 정리해고를 추진하고 있다. 정리해고 물결 속에서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는 기업의 ‘표적 해고’ 대상에 오른다.

까다로웠던 공장 폐업, 마트 폐점, 사업장 폐쇄가 코로나19 앞에서 쉽게 이뤄진다. 국내 공장 문을 닫고 중국·베트남 등 해외공장으로 일감을 돌리는 꼼수 폐업도 빈번하다. 가뜩이나 악화일로를 겪던 대형마트는 코로나19 국면에서 거침없이 폐점을 단행한다. 마트 노동자들은 해고와 다름없는 자발적 퇴사로 일자리를 잃고 있다. 무책임한 해고에 대한 노동자들의 반발은 코로나19 재난 상황에 따른 ‘생존 전략’이라는 사측의 명분 앞에 힘을 잃는다.

코로나19 파고 속에서 재계는 노동자를 더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더 쉬운 해고는 코로나19 이후 ‘뉴노멀’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일터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생각한다. 이게 정말 다 코로나19 때문인가.

대우버스의 ‘자해 경영’

자일대우상용차(이하 대우버스)는 65년 전통 버스제조업체다. 대우자동차 버스사업부 후신으로 2003년 영안그룹이 인수한 뒤에도 대우버스는 현대기아차와 국내 버스 시장을 양분해왔다. 영안그룹은 그동안 ‘쉽게 고용해 쉽게 자른다’는 기조 아래 대우버스 인력을 운용했다. 주로 한달 단위 계약직을 채용해 현장을 채웠다.

지난 3월 대우버스는 자동차 생산 거점을 국내 공장(울산)에서 베트남 공장으로 변경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주력 모델을 베트남에서 제조해 한국으로 수입한다는 전략이다. 울산공장은 폐쇄 수순을 밟게 됐다.

이후 대우버스는 계약 해지와 희망퇴직을 통해 직원 239명을 내보냈고, 지난 8월에는 울산노동청에 386명에 대한 정리해고 계획을 신고했다. 현재 희망퇴직자를 제외한 최종 해고 대상자는 377명으로 전체 직원 447명의 84%에 이른다. 추석 이후 오는 10월 4일, 377명의 대우버스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는다.

근로기준법은 정리해고에 대해 엄격한 제한 규정을 둔다. 노동자의 귀책이 없는 ‘해고’이기 때문에 사측에 정리해고 회피를 위해 최대한 노력할 것을 주문한다. 불가피하게 정리해고를 할 경우에는 노동자 대표와 사측이 성실한 협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렇다면 대우버스는 어떤 해고 회피 노력을 했을까. 올해 초(1~3월) 대우버스 울산공장의 생산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5% 증가했다. 같은 기간 버스업계 평균 생산량이 38% 감소한 것과 대비하면 준수한 실적이다. 노선버스는 1년 단위로 계약을 체결하는데 대우버스는 잔여 계약 물량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4월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회사가 기존 생산 주문을 일방적으로 취소하면서 생산량이 급감했다. 노조는 사측이 버스 670대 생산 주문을 취소하고 고객사에는 베트남공장에서 생산한 차량을 구매할 것을 요청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자일자동차판매(대우버스 판매사) 법인은 지난 4월 17일 주요 고객사인 KD운송그룹 측에 ‘귀사의 발주 물량 가운데 일부 물량 208대는 해외공장(베트남)에서 생산해야 할 상황’이라며 양해를 부탁한다는 사장 명의 공문을 전달했다. 이후 7월까지 대우버스의 국내 생산·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20%가량 감소했다.

그럼에도 대우버스는 코로나19로 인한 업황 악화로 정리해고를 피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우버스의 버스판매량은 2013년 3900대에서 지난해 2000대 수준으로 줄어들었고, 2018년과 2019년에는 각각 125억원, 2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지난 9월 8일 대우버스 노동자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금속노조 제공

지난 9월 8일 대우버스 노동자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금속노조 제공

최근 2년간 영업 실적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대우버스는 그동안 꾸준한 수익을 내왔다. 지난 2016년과 2017년에는 57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영안그룹은 대우버스 인수 이후 공장부지 등 1171억원 어치 자산을 매각했다. 영안그룹의 대우버스 인수대금은 564억원으로 자산 매각만으로 607억원의 차익을 남긴 셈이다.

