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가 아니라 버릇이다… 폭력을 ‘논란’으로 희석시킨 것도 언론이다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미디어의 도쿄 올림픽 ‘헛발질 종합세트’

이번 도쿄 올림픽은 미디어의 자기반성과 쇄신 필요성을 상기시켰다. MBC는 개회식 국가 소개에 부적절한 사진과 자막을 사용해 비난을 받았다. 온라인 커뮤니티 화면 캡처

이번 도쿄 올림픽은 미디어의 자기반성과 쇄신 필요성을 상기시켰다. MBC는 개회식 국가 소개에 부적절한 사진과 자막을 사용해 비난을 받았다. 온라인 커뮤니티 화면 캡처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는 모르는 것들이 있다. 유례없는 팬데믹 상황으로 도쿄 올림픽을 둘러싼 시선은 개막 전까지 회의적이었다.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가 자신하던 ‘버블 방역’이 물거품이 되어버렸고, 허술하고 배려 없는 운영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전 세계인의 축제라는데 이렇게 심드렁할 수 있나? 역대 가장 미지근하던 올림픽의 열기가 예상을 깨고 후끈 달아올랐다. 선수들의 열정과 드라마 때문이다. 또한 이전과는 달라진 스포츠 감수성이나, 많은 이들이 공유하는 문제의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두가 중계를 챙겨 보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하면서 따라잡을 순 없기에 오늘은 여러 이슈를 조금씩 골라 담아 정리해볼 것이다. 주제는 올림픽 보도와 미디어의 역할. 찬물과 기름을 번갈아 끼얹던 미디어의 헛발질 모둠 세트 하나 들어갑니다~!

언론이 이번 올림픽에서 특별히 실수를 많이 했다기보다는, 지금까지의 버릇이 터져 나왔다고 봐야 한다. MBC는 개회식 중계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국가 소개에서 부적절한 사진과 자막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MBC는 우크라이나를 소개할 때 체르노빌 원전 사고 사진을, 아이티를 소개할 때 “대통령 암살로 정국은 안갯속”이라는 자막을 송출했다. 또한 마셜제도는 “한때 미국의 핵 실험장”이라고 설명했으며, 노르웨이 소개 차례에는 연어 사진을 띄웠다. 지난달 25일에는 국가대표팀과 루마니아 팀의 경기에서 마리우스 마린 선수가 자책골을 넣자 “고마워요 마린”이라는 자막을 띄워 질타를 받았다. 상대 팀의 실수를 희화화한 것은 올림픽정신에 어긋나는 결례이자, 주요 언론사의 품위를 훼손하는 행위이다. 처음부터 특정 국가를 모욕하거나 무례를 범하겠다는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됐다. 재치와 웃음을 노린 시도가 ‘밈’화에 기대면서 실패한 것이다. MBC는 공식 트위터와 홈페이지에 국문으로 사과문을 올렸다가 이후 영문 버전을 추가했고, 26일에는 박성제 사장이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했다.

‘밈(meme)’은 유행하는 언어, 사진, 영상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즉각적인 연상이나 웃음을 유발한다. “노르웨이=연어” “우크라이나=체르노빌 원전” “상대의 자책=고마움” 같은 도식은 일부에게만 유효한 밈이다. 그런데도 주요 방송사에서 비판 없이 밈을 사용했다. 비단 MBC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말이나 사진, 인물이 방송에 곧잘 진출한다. 또한 최근 몇 년 사이 스포츠 중계, 개표 방송, 뉴스 등이 꾸준히 ‘예능화’됐다. 아슬아슬하게 선을 건드리는 유머일수록, 더 웃길수록 화제가 된다. 방송사는 무리수를 둔다. 폭설 속에서 기다리던 박대기 기자가 큰 인기를 끌자 기자들을 점점 더 어려운 상황에 내던지는 식이다. 뉴미디어 시대, TV는 가장 고루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언론은 알아야 한다. 주요 언론사는 주요 언론사의 역할이 있고, 본분은 재미가 아니며, 시청자는 이것을 구별할 줄 안다. “야, 내가 재미있는 얘기 해줄까?!” 하고 들떠서 달려오는 사람이 주절주절 늘어놓는 농담만큼 처절한 ‘노잼’이 있을까?

올림픽 양궁 3관왕 안산 선수에게 쏟아진 온라인 괴롭힘에 대한 보도 행태도 논란을 만들었다는 비판을 피해가지 못했다. 연합뉴스

올림픽 양궁 3관왕 안산 선수에게 쏟아진 온라인 괴롭힘에 대한 보도 행태도 논란을 만들었다는 비판을 피해가지 못했다. 연합뉴스

언론의 본분을 논하자면, 안산 선수에게 쏟아진 온라인 괴롭힘을 보도한 행태를 빠뜨릴 수 없다. 양궁 국가대표 안산 선수는 올림픽이 한창이던 도중 갑작스러운 사이버폭력에 노출되었다. 남초 커뮤니티 사용자들이 안산 선수의 짧은 머리가 ‘탈코르셋’(여성들이 꾸밈노동에 저항하는 운동)이라는 억측을 자아내며 선수를 검열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격자들은 안산 선수의 학교, 평소 착용하는 세월호 배지, 몇몇 단어를 문제 삼아 안산 선수가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했다. 지역혐오와 여성혐오가 결합한 형태의 공격이었다. 공격자들은 페미니스트는 남성혐오자이니 안산 선수는 금메달을 반납하고 사과해야 한다는 집단적 광기에 휩싸였다. 문제를 더 키운 것은 국내 언론이다. 언론은 사건 초기부터 게시글이나 댓글을 고스란히 전달하며 ‘논란’이라고 보도했다. ‘안산 선수 쇼트커트 논란’ ‘페미 논란’ ‘젠더 갈등’.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아카이브 빅카인즈 검색 결과, 7월24일부터 8월3일까지 ‘안산’ ‘쇼트커트’ ‘페미’ ‘논란’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기사는 108개에 이른다.

