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겪고도 사법행정은 대법원장이? 법원개혁안 '위헌' 논쟁 문제점은

이혜리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벌어진 사법농단 사건의 원인은 대법원장이 독점하는 ‘사법행정권’이다. 사법행정권이란 예산이나 법관의 인사 등 법원 운영을 위한 행정업무를 말한다. 사법행정권은 ‘재판’을 지원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어느 순간 주객이 전도됐다. 대법원장 아래의 법원행정처를 중심으로 사법행정권의 범위가 확장되면서 판사들이 윗선 눈치를 보는 ‘법관의 관료화’ 현상이 나타났고, 재판 거래와 개입 의혹까지 불거졌다.

사법농단 사건의 책임을 물어 양 전 대법원장 등이 형사재판을 받는 한편, 사법농단 사건이 다시는 발생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법원 개혁이 진행됐다. 대법원장에게 독점된 사법행정권을 분산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그런데 대법원은 지난달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낸 법원개혁안(법원조직법 개정안)이 ‘위헌’이라는 입장을 냈다. 최고의 법률해석기관인 대법원이 ‘위헌’ 문제를 끌고나와 상황은 간단치 않다.

14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는 이번 대법원 입장이 왜 문제인지를 조목조목 짚어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가 연 ‘사법행정위원회는 위헌인가’ 좌담회에서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6월11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서 열린 사법행정자문회의 7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6월11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서 열린 사법행정자문회의 7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사법행정은 꼭 대법원장이 해야 한다?

이탄희 의원과 대법원의 가장 큰 입장 차이는 사법행정에 관한 ‘총괄 권한’을 누가 갖느냐다. 현행 법원조직법 9조는 “대법원장은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한다”고 규정해 대법원장에 사법행정권을 일임하고 있다. 이탄희안은 법관위원과 외부위원이 함께 참여하는 사법행정위원회가 사법행정에 관한 총괄 권한을 갖도록 했다.

대법원은 “사법행정은 법원에서 해야한다”는 입장이다. 사법행정에 관한 총괄 권한은 여전히 대법원장이 갖고, 사법행정위원회는 주요 정책에 관한 심의·의결만 해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그 근거로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규정하는 헌법 101조를 댄다. 이 ‘사법권’에는 사법행정권도 포함되기 때문에 사법행정권을 법원이 아닌 별도의 사법행정위원회가 행사하는 것은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했다. 대법원은 이를 재판 독립 침해의 위험성을 방지하고 삼권분립의 원칙에도 부합하는 해석이라면서, “대법원은 협의의 사법권 뿐만 아니라 사법입법권과 사법행정권을 가지고 있다”는 김철수 교수의 헌법학신론을 인용했다.

좌담회에서 발제를 맡은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원 입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한 교수는 “(사법권이 법원에 있다고 하더라도) 사법권의 조직이나 운영방식, 권한 범위, 권한의 발동 절차 등은 국회의 입법형성권한에 포함되는 것”이라며 “삼권분립 체제 속에서도 국회에는 다른 부에 속하는 기관의 조직을 만들 수 있는 고유한 입법권이 존재한다”고 했다. 현재 국회가 만든 법원조직법 등 법률에 법원의 조직과 구성 등을 정하고 있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감사 대상에는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도 포함된다.

한 교수는 헌법 108조를 들었다. 헌법 108조는 대법원의 규칙 제정권을 규정하면서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라고 단서를 달고 있다. 한 교수는 “사법행정이 이뤄지는 과정이나 재판의 절차까지도 법률이 선점할 수 있도록, 입법권을 우선으로 하고 있는 것”이라며 “따라서 입법자가 사법행정위원회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그게 헌법에 위반된다고 이야기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는 “(대법원이) 사법행정권에 대한 아주 좁은 의미의 형식적인 헌법 해석, 그것도 헌법 교과서에 나오는 강학상의(학문적인) 개념을 그대로 가져다가 ‘사법권 안에는 사법행정권이 포함되니 위헌’이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사법농단은 지난 70년 동안 헌법과 법원조직법이 갖고 있던 기본 체제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국회가 사법행정권을 법원에 맡기지 않는다는 결심을 하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에 이르렀다”고 했다.

사법농단 겪고도 사법행정은 대법원장이? 법원개혁안 '위헌' 논쟁 문제점은

■사법행정에 시민 참여하면 정치화된다?

사법행정위원회 위원 구성도 큰 쟁점이다. 이탄희 의원안은 외부위원이 3분의 2로 다수이고, 법관위원이 소수다. 대법원은 이번 입장에서 ‘외부위원 다수’도 헌법 101조에 어긋나 위헌 소지가 크다고 밝혔다. 특히 대법원은 이렇게 외부위원이 참여하는 사법행정위원회가 ‘법관 인사’를 결정하는 게 사법부 독립 침해일 수 있다고 봤다.