무책임한 경영진의 공장 폐쇄와 정리해고를 두고 ‘자해적 경영’이라는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대우버스는 선 정리해고, 후 재채용 방침을 내놨다. 계획대로 정리해고 절차를 밟고 향후 버스 주문·생산량이 증가하면 150명의 노동자를 재채용하겠다는 것이다. 재채용 조건은 기존 임금 수준의 60% 삭감이다. 박재우 대우버스 노조 지회장은 “회사가 의도적으로 위기를 조장해 위장 폐업을 하려는 것”이라며 “노조는 전면적 전환배치와 순환휴직, 근로시간 단축과 같은 상생안을 제시했지만, 회사는 고용유지지원금까지 받아 놓고 정리해고만을 고집한다”고 말했다.

김미혜씨(가명·38)는 지난 7월 9일 동료로부터 회사 폐업 소식을 들었다. 본사 홈페이지에 청산 통보가 올라왔다고 했다. 믿기 어려웠다. 불과 이틀 전 김씨는 회사와 휴업 관련 노사합의를 맺었던 터였다. 김씨의 회사는 한국산연이다. 1973년 경남 마산자유무역지역(현 창원시)에 문을 연 한국산연은 일본 산켄전기가 100% 투자해 만든 산켄전기 자회사다. 김씨는 18년을 한국산연에서 일했다. 김씨 입사 이후 한때 재직직원 600명 규모로 성장했던 회사는 2007년 266명을 감원한 대규모 구조조정을 기점으로 사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수차례 구조조정 끝에 38명 규모의 작은 회사가 됐다. 회사 청산 통보 이후 사측은 8월까지 희망퇴직 서명을 하지 않으면 퇴직금과 위로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알려왔고 남은 동료들도 떠났다. 이제는 김씨를 포함해 생산직 직원 16명만 남았다. 김씨는 “본사가 한국시장에서 철수하는 게 아니라 다른 지역에 공장을 세워 운영하고 있다”며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을 쓰기 위해 일부러 문을 닫은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악용하는 기업들

일본 산켄전기는 왜 지금 청산 절차를 밟을까. 산켄전기는 지난 2016년에도 국내에서 자본 철수를 시도한 바 있다. 당시 한국산연 노동자들은 일본 원정 투쟁을 벌이는 한편 일본 노동단체와 연대를 통해 폐업을 막아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다. 코로나19로 원정 투쟁이 불가능하고 산켄전기와 직접 교섭도 어렵다. 오해진 한국산연노조 지회장은 “코로나19로 연대와 투쟁을 하지 못하는 상황을 악용한 꼼수 폐업”이라며 “노조는 그동안 사측에 설비투자와 생산 물량 확보를 요구했지만 사측은 현장을 방치해 폐업을 유도했다”고 말했다.

대구 달성군 소재 자동차 부품 제조사 한국게이츠도 지난 8월 공장을 폐쇄했다.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조치라는 게 사측의 설명이었다. 한국게이츠는 한국시장에서 연평균 60억원의 이윤을 남기는 흑자기업이다. 공장은 폐쇄했지만 한국시장을 포기한 건 아니다. 중국 공장에서 부품을 만들어 거래처에 공급한다. 노동자들은 부당 폐업이라며 반발하고 있지만 사측은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 9월 7일에는 금속노조와 해고 노동자 등 모두 28명을 상대로 출입 금지 등 가처분을 신청하며 배상액 5000만원을 청구했다.

또 다른 흑자 기업인 AVO카본코리아(자동차 부품업체)도 지난 7월 31일 경영상 이유로 노동자 13명을 정리해고했다. 해고자 13명 모두 금속노조 조합원으로 노조는 사측의 행위를 노조 탄압과 부당노동행위로 보고 있다. 해고를 염두에 둘 만큼 경영 상황이 나쁘지 않은 상황에서 노조 간부를 솎아내기 위한 ‘표적 해고’라는 것이다. 사측은 코로나19로 인한 실적 악화를 정리해고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회사는 코로나19 국면에서 고용유지지원금조차 신청하지 않았다. 카본코리아의 이익잉여금은 70억원에 달한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19가 일부 기업에 구조조정을 수월하게 할 수 있는 ‘호재’로 악용된다”며 “당장 대책 마련이 어렵다면 사안을 논의할 협의체라도 구성해야 하는데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모두 손을 놓고 있다”고 말했다.

