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무슨 축구냐고?… ‘이 좋은 것’을 가르쳐 준 적은 있고?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첫 여자축구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의 활약에 거는 기대

서로 밀치고 동료끼리 다독이며, 벌겋게 익은 얼굴로 포효한다. 최초의 여자 축구 예능프로그램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이 예능적인 재미와 다채로운 쾌감을 선사하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SBS 제공

서로 밀치고 동료끼리 다독이며, 벌겋게 익은 얼굴로 포효한다. 최초의 여자 축구 예능프로그램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이 예능적인 재미와 다채로운 쾌감을 선사하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SBS 제공

가만히 있어도 비지땀이 쏟아진다. 이럴 때는 월드스타 비가 아니더라도 ‘태양을 피하는 방법’ 정도는 숙지해야 할 것 같다. 특히나 여자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화와 그을음의 원인인 자외선을 차단해야 한다. 그런데 누구보다 ‘비주얼’에 민감할 여자 연예인들이 그늘 한 점 없는 뙤약볕 아래에서 종횡무진 달린다. 서로 밀치고, 동료끼리 다독이며, 벌겋게 익은 얼굴로 포효한다. SBS 수요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의 한 장면이다.

설 특집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편성되어 인기를 끌었던 <골 때리는 그녀들>이 정규로 편성되었다. 최초의 여자축구 예능이다. FC국대패밀리(국가대표 선수 출신이거나 축구 선수의 가족으로 구성), FC개벤져스(개그우먼으로 구성), FC구척장신(모델들로 구성), FC 불나방(파일럿 당시 <불타는 청춘> 출연자 중심) 4개였던 팀은 FC월드클라쓰(외국인 방송인으로 구성), FC액셔니스타(배우들로 구성) 두 구단이 신설되어 총 6개로 늘어났다. 파일럿 방송 당시 “남자축구를 보는 줄 알았다” “(헤딩이) 핀 꽂은 자리에 맞았다” 같은 해설과 흥밋거리를 보는 듯한 태도를 두고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무례한 제작진이 만든 ‘여혐사회 축소판’”이라고 비판했다.

FC국대패밀리는 파일럿 방송 당시 유니폼에 ‘○○○의 아내’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정규 방송에서는 오롯이 선수의 이름과 등번호만 남겼다. FC국대패밀리가 입장할 때 뜨는 소개 자막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그 누구를 대신해서가 아니라 나를 대표하는 나만의 축구.” 출연자들은 축구를 통해 새로운 자신과 만난다. 여전히 FC월드클라쓰의 외국인 선수와 최진철 감독의 관계를 ‘딸’과 ‘대디’로 프레이밍하는 등 고질적인 한국 예능의 병폐가 있다. 그러나 화면 가득 넘실대는 선수들의 파이팅은 몇몇 탐탁잖은 요소를 간단히 파묻어버릴 만큼 매력적이다.

서로 밀치고 동료끼리 다독이며, 벌겋게 익은 얼굴로 포효한다. 최초의 여자 축구 예능프로그램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이 예능적인 재미와 다채로운 쾌감을 선사하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SBS 제공

서로 밀치고 동료끼리 다독이며, 벌겋게 익은 얼굴로 포효한다. 최초의 여자 축구 예능프로그램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이 예능적인 재미와 다채로운 쾌감을 선사하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SBS 제공

