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덕이는 중소기업들, 10월 해고대란 오나

이하늬 기자
김포공항의 이스타항공 창구. 이스타항공은 9월 7일 605명에게 해고통보를 했다. 권도현 기자

김포공항의 이스타항공 창구. 이스타항공은 9월 7일 605명에게 해고통보를 했다. 권도현 기자

오는 10월, 코로나19로 인한 실업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고용유지지원금 축소와 코로나19 재확산 상황 그리고 숫자가 모두 실업을 향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직원들 권고사직을 할 수밖에 없겠죠.”

윤영발 한국자동판매기운영업협동조합 이사장의 말이다. 윤 이사장은 경기도에서 자동판매기운영업을 한다. 윤 이사장과 같은 중소기업의 가장 큰 고민은 ‘고용유지지원금’이다. 직원 40명 중 18명이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아 휴직 중이다. 경륜장·전시장 같은 거래처는 3월부터 아예 문을 닫았고, 대학과 고등학교 자판기 매출도 90% 이상 감소했다.

고용유지지원금은 경영난을 겪는 사업주가 감원 대신 휴업·휴직을 하면 정부가 인건비 일부를 보전하는 제도다. 원래 정부 지원은 휴업수당(평균 임금의 70%)의 50~67%였으나 코로나19 확산 이후 90%까지 올랐다. 윤 이사장은 “4대 보험과 퇴직금을 합치면 실제로 회사가 부담하는 금액은 10%가 아닌 30% 정도”라고 말했다.

특정 업종 빼고 고용유지지원금 줄어

문제는 고용유지지원금 지원 수준이 9월 말(3월에 신청한 기업 기준)이면 다시 67%로 내려간다는 점이다. 정부는 여행·항공업 등 8개 특별고용지원업종만 90% 지원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윤 이사장은 “정부 지원이 67%로 내려가면 실제 사업주가 부담하는 금액은 33%가 아니라 50% 정도라고 보면 된다”며 “매출이 반 토막 난 지금 상황에서는 감당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 16일 “지불여력이 회복되지 않은 중소기업들이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해 자칫 대량 실업 사태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최소한 올해 말까지는 특례 지원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아직까지는 특례 연장 계획이 없어 180일을 지원받은 사업장은 9월 말부터는 67%만 지원받는다.

특별고용지원업종 종사자라고 해서 실업의 위험에서 비켜 있는 건 아니다. 항공업계에서는 이스타항공에서 처음으로 정리해고가 발생했다. 이스타항공은 7일 605명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정리해고가 끝나면 남는 직원은 정비 부문 등 필수인력 576명이다. 올해 초 이스타항공 직원은 1600여명이었다. 이스타항공이 정리해고를 철회하지 않는 한 605명은 10월 14일 일자리를 잃는다.

이스타항공 노동조합은 이번 정리해고에 대해 회사가 해고회피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노동조합이 회사에 먼저 순환 무급휴직을 제안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미납된 고용보험료 5억원을 내면 고용유지지원금도 받을 수 있었지만 끝내 납부하지 않아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박이삼 노동조합 위원장은 “코로나19를 핑계 삼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고용유지지원금 대신 해고를 택하는 회사도 생겨나고 있다. 부산에 있는 한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A씨(33)는 3개월 휴직을 마치고 최근 회사로 복귀했다. A씨는 휴직 기간 동안 휴업 수당을 받았다. 하지만 회사는 A씨를 기존 부서가 아닌 전혀 다른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로 발령을 냈다.

A씨는 “회사가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았기 때문에 당장 해고할 수 없으니 일단 불러들인 다음에 이런 식으로 ‘알아서 나가라’는 압박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은 사업장은 지원이 종료된 시점에서 1개월 이후까지 고용을 유지해야 한다. 이어 A씨는 “고용유지지원금 90% 지원이 180일까지 가능한 것으로 아는데 회사는 그 10%도 부담하기 싫은 것 같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코로나19 1차 유행기였던 3~4월에는 연차사용 관련 제보가 많았지만 8월에는 무급휴직이나 해고 강요 제보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해고금지 기간 동안 무급휴직을 우회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오진호 직장갑질119 활동가는 “고용유지지원금이 지난 6개월 동안 어느 정도 역할을 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추가 대책이 없다면 해고 대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고용유지지원금 대신 권고사직을 택하는 현실에 대해 사업자들도 할 말은 있다. 한국표면처리공업 협동조합 관계자는 “도금은 숙련공이 필요한 업종이라 해고나 재고용이 쉽지 않아서 버티고 버텼다”며 “그럼에도 예상보다 코로나19 상황이 길어지니 포기하는 업체가 하나둘 생긴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코로나19 국면에서 50개 회원사가 문을 닫았다.

권고사직 택할 수밖에 없는 사업자들

코로나19 재확산과 강화된 사회적 거리 두기도 실업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된 이후,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한 사업장은 9월 첫째 주 1325곳, 9월 둘째 주 880곳으로 집계됐다. 이들 중 상당수가 사회적 거리 두기의 영향을 받은 식당·카페·PC방 등 소규모 사업장이다. 경기가 회복되지 않으면 고용유지지원금을 받던 노동자 대부분이 실업자로 돌아설 수 있다. 오진호 활동가는 “업장이 쉬니까 처음에는 무급휴가, 휴업이었다가 결국은 해고로 이어졌다는 제보가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통계청의 8월 고용동향에는 코로나19 재확산 이후 상황은 반영되지 않았다”며 “8월 중순 이후 상황은 9월 고용동향에 반영될 텐데 취업자 수가 큰 폭으로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망했다. 통계청 8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전인 2월 대비 8월 취업자 수는 60만명 감소했다.

김유선 이사장은 이어 8월 고용동향도 그리 좋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5월 중순부터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됐고 ▲정부의 노인 일자리 사업이 재개됐고 ▲전국민재난지원금이 지급되면서 소비가 진작됐음에도 취업자가 감소한 것은 코로나19의 영향이 깊고 크다는 것이다. 2월 대비 취업자 수는 3월 68만명, 4월 102만명, 5월 87만명, 6월 79만명, 7월 71만명 감소했다.

각각 사정은 다르지만 해고 대란을 막기 위해 기댈 곳은 정부밖에 없다. 윤영발 이사장은 1988년부터 자판기 업계에서 일했다. 그는 “32년 동안 이렇게 힘든 건 처음”이라며 고용유지지원금 비율을 90%로 유지해줄 것을 호소했다. 비율이 67%가 되면 직원들을 내보내야 한다. 한국표면처리공업 협동조합 관계자도 “고용유지지원금은 사업자가 아니라 노동자를 위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A씨는 정부가 나서서 고용을 유지할 여력이 있으면서도 해고에 나서는 사업장, 정부 지원을 받은 이후 무급휴직이나 해고 압박을 하는 사업장을 감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이삼 위원장도 “이스타항공이 정말로 고용보험료 5억원을 낼 돈이 없었는지 의문이다”라며 “이런 상황의 사업장이 더 생겨서는 안 된다. 정부의 감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진호 활동가는 “코로나19가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지불 능력이 부족한 영세기업에 모든 사람을 다 책임지라고 할 수는 없다. 고용유지지원금을 이어가는 것은 물론이고, 이미 해고된 사람들을 위해서도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유선 이사장도 “다른 경제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면 다른 방법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감염병 위기 속에서는 정부 지원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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