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이전, 실패 말하긴 이르다

주영재 기자
부산시는 지난 8월 13일 부산 문현혁신도시 복합개발사업 3단계 민간사업자 우선협상 대상자에 맥서브 컨소시엄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부산 문현혁신도시 복합개발사업 3단계 조감도이다. 부산시 제공

부산시는 지난 8월 13일 부산 문현혁신도시 복합개발사업 3단계 민간사업자 우선협상 대상자에 맥서브 컨소시엄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부산 문현혁신도시 복합개발사업 3단계 조감도이다. 부산시 제공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지방 이전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거주지와 멀어지면서 퇴사하거나 이직한 사람도 많았다. 건강보험공단 본부가 있는 원주 혁신도시에서 서울까지 1시간 10분~2시간 걸린다. 마음만 먹으면 출퇴근을 못 할 거리는 아니지만, 최근에는 정착하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 건강보험공단에서 일하는 김승하씨(30)도 지난해 결혼하면서 원주에 정착했다. 그는 “원주 혁신도시에 있는 13개 공공기관을 보면 사내부부가 늘고, 정착하는 사람의 수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 혁신도시로 이전한 한 공공기관의 직원인 A씨도 “이전 후 여성 직원을 중심으로 퇴직·이직이 많았는데 이전 7년째인 지금은 전 직원 중 20% 정도만 외지에 집이 있고 나머지는 모두 대구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전 후 시간이 흐르면서 ‘현지화’도 이뤄지고 있다. 퇴직으로 결원이 생기면 지역 인재를 채용하면서 지방에 연고를 둔 직원의 비율이 높아졌다.

지역에 온기 불어넣는 ‘불씨’

여전히 해결해야 할 불편함은 있다. 교육·문화 시설이 부족하고 상가 공실률도 높은 편이다. 특히 교통 문제가 첫손에 꼽힌다. 김씨는 “혁신도시에서 버스터미널이나 기차역을 가려고 해도 버스가 아직도 한 시간에 한대 정도밖에 없어서 대부분 택시를 탄다”면서 “이동하기 어려워 자차를 이용하다 보니 혁신도시 전체에 주차공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공공기관 이전과 혁신도시 건설은 지방에 성장 거점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공공기관이 이전한 도시를 매력적이고 품격있는 도시로 건설하고, 연관 기업들이 함께 들어와 경제·산업 활동의 거점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혁신도시 건설의 완료 시점은 2030년이다. 끝이 아니고 아직도 가야 할 길이 10년이나 남았다.

국토연구원은 지난 8월 5일 혁신도시 중간 평가라고 할 만한 보고서를 냈다. 수도권 인구 분산 효과와 지역 내 기업과 일자리 유치가 눈에 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 10개 혁신도시의 인구는 20만4000명으로 2030년 계획인구의 76.4% 수준이다. 혁신도시에 입주한 기업은 1704개이다. 정주 환경과 관련해 교통과 의료에서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나왔다. 보육시설, 공원, 교통 시설의 접근성은 1기 신도시와 비슷하나 문화와 체육시설은 여전히 낮은 것으로 조사돼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연구원들은 성과평가는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김은란 국토연구원 국가균형발전지원센터 연구위원은 “인구와 일자리만이 아니라 실제 혁신성장의 기반이 어느 정도 마련됐고, 정주 환경은 어느 정도 갖춰졌는지, 상생발전의 효과는 있는지를 골고루 봐야 한다”면서 “첫 이전 이후 7년 정도의 시간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시간을 조금 더 줘야 한다”고 말했다.

서연미 국토연구원 국가균형발전지원센터 연구위원은 “이전 공공기관이 지역 인재를 채용하고 각종 지역발전 사업을 벌여서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내고 있지만 아직 이전 기관 자체만으로 경제활동의 거점을 만드는 건 한계가 있다”면서 “기업을 끌어들여서 혁신공간을 만드는 것이 혁신도시의 과제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 점에서 인재 유치를 위해 정주 환경을 대폭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서 연구위원은 혁신도시가 창업 활동을 지원하는 공간으로서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타트업과 기성 기업의 학습과 교류의 장이 되도록 혁신도시가 플랫폼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선진 사례로 유럽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 컨퍼런스인 핀란드의 슬러시(Slush)와 교사 없는 공동 교육 방식을 택한 프랑스의 인재양성 사업 ‘에꼴42’를 들었다.

지방은 공공기관 이전을 단비처럼 여긴다. 나중규 대구경북연구원 산업혁신연구실 실장은 공공기관 이전을 정부 정책 중 최고로 치고 있다. 나 실장은 “효과가 없다는 건 중앙에서 보는 시각”이라면서 “12개 공공기관 직원들이 내려와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힘이 된다. 굉장히 큰 불씨이다. 완전히 지역이 달라졌다”고 밝혔다. 공공기관 직원도 이전의 긍정적 효과를 강조했다. 김승하씨는 “지역경제 활성화나 지역주민과의 상생을 발전시키는 효과는 확실히 있다”면서 “기관 행사에 지역 기업체를 이용하거나 지역 물품을 구매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고, 지자체와 지역주민이 협업해 같이 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공공기관 이전을 계속하면 충분히 장점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주거공간과 교통 인프라만 잘 뒷받침되면 직원도 거부감 없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A씨도 “기왕에 혁신도시를 계속 키울 거라면 더 많은 공공기관이 이전해서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지역 인재 붙잡고, 양성하는 효과도

