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은 온실효과를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

주영재 기자

지난해 말 국방부는 채식주의자 등 소수 장병을 위한 급식 지원 관련 규정을 신설하고 2020년 급식방침에 반영했다. 규정에는 채식주의자 장병 등이 식사에 어려움을 느낄 경우 부대 여건을 고려해 밥과 김, 채소, 과일, 두부 등 대체품목을 제공하고, 우유 대신 두유를 지급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국방부의 채식 급식 지원 규정은 그냥 이뤄진 일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군 복무를 앞둔 채식주의자들이 군대 내 단체급식에 채식선택권을 보장하라며 국방부 장관을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한 것이 변화의 계기가 됐다. 인권위 진정 당사자인 정태현씨와 인권위 진정을 도운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장서연 변호사에게 국방부 채식 지원 규정 신설의 의미를 들어봤다. 이들은 채식선택권 보장이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기후변화 해결에 개인이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여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두 사람의 인터뷰는 10월 12, 14일 이틀에 걸쳐 전화로 이뤄졌다.

국가인권위원회에 군대 내 채식선택권 보장 진정을 제기한 당사자 정태현(오른쪽)씨와 진정 대리인 장서연 변호사가 지난해 11월 기자회견을 마친 후 함께 자리했다.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제공

국가인권위원회에 군대 내 채식선택권 보장 진정을 제기한 당사자 정태현(오른쪽)씨와 진정 대리인 장서연 변호사가 지난해 11월 기자회견을 마친 후 함께 자리했다.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제공

-국방부의 채식 장병 지원 규정을 평가한다면.

정태현 “국가에서 징집할 때 제대로 된 음식과 의복, 공간을 마련하는 일은 너무나 당연하다. 생존과 직결되는 음식은 더더욱 정성 들여 준비해야 한다. 규정 신설로 최소한의 보호선이 생겨서 다행이다. 하지만 이 규정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많이 홍보되지 않아서 (채식 급식을) 요구하는 사람이 적을 수 있고, 우리 사회가 남과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눈치를 주거나 따돌리는 분위기가 강해서 이런 문제가 생길까 걱정되는 부분도 있다.”

장서연 “군대뿐만 아니라 학교급식이나 공공기관 급식에서 채식선택권을 보장하라는 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국방부에서 제일 먼저 요구를 받은 것에 대해서 전향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다만 아직은 하나의 규정일 뿐이다. 실제 현장에서 선택을 보장하는 실질적 효과가 있을지, 특히 지속가능한 식단 구성이나 균형 잡힌 영양을 고려하는지 지켜봐야 한다.”

-채식 급식이 잘 되려면.

정태현 “조리사의 채식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서 김밥집에 가서 ‘동물성 재료를 빼주세요’라고 하면 햄 대신 맛살을 넣는 분도 많다. 사람들이 채식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급식의 질과 맛을 높이고, 채식이 왜 필요한지 알려주는 교육도 있어야 한다.”

-비건(모든 동물성 음식을 섭취하지 않는 채식주의자)이 된 계기라면.

정태현 “7년 전 유튜브에서 본 한 강연 영상에서 고기가 우리 식탁에 오기까지 동물이 어떻게 길러지고, 착취당하고, 죽임을 당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 후 내가 고기뿐만 아니라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다면 먹지 않는 게 맞다는 판단을 내렸다.”

-채식은 신념의 문제인가.

정태현 “철학이나 신념으로 볼 수 있다. 먹기 싫으니 빼달라는 게 아니라 난 이것을 음식으로 보지 않으니 내가 먹을 수 있는 걸 달라는 것이다. 군인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무엇이든 먹어야 한다고 쥐나 뱀고기를 급식으로 준다면 많은 말이 나올 것이다. 개를 먹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 것처럼 전 동물 자체를 먹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채식의 장점은.

