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호정이 쏘아올린 보좌진 노동 논란

반기웅 기자

“우리 목숨이야 늘 파리 목숨이니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잘리고 갈리고 그러려니 한다. 의원 한마디에 다음날 자리 비워야 하고, 그게 법 위반도 아니니….”(1월 29일, 국회 보좌진 직원 페이스북 페이지 ‘여의도 옆 대나무 숲’)

‘파리 목숨’ 국회 보좌진 문제가 류호정 정의당 의원의 비서 부당해고 논란으로 재점화됐다. 류 의원의 수행비서 면직을 두고 사용자와 피고용자의 주장이 엇갈린다. 비서 측은 ‘부당해고’를 주장하고 있지만 류 의원은 절차에 따른 면직이라는 입장이다. 양측은 SNS와 언론을 통해 갑론을박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수행비서의 노동환경이 드러났다. 비서 측은 류 의원이 자정 넘어 퇴근 후 다음날 오전 7시 이전 출근을 강요했고, 주말 업무 지시로 휴게시간을 보장받지 못했다며 업무 내역을 공개했다.

JTBC 드라마 보좌관의 한 장면<br />/<보좌관> 홈페이지 갈무리

JTBC 드라마 보좌관의 한 장면
/<보좌관> 홈페이지 갈무리

■주말·휴일 없는 보좌진

류 의원실 면직 비서의 노동은 특별하지 않다. 국회 보좌진에게 주말·휴일 없는 노동은 흔하다. 국회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위해 업무시간 외에 업무 관련 지시 등 연락을 금지하는 법(근로기준법 일부 개정안)을 만들지만 정작 입법에 참여한 보좌진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익명을 요구한 현직 비서관(더불어민주당 소속)은 “이제는 의원 300명이 서로 경쟁하기 때문에 이전에 하지 않았던 일도 해야 한다”며 “모든 의원실의 노동강도가 높아진 상황에서 인위적으로 노동강도를 낮춘다는 것은 도태된다는 의미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일부 의원들은 집안일과 가족행사에까지 보좌진을 동원한다. 심지어 개밥을 주는 일도 보좌진에게 떠넘긴다. 박준수 국민의힘 보좌진협의회장은 “과로사로 사망하는 동료가 나와도 공론화가 되지 않는다”며 “과로와 스트레스로 암에 걸리거나 심장마비로 목숨을 잃는 보좌진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보좌진은 국가공무원법에 따른 별정직 공무원이다. 하지만 일용직보다 쉽게 해고된다. 임면 관련 전권은 의원이 쥐고 있는데 면직 절차가 단순하다. 의원이 국회 사무총장에게 면직 요청서를 제출하면 된다. 팩스로 전송하면 끝이다. 면직 심사위원회를 구성해 의견을 듣고 면직 사유 설명서를 작성하는 행정부 별정직 공무원의 면직 과정과 비교해도 단출하다. 오늘 채용됐다가 내일 해고될 수 있는 구조다.

보좌진은 과중한 업무와 부당한 지시를 감내한다. 이들의 노동문제는 좀처럼 공론화되지 않는다. 높은 수준의 급여와 사회적 지위가 논의를 가로막는다. 보좌진은 노동자가 아닌 정치인으로 봐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도 강하다. 그럼에도 보좌진은 노동자로서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해줄 것을 요구한다. 이들의 노동을 어떻게 봐야 할까.

국회 보좌진의 임금은 별정적 공무원 중에서도 최상위 수준에 속한다. 4급 보좌관은 8300만원, 5급 비서관 7300만원, 6급 비서 5100만원, 7급 비서 4400만원, 8급 비서 3800만원(2019년 세전 기준)을 받는다. 다만 여느 공무원과 달리 안정적이지 못하다. 의원과 한배를 탄 정치집단이긴 하지만 보좌진은 언제든 배에서 내릴 수 있다. 야당 소속 보좌관 A씨는 “한 다선의원은 선거에서 당선되자마자 데리고 있던 보좌진들에게 일괄 사표를 요구했다”며 “보좌진 입장에서는 황당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20대 국회에서 4급 보좌관과 5급 비서관을 20번 이상 바꾼 의원은 3명이다. 4급 보좌관을 7번, 5급 비서관을 14번 교체한 의원도 있다. 18대 국회 보좌진의 면직 건수는 1964건(전체 정원 2093명), 19대는 2085건(전체 정원 2100명)에 달한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고임금 받는 파리 목숨

의원의 보좌진 교체 지시는 당사자에게 ‘실직’ 통보다. 실직은 예고 없이 이뤄진다. 박 협의회장은 “면직 예고는커녕 본인이 잘리고도 정확히 며칠자로 면직이 됐는지 알 수 없다”며 “국회사무처에 문의해야 언제 면직처리가 됐는지를 인지한다”고 말했다. ‘하루아침에 짐을 싸야 하는 현실’을 막기 위해 보좌진은 고용 안정성 강화를 요구한다. 대표적인 제도가 면직예고제다. 면직예고제는 근로기준법이 고용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두고 있는 제26조 ‘해고의 예고’에 준하는 조치다. 의원이 보좌진을 면직하려면 30일 전에 예고하고 30일 전에 예고하지 않을 경우 30일분 이상의 통상임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제도다. 이미 국회에서도 인턴에 대해서는 약정해지예고제를 운영하고 있다.

2016년부터 면직예고제 도입을 규정한 법안(국회의원수당 등에 관한 법률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4년 임기제 국회의원을 보좌하는 업무 특수성과 의원 재량에 따라 임명되는 고용 과정을 감안했을 때 고용 안정성 강화는 일반 공무원과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이유다. 기획재정부와 국회 입법조사처 역시 면직예고제 도입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놨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 소속 현직 비서관은 “유연한 고용과 해고는 고유한 업무적 특성이고 그 사실을 알고 들어오는 곳이 국회”라며 “정해진 임기 내에서 성향이 맞는 사람이 모여 성과를 내야 하는데 맞지 않는 사람을 그냥 두면 의원실이 돌아가지 않는다. 고용 안정성 강화는 달리 말하면 고용을 경직화하자는 얘기다.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 노동자가 아니다’라는 보좌진에 대한 인식도 고용 안정성 강화의 걸림돌이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부당해고 관련 기자회견에서 “국회 보좌진은 근로기준법, 국가공무원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부당해고에 관한 법적 판단은 구할 길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 보좌진은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다. 국회사무처는 10일 보좌진 신분 관련 질의에 대해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공무원도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기준법상 소정의 근로자로 원칙적으로 근로기준법이 적용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보좌진이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라는 사실과 별개로 이들의 고용 안정 강화에 대해서는 신중론이 우세하다. 전직 보좌관 B씨는 “보좌진 대부분은 정치를 하고 싶어 들어간 정치인 성격이 짙다”며 “고임금에 권력을 쥔 집단에서 고용 안정까지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요구다. 오히려 보좌진의 자질을 검증하고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바꾸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보좌관 출신으로 <대한민국 국회 보좌관입니다>을 쓴 홍주현 작가는 “의원실 스스로 면직 기준을 만들고 해고 절차를 투명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며 “나름의 근무 수칙을 정해 이른바 ‘삼진아웃제’를 운영하는 것도 합리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Today`s HOT
이스라엘 건국 76주년 기념행사 멕시코-미국 국경에서 관측된 오로라 올림픽 성화 도착에 환호하는 군중들 러시아 전승절 열병식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이스라엘공관 앞 친팔시위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축하하는 북마케도니아 우파 야당 지지자들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골란고원에서 훈련하는 이스라엘 예비군들 영양실조에 걸리는 아이티 아이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