여성 스포츠를 향한 갈망이 높아진 가운데, <골 때리는 그녀들>은 예능적인 재미와 다채로운 쾌감을 선사한다. 각 선수의 서사와 경기 내용을 교차해서 보여주는 편집이나, 파일럿 방송에서 우승한 FC불나방을 디펜딩 챔피언으로 설정하고 꼴찌였던 FC구척장신의 성장을 조명하는 구성은 축구를 모르는 시청자도 쉽게 끌어당긴다. FC개벤져스의 김민경은 몸집이 큰 여성에게 지금껏 주어지지 않았던 강점을 아낌없이 발휘하며 촘촘한 수비를 타고난 피지컬로 뚫어버린다. 아무도 억지로 웃지 않고 마음껏 인상 쓰며, 분해서 울음을 터뜨린다. 움츠러들지 않는 몸의 질주를 보는 시각적 쾌감이 어마어마하다. 여성들이 몸을 부대끼고 경쟁하고 또 단합하는 장면이 그동안 미디어에서 얼마나 드물었는지 새삼 실감한다. 한혜진은 <골 때리는 그녀들> 제작발표회에서 “평소 각개전투식으로 활동하던 모델들이 서로의 이름을 연호하고, 화내고, 원망하는 모습을 보며 신선한 충격에 빠졌다”고 말했다. 신봉선은 7일 방송된 SBS 파워FM <두 시 탈출 컬투쇼>에서 “축구하시면 사고방식이 달라진다. 아이들도 시켜야 한다”며 축구를 추천했다. 특히 “왜 이 좋은 걸 여자아이들은 안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할 때, 지금껏 ‘이 좋은 것’(비단 축구만이 아닌)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배제당해온 여성들은 그 진한 안타까움을 본능적으로 알아챌 수 있었다.

어설프지만 성장의 열정과 파이팅
여성 스포츠 갈망 채워 쾌감 선사

‘원래 안 좋아한다’는 편견의 문턱
어릴 때부터 운동 접할 기회 뺏어

‘축구하면 사고방식이 달라진다’
‘골 때리는’ 그 선수들이 즐길수록
특별함이 일상의 모습으로 바뀔 것

‘여자가 무슨 축구를 하냐’ ‘그게 축구냐’ 같은 편견과 성별 고정관념은 두 개의 현실을 지운다. 하나는, ‘축구하는 여자들’의 존재. 세상은 번번이 지소연이나 여민지, 이민아처럼 뛰어난 선수가 활동하고 유소년축구대회나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여자축구의 수준이나, 전국 어딘가에서 지금도 신나게 뛰는 여자축구인들을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한다. 또 다른 하나는, ‘여자는 원래 축구 같은 거 안 좋아한다’는 편견이 사실인 양 형성되는 과정이다.

여고 재학 시절, 체육대회 종목에 축구가 있었다. 처음 봤을 때는 당황했다. “여고에서 축구라고?” 의외로 축구팀 모집은 대성황이었고, 입시가 우선순위인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점심시간마다 ‘축구 특훈’이 열렸다. 축구팀에 들어간 친구들은 급식을 마시다시피 하고 황급히 공을 차러 뛰어나가곤 했다. 체육대회 당일, 경기는 공 두 개로 진행되었다. 남자 체육선생님이 비웃었다. “공만 따라다니네.” 갑자기 화가 울컥 솟았다. 가르쳐준 적은 있고?! 벌떡 일어나 목이 터져라 아무 팀이나 응원하기 시작했다. 뙤약볕 아래 흙먼지와 뒤섞인 친구들이 한껏 일그러진 얼굴로, 용맹하고 씩씩하게, 누구도 가르치려 들지 않았고 시킨 적 없는 축구를 하고 있었다. 어설프지만 즐겁고 뜨겁게. 여대에 다닐 때도 축구 경기가 매년 열렸다.