정태현 “건강에 좋다. 만성 비염이 심했는데 놀라울 정도로 호전됐다. 유제품만 끊어도 도움이 된다. 피부도 좋아지고, 체중관리도 수월하다. 면역력과 상처 회복력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온실효과를 줄이는 데도 굉장히 효과적이다. 유엔 등 국제기구의 보고서를 보면 축산업은 온실가스 배출의 한 주범으로 지목된다. 에너지 전환에는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지만, 채식은 다음 끼니부터 고기를 먹지 않으면 된다. 프랑스 파리시가 차량의 도심 진입을 (일부) 막는 방식으로 (기후변화 대응에) 약간의 강제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채식 역시 학교와 공공기관에서 주 1회 급식 제공 등으로 제도적인 보장을 할 필요가 있다.”

-인권위에 진정하게 된 계기는.

정태현 “군대에 가야 하는데 먹을 순 없으니 인권위에 진정해 살 방도를 마련하자는 생각이었다. 진정을 준비하면서 채식주의자인 전역 군인들을 만났는데 정말 먹을 게 너무 없어서 신념에 반해 살기 위해 동물성 식품을 먹어야 했고, 그때 무기력함과 우울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들의 증언이 인권위 진정을 할 때 도움이 됐다.”

장서연 “개인적으로 동물권에 관심이 있고 그래서 과거에 공장식 축산으로 거의 물건처럼 찍어내는 사육환경을 문제 삼는 헌법소원도 제기했다. 평소 이런 문제에 관심이 있던 차에 공감의 공익 소송접수 창구에 의뢰가 들어와 대리하게 됐다.”

-채식한 후의 변화라면.

정태현 “‘사회학적 상상력’이 커진 것 같다. 처음 본 영상이 ‘종차별’을 반대하는 것이었다. 내가 종차별을 반대한다면 또 다른 차별, 예를 들어 성차별에도 반대해야 하지 않나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모순 없이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차별에 관심을 갖게 되니 자본과 노동의 관계나 장애인 차별, 청소년의 권리로 관심이 확장됐다.”

-학교급식에 채식선택권을 보장하라는 헌법소원에 대해서 재판소가 각하 결정했다.

정태현 “식단작성을 학교장의 재량행위로 봤는데 재량에만 맡겨둘 순 없다. 학생의 건강권이나 양심의 자유는 보호받아야 마땅하다. 그걸 보호해야 한다고 교육하는 기관에서 채식선택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모순이 아닐까. 공익을 위해 채식을 택한 학생이 많다. 이들의 급식을 일일이 신경 써주는 학교가 드물다는 점에서 강제적인 규정이 필요하다.”

-앞으로 활동 계획은.

정태현 “무슨 일을 하든 비건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교육하는 사람이 되면 동물권을 교육하는 사람이 될 테고, 무역을 하면 비건 관련 물품을 들여올 테고, 음식점을 해도 비건 관련 일을 할 것이다. 현재는 비건 디저트 연구를 짬짬이 하고 있다. 최대한 맛있게 해서 비건이라서 사는 게 아니라 정말 맛있고 예뻐서 사람들이 고를 수 있게 하려는 게 목표다. 식빵이나 파운드 케이크는 이게 정말 비건인지 의심될 정도로 결이나 향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고 생각한다.”

-채식 입법 운동의 방향은.

장서연 “채식주의자는 소수이고, 소수자의 권리로서 채식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 더불어 채식주의자가 아닌 사람들도 채식을 편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녹색당을 중심으로 기후위기비상행동, 주 1회 채식을 도입한 대안학교 학생과 교사, 동물권 활동가들을 포함해 채식 입법 운동이 논의되고 있다. 입법 운동은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적어도 주 1회 채식 급식 제공을 의무화하는 방안에 중점을 두고 있다. 육식이 강조되는 식문화나 식습관을 의문시하는 교육적 의미가 크다. 다만 규정을 학교급식법에 넣을지 기후위기와 관련한 기본법에 넣을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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