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배차 지시대로 배달 가면 이동 거리 늘고 건수는 줄어”

이혜리 기자

플랫폼 기업 ‘AI’ 검증 결과

라이더가 AI 배치를 100% 수락했을 때는 배달 반경이 넓어졌지만(왼쪽 화면의 파란색 선), 체력 상황을 고려하고 주력 지역을 선택해 자율적 배차를 했을 때는 배달 반경이 좁아졌다(왼쪽 화면의 빨간색 동그라미). 오른쪽 화면은 인접지역을 중심으로 한 자율적 배차 동선을 확대한 모습이다. 사진 크게보기

라이더가 AI 배치를 100% 수락했을 때는 배달 반경이 넓어졌지만(왼쪽 화면의 파란색 선), 체력 상황을 고려하고 주력 지역을 선택해 자율적 배차를 했을 때는 배달 반경이 좁아졌다(왼쪽 화면의 빨간색 동그라미). 오른쪽 화면은 인접지역을 중심으로 한 자율적 배차 동선을 확대한 모습이다.

라이더 자율적 배차 경우와 비교
노동 강도 높아지지만 수입 감소
업체, AI 배차 거절 땐 불이익 줘

“(AI가) 찍어준 데로 갔는데 대학교 안에서 15분 정도 돌아가야 되는 곳이 최종 배달지더라고요. 추가로 금액을 준다거나 위치 수정을 해주는 게 전혀 없습니다.”(배달의민족 라이더 A씨)

“선릉역에서 (음식을) 픽업해 대청역으로 가고 있는데 (AI가) 또 하나의 콜을 넣어줬어요. 웃긴 것은 픽업지가 또 선릉역인데, (대청역에서 한 정거장 떨어진) 학여울역 가는 것을 주는 거예요. 저는 대청역에 갖다주고 2㎞ 넘는 거리를 다시 픽업 와서 돌아가야 되는 상황인 거죠. 그런데 금액도 4700원이에요. 거절도 못하겠고….”(배달의민족 라이더 B씨)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은 항상 누구에게나 좋을까. 지난해 2월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이 국내 업계 최초로 AI 배차 시스템을 도입했다. 우아한형제들은 AI가 1초에 500만~5000만번의 계산을 거치며 최적의 경로와 배달원을 찾아 배정해준다고 밝혔다. 요기요 익스프레스와 쿠팡이츠도 AI 배차를 쓴다. 배달노동자들의 현실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라이더유니온은 29일 서울 사무금융노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3개 배달 플랫폼 업체의 AI 검증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지난 7~9일 라이더 12명을 통해 AI 배차를 100% 수락하는 경우, 라이더가 자율적으로 배차하는 경우, 교통법규를 준수하는 경우 각각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분석했다.

검증 결과 AI 배차를 100% 수락한 때는 라이더가 배차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때에 비해 주행거리가 증가했다. 노동 강도는 높아졌지만 시간당 배달 건수와 수익은 감소했다. 예를 들어 한 라이더가 ‘직선거리 4.3㎞ 배달을 15분 안에 가라’는 배달의민족 AI 배차를 수락한 뒤 배달해봤더니 실거리는 8.4㎞였고 배달시간은 24분이 걸렸다.

AI가 예측한 상황과 실제 배달이 이뤄지는 현실이 다른 것이다. 요기요 AI는 먼저 들어온 주문을 후순위로 배차하기도 했다.

그러나 플랫폼 업체들은 AI 배차를 라이더가 거절하면 불이익을 주고 있다. 라이더들이 AI 알고리즘을 “족쇄”라고 표현하는 이유다. 쿠팡이츠 라이더는 AI 지시를 일부 거절했다가 계정 정지를 당했다. 요기요 AI는 95% 수락률을 유지하지 않으면 배달료가 줄어들거나 등급이 떨어지고, 배달의민족 AI는 지나치게 거절하면 다음에 배차가 지연될 수 있다는 경고를 보냈다.

라이더가 자신의 체력과 주행 스타일(익숙한 구역과 장거리 배달 중 무엇을 선호하는지), 지리적 특색 등을 고려해 전략적으로 배차를 취소하거나 수락하는 게 오히려 효율성이 높았다고 라이더유니온은 분석했다.

이번 검증을 진행한 박수민 연구자는 “배달을 생업으로 꾸준히 하려면 체력에 맞게 일을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자율적 배차 때는 라이더가 자신의 상황에 맞게 배차할 수 있었다”며 “알고리즘이 더 효율적이냐, 자율적 배차가 더 효율적이냐가 아니라 라이더 각각의 상황을 배차에 반영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라이더들이 50㎞/h 이하 속도 유지, 교차로 신호등 준수 등 교통법규를 완벽히 지켜 배달할 경우 배달 1건당 약 30분이 소요됐다. 교통법규를 의식하지 않고 이동하는 경우와 비교하면 5분 정도 더 걸리는 셈이다. 이러면 시간당 한두 건을 배달하게 되면서, AI의 배차 개수와 수입이 모두 감소했다. 또 AI는 배달료 책정을 실시간으로 하는데, 이는 라이더들이 불안과 과속 위험에 빠지게 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신호를 어기는 라이더에게 인센티브가 오는 시스템”이라며 “실거리·날씨·도로 정체·음식 조리시간 등을 고려해 배달시간 기준을 현실적으로 바꾸고, 기본배달료를 높여 안정적인 요금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한 라이더는 “대형 배달 플랫폼사 입장에서는 AI가 너무나 간편하고 획기적인 시스템으로 보이겠지만 저희는 사람이며 노동자이지, 기계가 아니다”라며 “배달노동자들이 안전하게 배달할 수 있는 제도가 하루빨리 도입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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