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 원전 주민들 “원전은 불안하지만 폐로는 반대”

부산|주영재 기자

고리 원전 주변 주민들, 지원금 줄고 안전성 문제로 탈원전 반대

남선수씨(51)는 부둣가에서 쪼그려 앉은 채 바다 쪽을 보고 있었다. 미역 작업을 시작하기 전 잠시 쉬는 참이었다. 옆에는 한마을에 사는 삼촌 남광수씨(68)가 있다. 두 사람이 사는 월내 마을은 고리원전에서 직선거리로 1㎞ 정도밖엔 떨어져 있지 않다. 바로 옆 길천마을은 원전과 더 가깝다.

두 마을 주민들은 국내 첫 원전인 고리1호기가 1978년 4월 상업운전을 한 이래 40년 넘게 원전을 끼고 살고 있다. 2017년 6월 고리1호기가 영구정지됐지만 지금도 이곳에는 고리 2~4호기, 신고리 1~4호기 등 원전이 밀집해 있다.

남씨들은 모두 이곳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남선수씨는 고등학교 진학과 직장생활 10년을 빼곤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남광수씨도 젊은 시절 중동에서 10년 정도 건설일을 하다 돌아왔다. 고리2호기를 지을 때 공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남광수씨는 “밤에 콘크리트를 칠 때 임시동력으로 전깃불을 켜주곤 했다. 콘크리트 두께가 2.5m로 엄청 튼튼하게 지었다”고 회상했다.

부산 기장군 장안읍 월내방파제에서 고리 원자력 발전소 1~4호기(오른쪽부터)가 한눈에 보인다. 주영재 기자

부산 기장군 장안읍 월내방파제에서 고리 원자력 발전소 1~4호기(오른쪽부터)가 한눈에 보인다. 주영재 기자

이유 없이 아픈 사람들
월성원전의 삼중수소 누출 사고로 운을 뗐다. 이곳 주민들도 불안감을 느끼진 않는지, 혹 건강에 이상은 없는지 물었다. 남선수씨가 “옛날엔 괜찮았는데 요샌 이상해. 머리가 아프고, 원인을 알 수 없이 피로감이 쉽게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삼촌을 가리켰다. 어깨와 허리가 아파 병원에서 두 번이나 자기공명영상(MRI)을 찍었는데도 이상이 없다는 말에 답답해한다는 것이다.

“의사는 일을 많이 해서 그런 것 같다고 하지만 칠십도 안 됐는데…. 엑스레이로는 (이상이) 안 보인다고 MRI를 찍으라 하더라고.” 남광수씨는 전날(2월 1일) 부산의 한 병원에서 MRI를 찍고, 오늘은 동네 병원에서 어깨에 주사를 맞고 왔다. 남씨가 보여준 진료비 내역엔 각각 67만원, 8만5240원이 적혀 있었다.

남광수씨는 일주일에 한 번씩 주사를 맞으면 7만~8만원 드는데 벌이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 “7~8년 전부터 바다에 가면 고기가 없어져 스트레스를 억수로 받았다. 저 배도 안 하려고 매번 망설이는데 벌어놓은 것이 없어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바다에 간다. 그런데 가봐야 어구, 기름 등에 10만원이 나간다. 경비보다 수익이 모자란다.”

남광수씨는 “원전이 지어지기 전엔 동네에서 배 하는 데는 내가 선구자였다”면서 “바다 밑 어디에 돌이 있다는 것도 다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고기잡이가 옛날 같지 않다. 새우도 잡혔지만 이젠 전혀 보이지 않는다. 통계청은 다달이 어업생산량을 파악하기 위해 조사서를 보낸다. 하루 수확량을 매일 적어야 하는데 한달에 3~4번 바다에 가니 조사서에 빈칸이 많다. 남씨는 “옛날만큼 고기도 잡히지 않고 그래 놓으니까 살기가 되게 딱하다”고 말했다.

