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돋보기

“조국 전 장관 아들이 인턴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

전현진 기자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가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이 끝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가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이 끝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사건 확인서에 기재된 내용대로 인턴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이를 작성한 피고인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므로, 피고인은 이 사건 발언의 허위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고 할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2부(재판장 김상연)는 지난 8일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에 대해 벌금 80만원을 선고했다. 최 대표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들 조모씨에게 허위의 인턴확인서를 써준 뒤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되자,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해 “실제 인턴을 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허위사실공표죄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는 최 대표 본인이 해당 발언이 진실이 아님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아, 심플하게 여쭤보겠습니다. 했어요, 안 했어요? 인턴을?” 최 대표는 지난해 3월31일 팟캐스트로 제공되는 인터넷 방송 ‘정영진·최욱의 매불쇼’에 출연해 사회자의 질문을 받았다. “했죠.” “했어요, 확실히?” “걔(조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했어요, 우리 사무실에서.”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최 대표는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였다. 당시 최 대표는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상태였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는 과정에서 한 말이었다.

“고등학교 때에도 방학 때 이제 학교에서 체험활동 이런 걸로 숙제를 내주는 게 있잖아요. 그때부터 한 거예요. 그때 써준 확인서도 있는데 그건 아무런 문제를 삼지 않아. 왜냐하면 그때 한 거는 명확하거든, 자기들이 봐도. 그리고 이제 나중에 지난 거는 그거하고 글씨체가 좀 달라요. 나중에 써준 거는 제가 지금 정확히 옛날 일이라 기억은 안 나는데 그쪽에서 이렇게 이런 내용을, 이런 식으로 바쁘니까 이거를 해주시면 도장을 찍어주시면 좋겠다. 그래서 제가 그 내용을 확인하고 그래서 언제부터 언제까지 이걸 했으니까 그거를 확인하고 보내준 거였거든요.”

■“헌법상 평등은 불법의 평등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허위사실공표 혐의를 다룬 재판에서 최 대표 측이 내놓은 주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기소된 후보자가 선거운동에서 무죄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은 기소하지 않는 것이 검찰의 실무인데, 검찰개혁을 좌절시키기 위한 부당한 의도에서 최 대표만 예외적으로 기소해 공소권을 남용했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는 그의 발언이 무죄를 주장한 의견 표명이지 허위의 사실관계를 이야기한 것이 아니며, 무죄를 주장하고 그 근거를 언급한 것은 무죄 추정의 원칙에 비추어 사실의 공표로 판단해 처벌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우선 최 대표 측 변호인이 공소권 남용 주장을 하면서 예로 든 다른 후보자의 발언을 다시 예로 들었다. “불법에 대한 저항은 무죄이다” “명백한 정치 보복성 기소이자 정권 눈치보기식 하명기소”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 일을 문재인 정부가 제 발목을 잡으려고 채용비리로 엮은 것” “황당하고 어처구니 없는 소설 같은 이야기” 등이었다. 재판부는 이런 발언이 사실에 대한 언급 없이 후보자의 의견을 밝힌 경우가 대부분이거나 허위임이 명백하지 않다고 했다.

게다가 “헌법상 평등은 불법의 평등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다른 후보자의 발언이 설령 허위사실공표죄에 해당되는데 그들을 기소하지 않았다 해도, 최 대표 역시 기소하면 안 된다고 하는 건 불법의 평등을 요구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사실일까 의견일까

재판부는 사실 공표가 아닌 의견 표명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판단했다. 재판부는 “의견이나 평가라 하더라도 그것이 진실에 반하는 사실에 기초해 행해지거나 의견이나 평가임을 빙자해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표현방법으로 허위사실을 암시하는 경우에는 허위사실공표죄가 성립된다”고 했다.

재판부는 최 대표의 발언이 단순한 의견이 아닌 사실의 공표로 봄이 타당하다고 했다. 그의 발언이 조씨가 고교 시절과 2017년 확인서 작성 무렵 체험활동 또는 인턴을 했고, 고등학생 때에도 최 대표가 확인서를 작성해주었음에도 검찰이 문제 삼지 않았으며, 조씨 측이 작성해온 확인서의 내용이 사실에 부합하는 것임을 확인하고 날인해 주었다는 부분으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또 “후보자가 선거운동 중 무죄를 다투는 근거를 언급하면서 공표한 사실이라도 그것이 허위라면 규제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후보자가 선거운동 과정에서 소극적, 방어적으로 기소 내용을 부인하는 것을 넘어 자신에게 유리한 허위의 사실을 공표하는 것까지 허용한다면 선거제도의 기능이 훼손될 뿐만 아니라 범행이나 비리에 관한 의혹을 받는 것보다 차라리 형사소추 되는 것이 더 유리하게 되는 불합리한 결과가 초래된다”고 했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오른쪽 첫 번째)가 지난해 3월31일 출현한 팟캐스트 ‘정영진 최욱의 매불쇼’에 출연해 조국 전 장관의 아들에 인턴 확인서를 써줘 기소된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유튜브 화면 캡쳐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오른쪽 첫 번째)가 지난해 3월31일 출현한 팟캐스트 ‘정영진 최욱의 매불쇼’에 출연해 조국 전 장관의 아들에 인턴 확인서를 써줘 기소된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유튜브 화면 캡쳐

