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지샜다. 많이 춥다" 조난 김홍빈 대장 마지막 통화

강현석 기자

위성 전화로 국내에 조난 요청

러시아 구조대 발견 당시 '생존'

구조 도중 다시 사고 당한 듯

김홍빈 대장이 브로드피크 등정을 앞두고  베이스 캠프에서 찍은 사진. 광주시산악연맹 제공. .

김홍빈 대장이 브로드피크 등정을 앞두고 베이스 캠프에서 찍은 사진. 광주시산악연맹 제공. .

“조난을 당해 밤을 새웠다. 많이 춥다.”

장애인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했지만 하산 도중 조난된 ‘열 손가락 없는 산악인’ 김홍빈 대장(57)은 지난 19일 오전 5시55분(파키스탄 현지 시간) 위성전화로 국내에 구조를 요청하며 이렇게 말했다.

김 대장은 지난 18일 히말라야 브로드피크(8047m) 등정에 성공했다. 홀로 산을 내려오다 조난당한 김 대장은 히말라야서 밤을 보낸 뒤 아침 일찍 위성전화로 국내에 전화를 걸어 구조를 요청했다. 산악인들은 “김 대장이 8000m 히말라야에서 밤을 새웠다는 것은 초인적인 힘”이라면서 그의 무사생환을 기원했다.

■ 5명 정상 올랐지만 내려올 땐 ‘혼자’

20일 광주시산악연맹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김 대장은 현지시간으로 지난 18일 오후 4시58분(한국 시각 오후 8시58분) 파키스탄 령 카슈미르 북동부 카라코람산맥 제3 고봉인 브로드피크(8047m) 등정에 성공했다. 장애인으로는 처음으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하는 쾌거를 달성한 것이다.

함께 정상 공략에 나섰던 국내 원정대원 2명이 7700m 지점에서 크레바스(빙하 표면에 쪼개진 틈)에 막히자 김 대장은 등산 안내와 장비 등을 나르는 현지인 ‘고소 포터’ 4명과 함께 정상에 올랐다. 정상 등정에 성공한 이후 고소 포터와 김 대장은 각자 하산을 시작했다. 생계를 목적으로 동행하는 고소 포터들은 정상을 공략하면 등반대와 상관없이 각자 하산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고소 포터 4명이 차례로 7500m 지점에 설치된 캠프4에 도착했지만 김 대장은 이후 수 시간이 지나도 캠프에 도착하지 못했다. 산소가 평지의 30% 수준에 불과한 극한의 환경에서 김 대장에게 하산은 등정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

임형칠 광주전남등산학교 이사장은 “국내 대원들은 생사를 함께하는 만큼 하산할 때 사고에 대비해 밧줄로 서로를 묶기도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사고가 나면 더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어 현지 고소 포터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김홍빈 브로드피크 원정대’가 정상 공략을 앞두고 베이스 캠프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광주시산악연맹 제공.

‘김홍빈 브로드피크 원정대’가 정상 공략을 앞두고 베이스 캠프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광주시산악연맹 제공.

■ 히말라야서 밤 지새우고 구조요청

김 대장의 조난 사실이 확인된 것은 지난 19일 오전 5시55분 이었다. 그는 위성전화로 평소 등산을 도와주던 부산의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대장은 “조난을 당했다. 구조를 요청한다. 밤을 새웠고 등강기 2개와 무전기가 필요하다. 많이 춥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 대장의 조난 상황은 곧바로 현지 베이스캠프에 전달됐다. 상황을 전달 받은 다른 등반대들은 조난 위치 등을 전파하고 구조에 나섰다. 러시아 구조대가 오전 11시쯤 7800m 지점에서 김 대장을 발견했다. 발견 당시 김 대장은 의식이 있었고 손을 흔들기도 했다고 전했다.

러시아 대원 1명이 조난 지점으로 내려가 김 대장에게 물을 제공한 뒤 15m 정도를 끌어 올렸다. 더 이상 끌어올릴 수 없는 위치에 도착하자 김 대장은 스스로 등강기를 이용해 빙벽을 오르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러시아 구조대는 오후 1시42분 쯤 김 대장이 등강기를 이용해 올라오다 다시 추락했다고 한국 측 연락관에게 통보했다. 자세한 사고 경위는 하산 중인 러시아 구조대가 베이스캠프에 도착해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광주시 ‘수습대책위’ 구성, 무사생환 기원

광주시는 이날 문화경제부시장을 위원장으로 ‘김홍빈 브로드피크 원정대 사고수습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구조 지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브로드피크 등정에 성공한 김 대장의 행방을 현재까지 알 수 없다. 황망하고 믿을 수 없다”면서 “삶 자체가 인간승리인 김 대장이 모진 역경을 이겨내고 살아 돌아 올 것”이라고 말했다.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사람은 비장애인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44명 뿐이다. 한국인은 김 대장을 포함해 7명이다. 김 대장은 27세였던 1991년 북미 최고봉인 알래스카의 데날리(6194m) 단독 등반에 나섰다가 조난으로 동상에 걸려 열 손가락을 모두 잃었다.

하지만 장애를 극복하고 다시 산에 오르기 시작해 2009년 7대륙 최고봉을 모두 밟았다. 2006년 가셔브룸2봉(8035m)을 시작으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도전한 김 대장은 15년 만에 성공했다. 장애인 알파인 스키와 사이클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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