원전은 냉각수로 바닷물을 끌어다 쓰는데 이때 7~9도가량 데워진 물을 하천이나 바다에 방출한다. 온배수로 주변 해역의 수온이 상승하고 생태계 교란이 발생한다. 2012년 전남대 수산과학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바다 정상 수온에 비해 1도 이상 상승하는 구역인 온배수 확산 범위는 고리원전 남쪽으로 8.45㎞, 어업피해 범위는 11.5㎞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 이후 새로 가동된 신고리 2~4호기를 감안하면 그 범위는 5㎞ 내외로 확장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기만 사라진 게 아니다. 수온이 올라가니 미역과 다시마 수확도 예전 같지 않다. 남선수씨는 “연구소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 기록하는데 바다에 풀이 없다”고 말했다. 남선수씨는 “발전소를 짓고 매립하다 보니 연안의 물이 가는 길을 막았기 때문이다”면서 “몇년 전 후쿠시마 사고 이후엔 방파제를 높이는 공사를 하면서 더 오염됐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지역과 달리 양식업을 할 수 없어 미역과 다시마를 대체할 작물이 없다고 답답해했다.

“한수원은 원전이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다고 하지 않느냐.” 기자의 물음에 남선수씨는 “우린 안전하단 생각 안 한다. 옛날부터 보고 느끼고 산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건강상으로 문제가 많다. 몇년 전 원전 인근 지역 주민들의 갑상선암 발병률이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발표도 나왔다. 왜 저 사람이 아픈지 한 번 정도는 연구해 설명해줘야 하지 않겠나.” 길천마을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노령의 한 주민은 6년 전 갑상선암 수술을 했다고 했다. 암환자들이 타 지역보다 많은 편이라고 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생명을 담보로 살고 있다”는 불안감이 더 커졌다.

하지만 원전의 안전에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길천마을의 한 슈퍼마켓 주인은 “화력은 매연 안 나오나. 태양광도 폐기물 나온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자원이 부족해 기댈 곳은 원전이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아예 없으면 모르지만 이왕 있으면 상생하는 게 낫다. 우리가 요구하면 한수원에서 도움도 주고 지원도 한다. 이 정도면 잘하고 있지.” 그는 한때 이주 이야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마을을 현대화하고 시설을 개량하는 것으로 여론의 합의가 됐다고 말했다.

부산 기장군 월내리와 길천마을 사이의 월천교 부근에 방사선 비상단계에 따른 주민행동 요령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서 있다. 주영재 기자

부산 기장군 월내리와 길천마을 사이의 월천교 부근에 방사선 비상단계에 따른 주민행동 요령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서 있다. 주영재 기자

원전 불안하지만 폐로는 반대
고리 주민들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반대하는 여론이 강하다. 발전량에 따라 결정되는 지원금이 줄어드는 문제도 있지만 폐로 과정의 안전성 문제도 제기된다. 원전은 폐로가 돼도 사용후핵폐기물에서 방사성 물질은 계속 나온다. <2019년 원자력 이용시설 주변 방사선 환경 조사 및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1년간 영구정지 상태인 고리1호기에서도 기체 1.27T㏃(베크렐은 방사능 활동의 양을 나타내는 단위로서, 1초에 방사성 붕괴가 1번 일어날 때 1베크렐)와 액체 0.256T㏃ 등 적지 않은 양의 삼중수소가 나왔다. 기체 방사성 물질인 탄소14(14C)도 일부 나온다.

한수원 측은 “고리1호기 사용후연료저장조는 붕산수로 채워져 있고, 붕산수에 삼중수소와 14C가 포함된다”며 “영구정지 후에도 사용후연료저장조의 붕산수가 자연증발하면서 미량의 삼중수소와 14C가 배출된다”고 설명했다. 사용후연료 관련 냉각과 정화 계통의 유지·보수를 위해 붕산수를 소량 배수할 때 붕산수에 포함된 삼중수소가 액체폐기물처리계통을 거쳐 정화 후 배출된다.

삼중수소는 대부분 체내에서 7~14일 내 배출되지만, 극히 일부는 체내에서 단백질, 당, 지방 등과 결합해 장기간 피폭을 일으킬 수 있다. 게다가 삼중수소는 방사선보다 더 심각한 ‘핵종전환’이라는 피해를 일으킨다. 삼중수소수라는 물 상태로 들어온 삼중수소는 인체 내 정상적인 수소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후 베타선을 방사하면서 헬륨으로 바뀐다. 그 과정에서 유전자 변형, 세포사멸, 생식기능 저하 등 신체 손상의 가능성이 있다.