공공기관 이전의 성과도 조금씩 구체화하고 있다. 문현혁신도시 내에 주택도시보증공사, 한국자산관리공사 등을 유치한 부산시는 금융 특성화 기능을 꾸준히 집적하고 있다. 이종필 부산연구원 경제·산업연구실 연구위원은 “해양금융과 관련해 해양공사가 만들어졌고, 산업은행과 무역보험공사에서 선박금융을 담당하는 부서를 부산에 유치했다”면서 “블록체인 특구로 지정돼 디지털 원장을 활용한 지역화폐 시범 사업도 실시하는 등 나름대로 금융 중심지라는 브랜드를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공공기관 이전은 지역 인재를 키우는 효과가 있다. 부산대의 경우 파생금융 전문인력 과정, 해양대에 해양금융 전문인력 양성 과정이 설치돼 지역에서 금융 전문인력을 양성한다. 김은란 연구위원은 “공공기관이 이전하고, 지역 인재 채용을 30%를 목표로 하면서 지역 내에 안정적인 일자리도 늘었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현재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선발 지역을 광역화하자는 의견이 나오지만 공공기관, 지역대학의 이해관계가 달라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공공기관 이전, 실패 말하긴 이르다

전남 지역의 경우 산업 기반이 영세해 15~39세 청년층이 해마다 6000여명씩 유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기관은 지역에 인재를 붙잡고, 양성하는 효과가 있다. 전남 나주에 있는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는 에너지, 정보, 문화, 농업군에 속한 16개 공공기관을 품었다. 문화예술에 강점이 있고, 태양광 발전량, 친환경 농업 생산량이 전국 1위라는 점에서 혁신도시 기능군과 지역 여건이 잘 맞았다. 그중에서 핵심은 한전을 중심으로 한 에너지 관련 공기업·공공기관이다. 최근에는 에너지 관련 연구개발의 거점이 될 한전공대 유치와 함께 8.2기가와트 규모의 풍력발전소 국책 사업도 진행하면서 ‘에너지밸리’로 부상하고 있다.

김대성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광주전남 혁신도시가 다른 혁신도시와 달리 빠르게 성장한 이유는 두 지자체가 상생해서 공동으로 한국전력을 유치했기 때문이다”면서 “한전과 전력거래소, 한전 자회사인 한전KDN, 한전KPS가 일종의 에너지 클러스터를 형성하면서 나주 ‘에너지밸리’에 460개 기업이 들어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기업 유치로 청년층을 붙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공공기관 이전 시즌2

정부는 2기 공공기관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부산시는 한전과 같이 실제 사업을 집행하는 기관들의 파급효과가 크다는 게 눈에 보인 만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 유치를 희망하고 있다. 이종필 연구위원은 “2018년 혁신도시 이전이 마무리된 후 새롭게 공공기관이 많이 생겼는데 수도권에 집중해 있다”면서 “정부가 균형발전이라는 철학을 내세우고 그 수단으로 공공기관을 이전시켰다면 신규 공공기관도 그 기능에 맞는 혁신도시로 이전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지자체가 눈여겨보는 공공기관들은 예산과 인력이 많은 기관, 또 그 예산을 지역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관들이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아 연구개발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는 기관도 선호한다. 김대성 책임연구위원은 “공공기관 이전 시즌2는 기존의 1차로 이전한 공공기관과 지역의 산업과 연계될 수 있는 기관을 위주로 선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전 대상 공공기관 직원들의 교육·주거·문화·편의시설 수요를 분석해 택지조성 설계에 반영하고 사전에 구축해야 말했다. 김 책임연구위원은 “이전 기관의 수요를 철저히 파악해 맞춤형으로 정주 요건을 마련한 후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대전에 본사를 둔 조폐공사는 지역 제과업체인 성심당과 협업해 골드바 모양의 피낭시에 케이크를 출시했다. 공공기관이 지역경제에 기여하는 모범 사례로 볼 수 있지만 한계는 있다. 공공기관은 전국 단위 사업을 하는 특성상 지자체에서 지역 특화 사업을 요청하기 어렵다. 지역에 본사를 둔 공공기관이 지역을 위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면 상당히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견해가 나온다. 또 공공기관들이 수익의 일정비율을 의무적으로 지방에 재투자하게 하고, 투자한 만큼 법인세를 감면하는 방안도 제안된다. 예컨대 부산에 있는 금융공기업들이 수익의 5%만 재투자하면 부산시는 연간 500~600억원 정도 SOC나 복지에 쓸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

나중규 실장은 “대구는 산업단지관리공단이나 산업기술평가관리원 등 기업을 지원해주는 기관이 많이 들어왔는데 전국 단위라 대구 지역을 밀착 지원하기엔 한계가 있다”면서 “이런 제한을 풀면 지역 산업과의 연계를 높이고 혁신도시가 지역의 거점이 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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