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생리 빈곤' 극심···지자체는 나 몰라라

탁지영 기자
생리용품. 김기남 기자

생리용품. 김기남 기자

“재난지원금을 받았지만 아버지가 눈치를 줘 생리대를 구입할 수 없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며 학교에 비치된 생리대를 이용할 수 없어 월경용품 구입 부담이 커졌다”

지난 28일 ‘세계 월경의 날’을 맞아 서울시 청소년 월경용품 보편지급 운동본부(운동본부)가 공개한 설문조사 결과의 일부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생리 빈곤’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지만, 대다수 광역자치단체는 국비사업 외에 별도로 청소년 생리용품 지원 사업을 추진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구 등 생리용품 보편지급 조례를 마련한 지자체조차도 관련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이 분석한 ‘2021년 전국 월경용품 지원 사업 현황’ 자료를 보면, 부산·인천·대전·울산·세종·강원·충북·전북·전남·경북·경남은 여성가족부가 진행하는 여성청소년 생리대 바우처 지원 외 별도 생리용품 지원 사업을 추진하지 않고 있다. 여가부 사업은 수급자·차상위계층 등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을 대상으로 해 전국 여성 청소년의 6.5%만 지원을 받는다. 의원실 관계자는 “혜택 대상이 7% 미만인 상황에서 광범위한 사각지대가 있을 것으로 예측되나 (지자체에서) 아무런 해결 방안도 마련하지 않은 것”이라고 밝혔다.

대구·제주·충남은 별도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나 역부족이다. 대구는 학교 밖 여성 청소년에게 생리용품을 지원하고 있지만, 지원 대상 456명 중 신청자는 36명뿐이었다. 충남은 생리용품 무료 자판기를, 제주는 청소년 시설 32개소 내부에 생리대 무료 비치함을 설치했다. 의원실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청소년 시설이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했다.

한편, 올해 생리용품 보편 지급 사업을 추진하는 지자체도 있다. 광주광역시는 오는 7월부터 생리대 바우처 지원을 받지 않는 만 16~18세 청소년 1만9697명에게 생리용품을 무상으로 지원할 예정이다. 이 정책이 도입되면 광주에 사는 여성 청소년의 43%가 생리용품을 지원받게 된다. 전북은 교육청 사업으로 중·고등학교 학생 4만8003명에게 생리용품을 지급하고 있다.

경기도도 오는 7월부터 여성 청소년에게 생리용품을 무상 지원한다. 안산·군포·광주·김포·이천 등 14개 시·군에 사는 만 11~18세 여성 청소년 10만9242명이 지원을 받는다. 이 정책으로 생리용품을 지원받는 여성 청소년의 비율이 4%에서 25.6%로 늘어났다.

서울시 청소년 월경용품 보편지급 운동본부 제공

서울시 청소년 월경용품 보편지급 운동본부 제공

지난 2016년 여성 청소년이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 깔창과 화장지로 대신했다는 ‘깔창 생리대’ 문제가 불거진 지 5년이 됐지만 생리 빈곤은 여전하다. 생리 빈곤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생리 기간에 적절한 생리용품을 살 수 없거나, 이용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운동본부가 지난 5일부터 20일까지 전국 만 11세~24세 이하 청소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1234명 중 967명(74.7%)가 “비용이 부담돼서 월경용품 구입을 망설인 적 있다”고 밝혔다. “월경용품 구입에 드는 돈이 비싸다”고 답한 비율도 98.1%(1210명)에 달했다. 특히 응답자의 47.9%(590명)는 “코로나19 이후 월경용품 구입 비용에 대한 부담이 늘어났다”고 했다.

이들은 생리용품에 드는 돈을 줄이기 위해 “사용 개수를 줄이려 생리대 교체시간(4시간)을 넘겨 사용했다”(74%·869명) “부모님·양육자에게 말씀드렸다”(53%·630명) “친구나 지인에게 빌렸다”(23%·275명) “휴지, 수건 등으로 대체했다”(12%·141명) “보건실, 지역아동센터 등에 비치된 생리대를 이용했다”(11%·134명) 등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학교 보건실, 지역아동센터, 도서관 등 공공시설에서 생리용품을 제공하지만 그 수가 적고 이용하기 어렵다는 등의 문제도 제기됐다. 응답자의 35.3%(435명)만 공공시설 생리용품을 이용해봤다고 답했다. “생리용품을 제공하는 장소 수가 적어 실제 필요할 때 사용하기 어렵다”고 답한 비율은 57.9%(715명)에 달했다. “다른 사람의 눈치가 보이거나 교사 등으로부터 면박을 받은 적 있다”(51.1%·631명) “사용절차가 너무 번거롭거나 안내가 불충분하다”(23%·282명) “월경용품을 제공하는 기계가 고장나서 사용할 수 없다”(13%·156명)는 답변도 나왔다.

운동본부는 지난 2019년 생리용품 보편 지급 조례가 마련됐음에도 예산조차 편성하지 않은 서울시를 비판했다. 운동본부는 “서울시가 해당 조례에 대한 예산과 계획을 마련하지 않고 2년 동안 방관적 입장을 취하는 동안 청소년들은 월경용품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고 교육권과 건강권 등의 인권을 침해받고 있다”며 “월경용품 보편 지급 및 월경 교육에 대한 예산을 마련해 적극적이고 책임 있게 시행할 것을 서울시에 촉구한다”고 밝혔다.

용혜인 의원도 “생리용품을 구하지 못해 생리대를 늦게 교체하거나 화장지나 깔창으로 대체하는 등 생리 빈곤의 문제는 코로나19 시기 더욱 큰 문제”라며 “저소득층 청소년에게만 생리용품이 지원돼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월경권’이 모두의 권리임을 기억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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