유럽평의회에서도 위원 구성은 법관이 다수를 차지하도록 권고한다. 사법행정이 재판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한 교수는 법관들이 저지른 사법농단 사건을 볼 때 과연 법관이 다수인 사법행정위원회에서 제대로 사법행정을 할 수 있을지에 관해 의문을 표시했다.

앞서 김명수 대법원장이 법원개혁안을 만들기 위해 설치한 사법발전위원회에서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던 서선영 변호사는 대법원이 오히려 사안을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이번 입장에서 “사법발전위원회 역시 법관 인사의 특수성에 기초해 법관으로만 구성된 위원회에서 법관 인사를 담당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권고한 바 있음”이라고 했다.

그러나 사법행정에 관한 총괄권한을 사법행정위원회가 갖는 상태에서, 그 산하에 법관으로 구성된 법관인사운영위원회를 두어 판사 보직 인사에 관한 심의를 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게 사법발전위원회 권고내용이다. 서 변호사는 “전체 맥락을 생략한 채 일부만 말하는 것은 왜곡”이라며 “대법원은 사법발전위원회 권고에서 (사법행정에 대한) 최종 결정권한을 사법행정회의(사법행정위원회)에 부여하고, 법관인사운영위원회는 보직에 관한 ‘심의’ 권한에 한정됐다는 점을 설명하지 않았다”고 했다.

또 대법원이 사법행정위원회가 법관 인사를 결정하면 법관들이 ‘정치화’할 것이라면서 그 예로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형사합의부, 영장전담 판사의 인사를 정치적으로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 부분도 문제다. 사법행정위원회의 검토 대상은 법관의 근무지를 변경하는 ‘전보’ 인사이고, 형사합의부나 영장전담 판사를 누가 하는지(사무분담)는 각 법원의 판사들로 구성되는 사무분담위원회에서 결정해 둘은 관련이 없다는 게 서 변호사 말이다. 서 변호사는 “대법원은 전보 인사와 사무분담을 섞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잘못된 정보를 국회에 제출하면 어떻게 하느냐”라며 “대법원장 1인에게 인사권이 집중돼 있을 때보다 여러 명이 함께 논의할 수밖에 없는 위원회가 인사 전횡의 우려가 훨씬 적다”고 했다.

14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사법행정위원회는 위헌인가’ 좌담회가 열리고 있다. 왼쪽부터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경열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판사,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선영 변호사, 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참여연대 제공.

14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사법행정위원회는 위헌인가’ 좌담회가 열리고 있다. 왼쪽부터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경열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판사,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선영 변호사, 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참여연대 제공.

■“법원개혁 위헌 논쟁은 본질 아니다”

서 변호사는 이번 대법원의 입장으로 인해 사법행정위원회가 위헌이냐, 아니냐는 쪽으로 법원개혁 논의가 흐르는 데 대해 우려를 표했다. “어떤 방안이 더 바람직한가를 논의해야 하는데 위헌이냐, 아니냐는 질문은 이런 논의를 봉쇄해버린다”는 것이다. 서 변호사는 “위헌 이야기에서 떠나 구체적인 쟁점으로 들어가 생산적인 논의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박경열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판사도 “(법원 개혁을) 위헌 논란으로 문제의 쟁점을 귀속시키면 우리에게 남는 게 없다”며 같은 의견을 밝혔다. 박 판사는 이어 “사법행정 사안의 사회적 수용 가능성과 사법신뢰를 제고한다는 관점에서라도 (외부위원 참여는) 의미가 있다”면서 법관사회가 사법행정위원회의 개방성을 보다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실질적으로는 필요하지만 반대 여론을 우려해 논의하지 못했던 의제들을 시민이 참여하는 사법행정위원회에서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논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를테면 ‘법관 증원’과 같은 주제들이다.

다만 ‘외부위원 다수’인 이탄희안과 달리 박 판사는 외부위원과 법관위원을 ‘동수’로 구성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박 판사는 “사법행정은 행정작용이기는 하지만 사법에 영향을 구체적으로 미칠 가능성이 높고, 그동안 사법을 대하는 정치권의 태도나 담론 설정 방식에 비추어 사법의 정치화가 사법행정 단계에서 구현될 우려가 충분한 만큼, 적어도 절반은 법관위원으로 구성하라는 유럽평의회의 권고를 외면하기 어렵다”며 “(동수 구성의) 상징적 의미도 크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또 박 판사는 이탄희안에서 외부위원 4명을 상임으로 둘 수 있도록 한 것에 대해서도 “사법행정의 효율화, 슬림화가 또 다른 사법개혁의 취지인만큼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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