스포츠 중계·선거 개표방송 등
최근 몇 년 사이 꾸준히 예능화
‘웃기기 위해’ 아슬아슬 줄타기
이번에 사진·자막 사고로 번져

논란 = 여럿이 다른 주장을 다툼
안산 선수는 일방적 공격 당한 것
피해가 논란이 되어버리는 순간
피해를 해명해야 하는 압박 시달려

‘논란’의 사전적 의미는 ‘여럿이 서로 다른 주장을 내며 다툼’이다. 자신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활 쏘고 있는 세계 1위 선수와, 머리 모양을 트집 잡는 인터넷 사용자는 대등한 논쟁의 주체가 아니다. 머리 모양이 페미니스트의 상징이라거나, 페미니스트는 남성혐오자라는 억지는 어떤 주장이 아니다. 안산 선수는 논란에 휩싸인 게 아니라 부당한 공격을 당했다. 아무 데나 논란을 갖다 붙이면 사건의 본질은 왜곡된다. 이렇게 가해자와 피해자를 뭉개고 사건의 논지를 흐리는 것은 적극적으로 가해에 동조하는 행위이다. 공격자들은 자신이 하는 것이 정당한 주장이라고 착각한다. 반면 BBC, 로이터, 슈피겔 등의 외신은 이를 명확히 성차별주의자의 ‘온라인 학대, 폭력(online abuse)’이라고 보도했다. 폭력을 정확히 폭력이라고 명명하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별하며, 그 폭력이 얼마나 비정상적이고 부당한지 말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공격자와 방관자의 연결 고리를 끊고, 폭력의 확산을 차단할 수 있다. 실제로 외신 보도 이후 공격이 주춤했다. 안산 선수는 온라인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개인전 금메달을 따내며 새로운 기록을 썼다. 그러나 충분히 강한 여성이라도 괴롭힘은 정당화되지 않는다. 강하지 않은 여성이라도 괴롭힘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언론이 논란을 만든다. 피해가 논란이 되는 순간, 피해자는 자신을 ‘해명’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지금까지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여성을 공격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는 이유로, 페미니즘 굿즈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여성 인권 단체를 SNS에서 팔로했다는 이유로 많은 여성이 공격당하고 일자리를 잃었다. ‘논란’이라는 단어 속에서 번번이 폭력은 쌍방의 문제로 굴절되었고 페미니스트가 문제라는 낙인이 만들어졌다. 페미니스트가 무엇이 문제인가? 상식적인 세계에서는, 차별과 혐오에 반대하는 페미니스트가 아닌 것을 부끄러워할 일이다.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모욕으로 쓰인다면, 자신이 어떤 환경에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외신 보도 후에도 연합뉴스는 논란이라는 표현을 고수했다. 유해하다. 연합뉴스는 방송과 신문, 정부, 포털 사이트, 기타 예약 구독자에게 기사를 공급하는 국가기간 뉴스 통신사이다. 연합뉴스가 명확한 폭력을 얼버무리면, 그 효과는 다른 언론사로 퍼진다. 정확하게 써야 한다. ‘연합뉴스의 보도 윤리 논란’이 아니라, ‘연합뉴스의 보도 윤리 방기’처럼.

또 다른 문제점은 중계에서의 불평등과 캐스터의 태도이다. 지상파는 시청자의 다양한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상파 방송 3사에 도쿄 올림픽 순차 방송을 권고했다. 과도한 중복 편성으로 인한 시청자 권익 침해를 최소화하자는 취지이다. 그러나 중계는 여전히 인기 종목에만 쏠린다. 요트와 같은 종목은 선수가 괄목할 만한 성적을 내도 중계가 아예 없고, 야구와 축구 경기가 있는 날에는 4개 채널이 2가지 경기만을 중계했다. 같은 날 열린 여자 배구는 케이블 방송에 편성됐는데, 케이블 방송이 나오지 않는 지역에서는 중계를 볼 방법이 없었다. 균형 잡힌 중계로 선수의 노력과 스포츠정신을 알리고, 다양한 시청권을 보장해야 한다. 메달권에 들지 못하거나 금메달이 아닐 때 아쉬워하는 캐스터의 발언도 시정돼야 할 부분이다. 은메달을 따면 아쉬워하거나, ‘저 메달의 색이 바뀔 때까지 갈고닦아야 한다’라는 식의 발언은 자중해야 한다. 또한 외국 중계의 인종 차별 발언에만 분노하지 말고, 우리의 중계는 어떠한지 돌아봐야 할 때다. 메달과 무관하게 선수 개인의 기록이나 페어플레이 정신을 조명하는 중계도 많았다. 이러한 분위기가 더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이번 올림픽은 개인의 성취에 집중하는 선수들의 변화가 두드러졌다. 갈고닦은 기량을 펼친 것에 만족하고, 죄스러워하거나 자신을 학대하지 않는 태도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스포츠가 성과주의나 국가주의와 완전히 결별하기는 힘들겠지만, 새로운 가치와 결합할 수 있다. 그 가능성을 본 것만으로도 이번 올림픽은 의미 깊다. 이러한 의의를 손상하지 않으며 더 좋은 곳에 함께 이를 수 있도록, 미디어의 자기반성과 쇄신이 필요하다.


Today`s HOT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이·팔 맞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인도 스리 파르타샤 전차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시위대 향해 페퍼 스프레이 뿌리는 경관들 토네이도로 쑥대밭된 오클라호마 마을 페루 버스 계곡 아래로 추락 불타는 해리포터 성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