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10년, 마창진은 괜찮나요?

이하늬 기자
경남 창원 마산합포구 창동 거리 입구에 ‘임대문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하늬 기자

경남 창원 마산합포구 창동 거리 입구에 ‘임대문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하늬 기자

대구경북을 시작으로 광주전남, 대전세종 등 전국 곳곳에서 행정통합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수도권에 밀리는 지방이 짜낸 고육지책이다. 덩치를 키워서 한번 맞부딪혀 보자는 것이다. 이전까지 이뤄진 통합은 도시와 농촌의 통합이 대부분이었다. 거대도시로의 통합 이야기는 많으나 실제 참고할 만한 사례가 없다는 뜻이다. 시끼리의 통합은 창원시가 유일하다.

마산, 창원, 진해 이른바 마창진은 2010년 창원시로 통합됐다. 이 통합으로 창원시는 인구 108만명, 예산규모 2조2000억원, 서울(605㎢)보다 넓은 737㎢ 면적을 가진 거대도시가 됐다. 당시 정치권에서 내놓았던 규모의 경제, 균형발전 등 통합효과는 현실이 됐을까. 전국에서 통합 논의가 쏟아지는 가운데 창원시의 현재를 짚어봤다.

지난 9월 21일,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을 찾았다. 창동은 195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마산의 중심 상권이었다. 마산 어시장을 지나 창동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임대를 알리는 현수막부터 보였다. 거리에는 빛이 바랜 간판이 대부분이었다. 일부 가게는 떨어진 간판을 수리하지 않아 가게 이름을 제대로 알기 어려웠다. 창동 거리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나오는 최신 가요만이 거리의 적막함을 달랬다.

학문당 서점, 코아양과, 고려당, 복희집 등 창동의 ‘랜드마크’부터 둘러봤다. 이들은 모두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들이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건 매출이 좋아서가 아니라 건물을 소유하고 있어서다. 다른 가게들은 수없이 바뀌었다. 권화현 학문당 대표는 “매출만 보면 서점을 접어야 한다”고 말했다. 10년 전 하루 매출은 300만원 이상이었지만 지금은 하루 30만원 수준이다. 서점 문을 닫아도 그 자리에 들어올 사람이 없다.

도시재생사업에도 오는 사람 없어

상인들은 통합 이후 오히려 상권이 죽었다고 느낀다. 물론 통합만이 이유는 아니다. 소비의 축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간 것이 가장 크다. 문제는 창원의 상권은 여전히 활발하다는 것이다. 창동에서 2대째 운영하던 금은방 조일당도 창원의 주상복합건물로 옮겼다. 창동에서 16년째 안경점을 운영하는 문창식씨는 “10년 전에 정치인들은 마창진이 모두 ‘골고루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게 골고루 발전이냐? 창원과 격차가 계속 커졌다. 골고루 발전은 허상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상권을 살리기 위해 창원시가 내놓은 해법은 ‘도시재생’이었다. 거리에 조형물이 세워지고 조명이 설치되고 간판이 통일되는 등의 작업이 진행됐다. 이름도 ‘창동예술촌’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상권은 살아나지 않았다. 이날도 창동 거리에는 새로운 조명이 설치되고 있었다. 문창식씨는 “고민을 한 해법이 아니라 보여주기식 해법”이라고 말했다. 권화현 대표는 “오는 사람이 없는데 거리만 꾸며봤자 뭐하나. 사람이 빠져나가지 않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상인들의 체감은 수치로 확인된다. 지난 10년 많은 사람이 마산을 떠났다. 창원지역은 2019년까지 10년간 인구감소율이 이전 10년에 비해 1.3%포인트 높아졌다. 하지만 마산지역은 무려 4.8%포인트가 높아져 거의 두 배가량 폭증했다. 마산은 이전에도 인구감소폭이 컸지만 통합 이후 더 심각하게 진행된 것이다. 사람이 떠나는 곳에서 돈이 돌 리 만무하다.

임석회 대구대 지리교육과 교수 연구팀은 지난 6월 발표한 ‘마산 창원 진해의 행정구역 통합효과’에서 “원인이 어디에 있든 통합 이후 인구 증가에서 지역 간 불균형이 오히려 더 심화됐다”고 썼다. 마창진 중 진해가 유일하게 인구가 증가했는데 연구팀은 “진해는 전부터 인구가 증가해왔고 부산시에 인접한 곳이라는 점에서 통합에 의한 효과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마창진 부동산 격차도 균형발전과는 동떨어져 있다. 상대적으로 사람이 덜 떠나고 상권이 유지되고 있는 창원의 부동산 시장은 굳건하다. 옛 창원시인 성산구와 의창구의 부동산은 마산합포구, 마산회원구, 진해구보다 적게는 평당 300~600만원씩 비싸다. 집값이 더 비쌈에도 창원지역 부동산만 팔린다. 도시 간 인프라 격차가 크고 상승 기대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창원성산구 ‘반도유보라 아이파크’는 439가구를 모집한 1순위 청약에 5500명가량이 몰리며 완판됐다. 반면 진해구 ‘비전시티 우방아이유쉘’은 562가구 모집에 단 28건만 접수돼 미분양 단지로 남았다. 권현우씨(35)는 “통합이 되면서 창원지역은 통합시 안에서 분당구 느낌이 됐다. 한 도시라고 하는데 지역마다 계층이 다르다“고 말했다.