■“어떠한 소명자료도 제출하지 못 했다”

최 대표의 세 번째 주장은 인턴 활동을 실제로 했기 때문에 허위가 아니라는 것이었는데,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가 최 대표의 허위사실공표죄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건 다른 이유보다는 문제가 된 인턴 확인서를 허위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확인서는 조씨의 이름과 생년월일, 주소가 기재돼 있고 최 대표가 날인한 문서를 말한다. 그 내용은 “상기의 학생(조씨)은 2017년 1월10일부터 같은 해 10월11일 현재까지 매주 2회 총 16시간 동안 변호사 업무 및 기타 법조 직역에 관하여 배우고 이해하는 시간을 갖고, 문서정리 및 영문 번역 등 업무를 보조하는 인턴으로서의 역할과 책무를 훌륭하게 수행하였음을 확인합니다”라는 것이다.

이 확인서의 활동이 ‘인턴’인지 ‘체험활동’인지 아니면 ‘봉사활동’인지는 쟁점이 아니었다. 재판부가 중요하게 따진 것은 확인서에 기재된 기간에 해당 업무를 실제로 했는지 여부였다.

재판에선 검사에게 유죄의 입증 책임이 있다. 특정되지 않은 기간과 공간, 구체화되지 않은 사실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란 사회통념상 불가능한 반면 그 사실이 존재한다고 주장·증명하는 것이 더 쉽다.

재판부는 조씨의 인턴 활동 일시와 행위가 특정되지 않아 검사가 그 부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인턴 활동이 존재했다고 주장하는 최 대표 측이 소명자료를 제시해야 할 부담을 지고 검사는 그 자료의 신빙성을 탄핵하는 방법으로 허위성을 증명할 수 있다고 했다. 피고인 측이 인턴활동을 했다고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내면, 검사는 그 자료가 믿을 수 없다고 반론하는 방식으로 서로 논쟁을 주고 받은 뒤 재판부가 최종적인 판단을 하면 된다는 취지다.

문제는 최 대표 측이 인턴 활동의 존재를 증명할 소명 자료를 하나도 제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최 대표 주장대로 조씨가 최 대표의 법률사무실에 부정기적으로 나왔다 해도 9개월 동안 매주 2회의 빈도로 수십 차례 만났고 근무시간이 아닌 퇴근 후나 주말에만 약속을 정했다면, 구체적 일시를 한차례도 특정하지 못한다는 것은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조씨가 부정기적으로 방문했다면 전화나 이메일, 메신저, 문자메시지 등을 이용해 방문일시와 목적을 조율하는 것이 통상”이라며 “이를 확인하면 방문일시를 어렵지 않게 특정할 수 있을 것인데 피고인(최 대표)은 매번 다음 방문일시를 미리 정하거나 휴대전화로 일정을 조율해 소명자료가 남아있지 않다고 답할 뿐”이라고 했다.

또 최 대표와 같은 사무실 소속 A변호사가 “2017년 초순경 직원들이 퇴근한 후인 저녁 7~8시, 사무실에서 조씨로 짐작되는 사람을 두 번 본 적 있다” “피고인(최 대표)으로부터 조 전 장관의 아들이 인턴으로 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무실 직원이) 조 전 장관의 아들이 사무실에 온 것을 본 적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조씨로 짐작되는 젊은 사람이 ‘○○관련 가처분사건’의 영문서류를 들고 서성이는 것으로 보았다” “피고인으로부터 가처분사건의 영문 번역을 조 전 장관의 아들이 했다는 말을 들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재판부는 이런 진술이 검사의 주장을 탄핵할 정도로 구체성을 갖추고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 다른 직원은 인턴을 한 사람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고 진술하거나, 최 대표와 조 전 장관의 친분관계를 모르고 조 전 장관의 아들이 인턴을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또 해당 증언을 한 A변호사도 자신이 본 사람이 조씨인지 확인하지 못했고 짐작한 것에 불과하다고 인정했고, 그가 조씨를 대면한 것이 아니라 상당한 거리를 두고 보았던 상황에서 조씨로 짐작한 사람이 들고 있는 서류가 가처분사건에 관한 것인지 확인하기도 어려울 것으로 봤다. “A변호사의 진술은 선뜻 믿기 어렵다”는 것이다.

