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사 잦은 기업, 중대재해법 처벌 못할 듯

고희진 기자

시행령 초안 ‘직업성 질병’서 뇌심혈관·근골격계 질환 빠져

택배회사·유통업체 등 악용 우려…노동계, 수정 요구 계속

내년 1월 시행될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이 적용되는 직업성 질병에서 뇌졸중 등의 뇌심혈관계질환과 근골격계질환 등은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 질병이 시행령 적용 대상에서 빠지게 되면, 과로에 의한 질병 사망이 끊이지 않는 택배회사와 온라인 유통업체 등이 중대재해법에 따른 처벌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4일 노동계에 따르면, 정부가 최종 검토 작업을 진행 중인 시행령 제정안 초안에는 법 적용 대상인 직업성 질병에서 뇌심혈관계질환과 근골격계질환 등은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시행령은 이달 중 입법예고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 1월27일 법 시행을 앞둔 조치다.

중대재해법에서 정의한 ‘중대재해’는 다음의 3가지 상황을 의미한다. 첫째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한 사건, 둘째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한 사건이다. 세 번째인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한 경우다. ‘직업성 질병자’를 시행령에서 구체화해야 하는데, 여기에서 심혈관계질환과 근골격계질환이 빠진 것이다.

노동계는 심혈관계질환이 과로에 의한 질병과 사망의 대표적 유형이라는 점에서, 이 질환이 구체적으로 시행령에 명기되지 않게 되는 것은 문제라고 본다. 심혈관계질환은 심장과 주요 혈관에 발생하는 질환으로 심근경색, 협심증, 뇌졸중 등이 해당한다.

지난해 과로로 사망한 택배노동자 상당수가 부검 소견에서 뇌출혈 등 심혈관계질환 진단을 받았다. 과로사의 경우 노동자가 사망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중대재해법이 정의한 첫 번째 상황에 해당하지만, 과로 증상에 따른 심혈관계질환으로 중증 질병이 발생했을 때는 업체들이 빠져나갈 구멍이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로 지적된다.

심혈관계질환이 빠진 것은 경영계의 주장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경영계는 뇌심혈관계질환 등은 업무와 상관없는 개인적 특성도 발병 원인이 될 수 있어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시행령 제정안은 경영 책임자와 사업주에게 적용되는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과 이행 의무도 노동계 요구보다 상당 부분 축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대재해법은 경영 책임자와 사업주가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인력과 예산 등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과 이행 조치를 하도록 규정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시행령에 위임했다.

노동계는 시행령에 2인 1조 준수, 위험 작업 현장에 신호수(신호 담당 직원) 등 작업유도자 배치 등이 구체적으로 명시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대재해 예방 조치를 할 때,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규정 없이 기업이 안전보건 인력만 확보하면 되는 것으로 할 경우 사고 발생에 대한 책임을 묻기 어려울 수 있다.

이 밖에도 기업의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과 이행 의무에 하청까지 포함하는지를 두고 경영계와 노동계가 대립해왔기 때문에 시행령 초안 작업을 두고 마지막까지 의견이 오갈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는 정부의 입법예고가 이뤄진 후에도 의견수렴을 통해 문제가 되는 시행령 조항의 수정 요구를 계속할 계획이다. 경영 책임자와 사업주의 의무 범위를 시행령에서 축소할 경우, 법 정신이 무력화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중대재해법은 반복되는 산업현장의 안전사고를 줄이자는 것을 목표로 올해 1월 제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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