폐업으로 가동이 중단된 대구의 자동차부품 공장. 반기웅 기자

폐업으로 가동이 중단된 대구의 자동차부품 공장. 반기웅 기자

코로나19발 폐업·해고는 항공업과 제조업을 거쳐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온라인 쇼핑 확산으로 인한 매출 감소로 대대적인 폐점을 예고했던 오프라인 대형마트는 코로나19를 계기로 폐점에 속도를 내고 있다. 홈플러스는 지난 7월 홈플러스 경기 안산점과 대전 탄방점을 부동산 개발업체에 매각했다. 이어 대전 둔산점에 대해서도 매각 의사를 밝혔다. 이번 매각은 모두 폐점을 전제로 이뤄진다. 이전에도 매각 사례가 있었지만, 매각 이후 ‘월세 영업’은 유지하는 ‘세일 앤 리스백 방식’이었다.

이번에 폐점·매각 리스트에 오른 홈플러스 안산점은 전국 매장 가운데 매출 상위 3위 안에 속하는 흑자 매장이다. 안산점 직원수는 218명으로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다. 협력업체, 도급 노동자, 입점업체를 포함하면 안산점 관련 종사자는 1000명에 달한다. 그런데 왜 홈플러스는 지역 거점 매장을 매각하는 것일까. 홈플러스 대주주인 사모펀드 MBK파트너스는 이번 자산유동화를 오프라인 유통업 불황과 코로나19에 따른 매출 하락에 따른 선택이라고 설명한다. 지난해 홈플러스의 매출액은 7조3002억원, 영업이익은 1602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4.7%, 38.9% 감소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사측의 이번 자산유동화를 투자금 회수를 위한 ‘먹튀’를 벌인다고 본다. 코로나19를 명분 삼아 폐점을 강행한다는 것이다. MBK파트너스는 2015년 홈플러스를 인수한 뒤 부지 매각 등 2조원이 넘는 자산을 팔아 대출금을 상환해왔다. 인수 당시 MBK파트너스는 홈플러스에 1조원을 투자할 것을 약속했지만 실제 투자는 2600억원에 그쳤다. 반면 같은 기간 경쟁 업체인 이마트는 경쟁력 강화를 위해 2조3500억원가량을 투자했다. 이 때문에 홈플러스는 자사에 대한 투자를 외면한 채 대주주가 빌린 돈을 갚는 데 몰두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코로나19가 부른 재난자본주의

MBK파트너스 인수 이후 9300여명의 홈플러스 노동자(직고용 4300명·간접고용 5000명)가 회사를 떠났다. 노조는 향후 사측의 대대적인 폐점·매각으로 대량 실직이 발생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사측은 폐점 이후 인근 점포 전환배치 등을 통해 전직원 고용을 약속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공약에 가깝다. 김영준 홈플러스 노조 교육선전국장은 “폐점 매장 인근에 200명이 넘는 인력을 수용할 여력이 있는 점포가 없다”며 “분산 수용한다면 최저임금 노동자들이 2시간 거리 장거리 출퇴근을 할 수밖에 없는데 대부분 그만둘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폐점을 단행한 롯데마트의 경우 같은 이유로 대규모 실직 사태가 발생한 바 있다. 노동자들이 마트의 폐점을 사실상 해고 통보로 받아들이는 이유다.

해고 도미노 속에서 재계는 코로나19를 내세워 노동자의 해고 요건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3월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정리해고 요건 완화 등 개선 과제를 담은 경제활력 제고와 고용·노동시장 선진화를 위한 경영계 건의’를 국회에 제출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코로나19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계 긴급제언’을 통해 재계의 요구사항 54가지를 정부에 전달했다. 재계 요구의 핵심은 규제 완화를 통해 유연한 해고와 노동시간을 늘려달라는 것이다. 최근 경총은 ‘코로나19 극복과 경제활력 제고를 위한 세제개편 토론회’를 열고 법인세와 상속세 인하를 재차 주장하기도 했다.

노동계는 재난자본주의를 경계하고 있다. 재난자본주의는 코로나19와 같은 재난으로 사회가 혼란에 빠졌을 때 기업이 자신의 이익을 높이기 위한 약탈 행위를 벌이는 것을 뜻한다. 지난 IMF 외환위기 상황에서 자본은 노동자의 해고를 자유롭게 하기 위한 유연화 작업을 벌였고, 이후 정규직의 비정규직화와 불안정 고용은 한국사회의 뉴노멀이 됐다.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직업환경의학전문의)는 “외환위기 이후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는 급격히 높아졌고, 치솟은 자살률은 20년 동안 떨어지지 않고 있다”며 “이번에도 코로나19를 이유로 무분별한 정리해고와 규제 완화를 용인한다면 이전과 같은 재난자본주의의 폐해를 겪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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