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이 살아있는 것만으로 희망”이라고 말했던 사람마저

이보라 기자

트랜스젠더 김기홍씨(38)가 지난 24일 사망했다. 그는 사망 전날 남긴 유서에 이렇게 적었다. “너무 지쳤어요. 삶도, 겪는 혐오도, 나를 향한 미움도. 오랫동안 쌓인 피로가 있어요. 미안해요.”

그는 정치인이자 성소수자 인권 활동가, 음악 교사였다. 2019년 11월 녹색당 비례대표 예비후보로 출마해 소수자를 대변하는 정치를 꿈꿨다.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에 힘껏 목소리를 내던 그를 세 차례 인터뷰한 적이 있다. 지난해 6월 그가 자신을 정체화하는 이야기를 담은 책을 기자에게 보내주면서 연락한 게 마지막이 됐다.

그는 성소수자의 죽음과 가까이 있었다. 2019년 10~12월 두 달이란 짧은 시간 동안 성소수자 친구 5명이 죽고자 했고, 그 중 3명이 살아남았다. 그는 응급실로 달려가 가까스로 살아남은 친구들의 곁을 지켰다. 그는 기자에게 “어떤 죽음은 숫자로만 나타나서 슬프지 않나. 성소수자의 죽음은 숫자로도 안 나타난다. 이들의 존재가 기록으로 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차별과 혐오에 힘겨워하며 삶을 포기하려는 성소수자에게는 “당신들이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말해줬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한창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쏟아지고 있었다. ‘국제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을 하루 앞둔 2019년 11월19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서 “동성혼 합법화에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같은 달 12일 국회의원 40명은 차별 대상 항목에서 ‘성적 지향’을 삭제하고 ‘생물학적 성별’만을 ‘성별’로 규정하는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제 옆에선 사람이 죽어가고 있어요. 정치권에서는 이런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관심도 없어요. 왜 하필 트랜스젠더 추모 주간에 정치인들이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지 그 이유를 묻고 싶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났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지난 18일 안철수 국민의당 서울시장 예비후보는 토론회에서 성소수자들의 거리 축제 행사인 퀴어퍼레이드를 두고 “거부할 권리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19일 페이스북에 “우리는 시민이다. 시민. 보이지 않는 시민, 보고 싶지 않은 시민을 분리하는 것 그 자체가 주권자에 대한 모욕”이라고 적었다.

성소수자의 인권은 여전히 타자가 ‘거부’하거나 ‘합의’할 수 있는 것 따위로 취급된다. 그리고 이들의 죽음은 반복되고 있다. “성소수자 죽음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성소수자가 안전하고 평등하다고 느끼는 사회가 돼야 합니다.” 이 말은 그가 한국 사회에 마지막으로 남긴 과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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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기홍씨. 이상훈 기자

고 김기홍씨. 이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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