안상수 전 창원시장이 2014년 9월 16일 시의회 정례회 개회식에서 NC다이노스 야구장 입지 변경에 반대하는 진해구 출신 김성일 시의원이 던진 계란을 맞고 있다. 연합뉴스

안상수 전 창원시장이 2014년 9월 16일 시의회 정례회 개회식에서 NC다이노스 야구장 입지 변경에 반대하는 진해구 출신 김성일 시의원이 던진 계란을 맞고 있다. 연합뉴스

인프라 좋은 창원 도심으로 사람 몰려

통합의 효과로 거론된 것 중 하나가 행정비용 절감이다. 당시 행정안전부는 향후 10년간 공무원 정원 1358억원, 선거비용 및 운영비용 36억원, 사회단체 및 민간행사 보조금 238억원, 시설 중복 502억원 등 총 2206억원의 비용 절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현실이 됐을까.

이연진씨(34)는 마산합포구에 거주하고 창원성산구에서 일한다. 그는 출퇴근 길마다 창원과 마산의 격차를 느낀다. “창원은 계획도시라 원래 인프라가 좋기는 했다. 그런데 통합 이후에도 새로운 것, 좋은 것은 모두 창원에 생겼다. 마산 구도심은 도로가 엉망진창인데 바뀐 게 없고 진해 안민터널은 말도 못 하게 교통이 정체되는데 여전히 그대로다.” 그러다보니 이씨도 점점 마산보다는 창원 중심가를 찾게 된다. 신세계그룹에서 운영하는 복합 쇼핑몰인 ‘스타필드’도 창원의창구에 들어설 예정이다.

권현우씨는 공용자전거 ‘누비자’를 언급했다. 구 창원시 서비스였던 누비자는 통합시가 되면서 마산과 진해에도 설치됐다. 하지만 창원지역과 달리 마산과 진해에는 자전거도로가 제대로 없다. 공용자전거는 생겼지만 탈 곳이 마땅치 않은 것이다. 권씨는 “그야말로 보여주기식 행정, 통합”이라며 “차라리 통합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식이 아니라 정말 마산에 필요한 행정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병익 경상대학교 행정학과 교수가 2015년 진행한 인식 조사에 따르면 행정의 효율과 관련한 주민들 반응은 5점 만점에 2.66으로 다소 부정적이다. 통합 이전 통합에 대한 주민들의 지지는 3.28로 보통인 3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통합 이후 지지 정도는 2.63으로 떨어졌다. 세 지역 주민들 간의 일체성 정도도 2.67로 높지 않았다. 특히 진해구 주민들의 응답이 가장 부정적이었다. 이후 진행된 조사는 없다.

창원지역 주민도 부정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창원성산구에 거주하는 A씨는 “통합이 됐으니 받아들이기는 하는데 창원에 뭘 짓고 나면 꼭 마산, 진해에서 반발한다. 그러면 선심성으로 마산과 진해에 돈을 들인다. 헛돈이 쓰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창원지역은 통합 전 가장 반대가 심했던 곳이다. 당시에도 균형발전이라는 명목으로 재정이 낭비된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이 같은 반응은 통합시 명칭, 통합시 청사, 새 야구장 명칭 등 굵직한 갈등은 끝났지만 여전히 균형발전이나 정서적 통합은 이뤄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애초 예상한 행정비용 절감 역시 큰 효과가 없었다는 분석이다. 창원시에 따르면 통합에 든 직·간접 비용은 4578억원이다. 창원시 관계자는 “당시에 통합에 따른 초기 행정비용이나 갈등 해결 비용을 간과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통합 10년, 마창진은 괜찮나요?

통합 이후 ‘통합 지지도’ 더 떨어져

마창진 통합은 이명박 대통령이 2009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행정체제 개편을 언급한 뒤, 사실상 6개월도 되기 전에 마무리됐다. 주민투표는 없었다. 주민들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할 시간도 없었다는 게 주민, 전문가, 공무원들의 일관된 평가다.

창원과 진해의 반발이 특히 컸는데 처음에 반대 의견을 냈던 시의회가 찬성으로 돌아선 게 통합에 결정적이었다.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공천권을 가진 지역구 국회의원들에게 밉보여서 좋을 게 없어서다. 공천권을 쥔 김학송 전 한나라당 의원(진해), 권경석 전 한나라당 의원(창원시갑)은 ‘지방행정체제 개편 특별법’을 발의한 이들이다.

A씨는 “당시에는 지역의원도 한나라당, 국회의원도 한나라당, 대통령도 한나라당이어서 지역 주민들이 아무리 통합에 반대한다고 해도 귀담아듣지 않았다”고 말했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창원시을)이 있긴 했지만 군소정당이 여당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 통합을 되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지난 5월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마산회원구)이 마창진 재분리를 검토해야 한다는 발언을 해 창원시의회 의원들이 반발했다. 그래서 창원시는 최근 특례시 추진과 중앙정부의 추가 예산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통합과 관련해 중앙정부로부터 받은 추가 예산은 10년간 1460억원이다.

창원시 관계자는 “안정적인 통합을 이루려면 20~30년이 걸린다”며 “당시 정부가 시범적으로 통합을 했으면 장기적으로 확실하게 지원 관리를 해줘야 하는데 통합을 시켜놓고 방치해버렸다”고 말했다. 특례시가 되면 지방정부의 행정·재정적 권한이 확대된다. 정부는 인구 50만명 이상 도시에 특례시 특별 지위를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주민들 반응은 차갑다. 문창식씨는 “특례시? 광역시? 하든지 말든지 주민들은 관심 없다. 특례시 된다고 해서 그동안 안 됐던 균형발전이 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연진씨는 오히려 창원지역으로 쏠림이 심해질 것을 우려했다. 임석회 교수도 “이런 문제가 특례시의 지위를 얻는다 해서 본질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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