조금 특수한 환경에 있었기에 여자축구라는 단어가 그렇게까지 낯설지 않았음에도 나는 그 모든 풍경의 구경꾼으로만 존재했다. 옆에서 강아지가 아무리 맛있게 간식을 먹어도 그건 내가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듯, 한 입 달라고 하면 큰일 나듯, 제법 재미있어 보이고 보는 사람의 가슴마저 뜨겁게 해봤자 … 축구는 ‘내’가 하는 운동이 아니었다. 그 문턱은 왜 그렇게 높고 아득했을까.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드리블도 배웠다. 그런데 운동장에서 축구를 할 만한 공간을 차지하고 인원을 모으기가 쉽지 않았다. 남자아이들과 섞여서 축구를 할 만큼 튀고 싶지도 않았다. 굳이…? 소설 원작의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넷플릭스, 2020)에서 사고를 일으키는 여학생 허완수(심달기)의 캐릭터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장면 중 하나가 교복 치마를 입은 채 남자아이들과 뒤섞여 축구를 하는 것이다. 남자아이는 고개만 돌려도 공 찰 기회가 널렸지만, 여자아이는 ‘남다른’ 혹은 ‘별난’ 애 정도는 되어야 축구를 한다. ‘나’를 환영하지 않는 운동장에서, 여자아이는 한쪽에 앉아 있거나 피구나 하면서(그놈의 피구피구피구! 피구왕 통키로부터 ‘뒷광고’라도 받은 것인지?!) 체육시간을 보내게 된다. 모두가 균질한 교육을 받아야 하는 공교육 현장에서, “원래 안 좋아한다”는 정당화는 얼마나 비겁하고 부당한가? 여학생 대상으로 교육 성실도를 따진다면, 전국의 많은 체육교사는 근무 태만 의혹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한채아는 “남자들처럼 야외에서 뛰면서 유산소 운동을 즐겁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조기축구회를 알아보기도 했다”며 참가 의도를 밝혔다. 김민경은 웹 예능 <오늘부터 운동뚱>에서 엄청난 운동신경으로 화제를 모았는데, 여자아이가 어릴 때부터 쉽게 운동을 접하고 기회를 잡는 환경이었다면 우리나라 체육계의 역사가 바뀌었을 거라는 말이 농담 같지 않다. 이러한 갈망 때문인지, <골 때리는 그녀들>의 재미를 견인하는 것의 8할은 선수들의 열정과 파이팅이다. 리그에 참가하기 위해 전 선수가 4개월 이상 레슨을 받았다. 황선홍은 “편하게 왔는데, 안에서 뛰는 선수들이 너무 진지하다”며 놀란다. MBC <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이경실은 즐기면서 하자는 예능 마인드로 임했다가 신봉선에게 혼쭐(?)난 일화를 털어놓는다. 신효범은 노래할 때만큼이나 행복하다고 털어놓고, 송은영은 연습에 참여하고자 매일 경기도 광주와 대전을 오간다. 한혜진은 발톱이 빠지는 투혼 끝에 기어이 짜릿한 첫 골을 넣는다.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2018, 민음사)에서 김혼비 작가는 남자들이 조기축구를 할 때 여자들은 축구와 조기 이별했다고 말하면서, 축구를 할 때마다 고루한 사회적 통념이 구획해놓은 세상의 영역을 체감한다고 썼다. “이렇게 세상이 일방적으로 나눈 구획들이 선명하게 보일 때면, 우리가 속한 팀과 거기서 하고 있는 취미 활동이 그 영역을 어지럽히고 경계를 흐리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걸 자각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운동이 ‘운동’이 되는 순간이다. 일상에서 개인이 편견에 맞서 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건 결국 편견의 가짓수를 줄여나가는 싸움 아닐까. ‘여자가 ○○를 한다고?’라는 문장에서 ○○에 들어갈 단어의 숫자를 줄이는 것 같은. 나와 우리 팀과 수많은 여자축구팀 동료들은 저기서 ‘축구’라는 단어 하나를 빼는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272쪽) 축구의 매력에 푹 빠진 선수들이 자유롭고 호쾌하게 축구를 즐길수록, 낡고 견고했던 어떤 벽이 흔들린다. 여자도 취미로 축구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이, 그것이 너무나 즐겁고 특별하다는 확신이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기회의 슈팅이 될 것이다. 특별함이 일상이 될 때까지 <골 때리는 그녀들>의 도전이 이어지길, 우리의 그라운드가 더 넓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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