마을회관에서 만난 신정길 길천이장(61)은 삼중수소 안전성 논란에 대해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는 우리가 느낄 수 없다”면서 “진짜 지역 주민을 위한다면 전수조사를 하고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위험이 있다는 걸 알면서 방치하면 준살인이다”고 말했다. 부산시 시민안전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는 박갑용씨(전 고리민간환경감시기구 위원)는 한수원을 비롯한 원자력업계의 안이한 태도를 비판했다. 박씨는 이제라도 삼중수소 등 저선량 방사성 물질의 누출과 주민 건강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 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발전소 배수로와 주변 마을은 다시 한 번 살피고 바닷물에 희석돼 접할 수 있는 경로도 감안해 조사할 필요가 있다.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10년, 20년 맞았을 때 영향이 있는지 없는지는 국가도 조사해보지 않은 것 아니냐.”

고리 원전 주민들 “원전은 불안하지만 폐로는 반대”

원전의 특수성을 생각한다면 폐로 과정에서의 주민 희생까지 감안할 필요가 있다. 폐로를 이유로 지원금을 끊으면 주민 입장에선 ‘토사구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신정길 이장은 “우리가 받는 지원금은 연간 3억7000만원 정도다. 그걸로 마을을 겨우 운영한다. 마을이 자립하기 어려운 구조를 만들어 놓고 지금 폐로하면 주민은 먹고살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지금껏 주민들은 원전을 끼고 살면서 온갖 위험을 감수했다. 건설 과정에서 땅을 수용당한 사람도 적지 않다. 한수원 고리원전의 1단지 사택 자리도 원래 신 이장네 땅이었다. 발전소 임야의 4분의 1도 신 이장네 땅이었다고 한다. 원주민은 먹고살려고 땅을 팔고 외지로 떠나고, 발전소에서 일하는 사람이 들어오면서 길천마을의 토착민은 이제 30%도 되지 않는다. 신정길 이장은 “기간산업이라는 미명하에 국가사업이니 무조건 이바지해야 한다 해서 아무 개념도 없이 다 빼앗겼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지금도 발전소와 도로로 막히고 잘려 마을이 발전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토로했다. 마을 주변에는 송전탑이 거미줄처럼 깔려 있다. 출력이 높아진 신고리 원전의 가동 이후 전압이 두 배로 높아진 송전탑도 들어섰다. 박갑용씨는 “정밀기계를 만드는 산업은 전자파 때문에 송전탑 인근 지역에 맞지 않는다. 송전탑 전자파도 인체에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원전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위험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고리원전은 국내 첫 원전이자, 국내에서 생산한 연료를 처음으로 사용한 곳이다. 첫 가동과 첫 연료 주입 때 운영 미숙으로 적지 않은 사고가 났다. 실제 고리원전에서 1979년과 1993년 두 번의 시기에 걸쳐 평상시보다 훨씬 많은 양의 방사능 요오드 방출이 있었다. 당시 고리원전 주변 주민의 피폭량 수준은 미국 스리마일섬 원전사고를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주민들은 폐로 역시 첫 번째가 되면서 또다시 ‘실험용 쥐’ 신세가 된다는 것에 분노했다. 신정길 이장은 “운영하는 원전이라면 상시 근무자가 있어서 현장에서 보고 살필 텐데 폐로하면 가끔은 들어가겠지만 아무래도 관심을 덜 쏟지 않겠나. 우린 더 큰 위험에 봉착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폐로한다고 위험을 안 안고 있느냐. 안고 있다. 위험은 우리가 감수해야 한다”면서 “일본처럼 폐로가 결정된 원전에 대해서는 임시법을 만들어 10년 정도 지원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과거엔 고리1호기 수명연장에 반대하며 싸웠던 마을 사람들이지만 이젠 폐로에 반대하는 여론이 강하다. 신정길 이장은 “폐로 이후 주민 생계와 안전을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이젠 탈원전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박갑용씨는 탈원전을 지지하지만 정부가 폐로 이후의 대책을 요구하는 주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씨는 “서울처럼 전기를 많이 소비하는 지역은 아무런 위험에 노출되지 않는다. 똑같이 전기를 쓰면서 위험 부담을 한 곳만 지는 게 정의로운가”라며 “원전 가동으로 인한 여러 피해 요인까지 복합적으로 제로 베이스 위에 놓고 논의해 수명연장을 해야 할지 아니면 폐로를 해야 할지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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