게다가 조씨가 소송기록을 검토하거나 영문 번역을 했다면 그 대상 서류나 번역문이 출력물이나 파일로 존재할 것인데 그런 소명 자료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했다. 최 대표는 “조씨가 법조인의 직무를 체험해 보는 정도의 활동을 하였기 때문에 소속기록을 검토한 보고서나 준비서면 초안을 작성하지는 않았고 영문 번역 결과물을 받기는 했지만 보관하진 않았다”고 답했을 뿐이다.

이밖에도 재판부는 조씨의 인턴활동이 존재하지 않았음이 간접사실로 증명됐다고 봤다. 최 대표의 법률사무실에서 2017년 근무한 직원 6명은 수사기관에서 “정기적으로 사무실에 나와 직원들의 업무를 보조한 사람이 없었고, 피고인 밑에서 인턴으로 일하는 학생을 보거나 그런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재판부는 “9개월에 걸쳐 매주 2회 인턴을 하였음에도 이를 알고 있는 직원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은 경험칙상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최 대표는 “조씨가 직원들의 퇴근 후나 주말에 나왔기 때문”이라 주장하지만 재판부는 “9개월 동안 한 차례도 일과시간에 사무실에 오지 못하거나, 별다른 어려움 없이 지도하고 수행할 수 있는 일 때문에 구태여 퇴근을 늦추거나 주말에 출근하는 불편을 감수하며 조씨를 만날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최 대표가 2016년부터 조씨 어머니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사건을 대리했는데, 인턴 확인서 작성 후인 2018년 4월경까지 조씨의 인턴활동에 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 또 2017년 5월12일 정 교수에게 “(조씨의) 목소리도 오랜만에 들었네요”라고 문자를 보냈는데, 그해 1월10일부터 매주 2회 만나 인턴으로 일했다는 확인서 내용과 배치되는 부분이다. 여기에 인턴 확인서 작성 얼마 후 정 교수와 만나 조씨가 로스쿨이 아닌 일반대학원에 응시했다는 것을 처음 들었다.

이 사건 확인서는 동일한 문서 파일을 정 교수로부터 이메일로 전송받은 뒤 출력하여 날인한 다음 다시 정 교수에게 보내는 방식으로 전달된 것으로 판단됐다. 재판부는 2017년 4월 조씨가 제출한 대학원 입학 서류에는 인턴 활동 내역이 기재돼 있지 않았는데, 인턴 확인서를 전달 받은 뒤 급하게 2018학년도 대학원 입학지원서에 첨부됐다며 매주 2회 조씨가 찾아왔다고 주장을 하면서도 조씨 본인이 아니라 이메일을 통해 확인서를 작성해 주고받은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들의 인턴 확인서를 허위로 써준 혐의로 1월28일 열린 1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인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가 재판을 마치고 서울중앙지법을 떠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들의 인턴 확인서를 허위로 써준 혐의로 1월28일 열린 1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인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가 재판을 마치고 서울중앙지법을 떠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선처에도 “매우 유감”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는 1)선거에 당선되거나 되게 할 목적으로 2)허위의 사실을 공표하였는지 쟁점이다. 지난 1월 1심에서 유죄로 판단된 업무방해죄는 1)허위의 인턴 확인서로 2)대학원의 입학사정 업무를 방해했는지를 따졌다. 구성요건이 조금 다르지만 인턴 확인서의 내용이 허위인지, 즉 조씨가 실제 인턴을 했는지 여부는 두 사건의 공통적인 쟁점이었다.

선거법 위반을 유죄로 판단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2부는 15년 이상 경력의 부장판사 3명이 재판장과 주심을 번갈아 맡는 대등재판부다. 업무방해 혐의를 유죄로 판단한 서울중앙지법 형사9단독 정종건 판사까지, 적어도 1심 법관 4명이 조씨의 인턴 활동이 허위였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재판부는 양형 기준에 따른 권고형의 범위를 벌금 500만~1000만원으로 밝혔는데, 실제로는 한참 못 미치는 벌금 80만원만 선고했다.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상실한다. 이런저런 사정을 종합해 권고형의 하한을 벗어나 가벼운 형을 정했다. 법정에서 변호인들이 흔히 사용하는 표현에 따르면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관용을 베푼” 셈이다.

재판부는 “전파성이 매우 높은 인터넷 방송에 출연해 허위사실을 공표했다”며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자는 정당투표 결과에 따라 당선자가 결정되는데, 열린민주당의 지지율과 최 대표의 순번을 판단하면 이 사건 범행이 당선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거나 선거의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결과가 발생했다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오히려 재판부가 최 대표의 상황을 이해한다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피고인은 친분관계 때문에 허위의 확인서를 작성해 주었다가 그로 인하여 관련 형사재판까지 받게 되었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검사의 처분이 과하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재판부는 이어 “유죄 판결의 부담 때문에 유권자들에게 이 사건 확인서에 관한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히기도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최 대표는 선고를 마친 뒤 재판부의 판단에 “매우 유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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