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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와 승강장 간격 ‘매우 위험’…보이나요, 누군가에겐 절망인 28㎝

조형국·김유진·이수민 기자

열차와 승강장 간격 ‘매우 위험’

서울 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 상선(당고개행) 3-3 승강장의 실제 차량 승강장 연단 간격 모습. 공사가 밝힌 이 승강장의 간격은 전동휠체어에 절벽 같은 28㎝다. 조형국 기자

서울 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 상선(당고개행) 3-3 승강장의 실제 차량 승강장 연단 간격 모습. 공사가 밝힌 이 승강장의 간격은 전동휠체어에 절벽 같은 28㎝다. 조형국 기자

서울 지하철역 296곳 조사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장향숙씨는 지체장애 1급 장애인이다. 그는 2019년 4월30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신촌역 3-2 승강장에서 휠체어 바퀴가 빠지는 사고를 당했다. 이 승강장과 열차 사이 간격은 17㎝. 도시철도법이 정한 ‘도시철도건설규칙’에는 “차량과 승강장 연단 간격이 10㎝가 넘는 부분에는 안전발판 등 승객의 실족사고를 방지하는 설비를 설치해야 한다(10㎝ 룰)”는 규정이 있다. 장씨는 해당 역을 관리·운영하는 공사가 ①도시철도건설규칙을 위반했고 ②장애인차별금지법이 규정한 차별행위를 저질렀다며 차별 구제 소송을 제기했다.

장씨는 서울교통공사(공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지만 1·2심 모두 패소했다.

■법 만들면 뭐하나

승강장 발빠짐, 여기서 다쳐야 서울교통공사 책임입니다…서울교통공사 관할 지하철 역 296곳 중 도시철도건설규칙 10㎝ 룰이 적용되는 역(2005년 이후 준공)만 남기자 28곳 역이 남았다. 나머지 268곳 역에 10㎝ 이상 간격인 승강장에서는 공사가 실족사고 방지 설비를 해야 할 의무가 없다. 사진 크게보기

승강장 발빠짐, 여기서 다쳐야 서울교통공사 책임입니다…서울교통공사 관할 지하철 역 296곳 중 도시철도건설규칙 10㎝ 룰이 적용되는 역(2005년 이후 준공)만 남기자 28곳 역이 남았다. 나머지 268곳 역에 10㎝ 이상 간격인 승강장에서는 공사가 실족사고 방지 설비를 해야 할 의무가 없다.

간격 가장 넓은 곳 성신여대입구역 ‘28㎝’
충무로·도봉산·서울역 ‘발빠짐 사고’ 빈발

2005년 이후 준공된 역에만 간격 10㎝ 적용
서울교통공사 관할 역사 중 28곳에만 해당

법원이 공사의 손을 든 이유는 ‘경과규정’에 있었다.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는 2004년 해당 시행령을 개정하며 ‘이 규칙 시행 당시 건설됐거나 건설 중인 도시철도에 관하여는 종전 규정에 의한다’는 부칙을 달았다. 그 결과 2004년 이전 지어졌거나, 짓고 있던 역에서는 10㎝ 룰이 적용되지 않는다.

장씨가 사고를 당한 2호선 신촌역은 1984년 준공됐다. 재판부는 ‘신촌역은 1984년에 지어져 10㎝ 룰을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2005년 이후 공사에 들어간 역에서만 10㎝ 룰이 적용된다고 인정한 것이다.

공사가 관할하는 1~9호선 역사 296곳 중 2005년 이후 공사에 들어간 역은 28곳(10.57%)에 불과했다. 공사의 법적 책임이 있는 곳은 28곳, 없는 곳은 268곳이라는 뜻이다.

경향신문 데이터저널리즘팀은 정보공개청구로 연단 간격 10㎝ 이상 승강장을 확인했다. 공사 책임이 없는 268개 역 승강장 1만8856곳 중 연단 간격이 10㎝가 넘는 곳은 151개 역 3607곳이었다. 승객 안전을 위해 규칙을 고쳤지만, 그 규칙이 작동하지 않는 안전 사각지대다. 공사 자료를 보면, 연단 간격이 가장 넓은 곳은 28㎝(4호선 성신여대입구역 상선 3-3)였다.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은 승강장 20% 이상이 연단 간격 20㎝가 넘었다. 상선 승강장 평균 연단 간격은 20.3㎝였다. 1호선 서울역(10%), 3호선 동대입구역(5%), 4호선 회현역(4%) 순으로 간격 20㎝ 이상 승강장이 많았다. 간격이 10㎝를 넘는 승강장은 홍제역, 수서역, 경복궁역 등이 있는 3호선에 가장 많았다. 이어 4호선, 1호선, 2호선 순이었다.

간격이 넓은 승강장에서 발빠짐 사고가 잦은 것은 당연했다. 성중기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이 공사에서 제출받은 ‘최근 5년간 지하철 발빠짐 사고 발생 현황’을 분석한 결과 연단 간격이 넓은 승강장에서 발빠짐 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발생한 발빠짐 사고는 총 340건, 이 중 사고 발생 승강장이 특정되는 곳은 244곳이다(치료비 지급건수 기준).

5년간 한 차례 발빠짐 사고가 발생한 총 211곳 중 간격이 10㎝ 이상인 곳은 153곳(72.5%)이었다. 특히 3~4차례 발빠짐 사고가 반복된 곳은 모두 간격이 10㎝ 이상이었다. 3호선 충무로역 상선 4-2(18㎝), 4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하선 10-2(16㎝), 7호선 도봉산역 하선 2-2(13㎝) 세 곳에서는 5년간 4차례 발빠짐 사고가 반복됐다. 1호선 서울역 상선 5-4(21㎝), 2호선 시청역 하선 10-2(19㎝), 2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하선 2-3(11㎝), 2호선 신촌역 외선 7-2(11.5㎝), 4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하선 7-2(18㎝) 다섯 곳에서는 3차례 사고가 있었다.

이들 역 모두 2004년 이전 준공돼 10㎝ 룰이 적용되지 않는다. 2005년 이후 지어진 역 28곳에서는 발빠짐 사고가 한 건도 없었다. 28개 역 중 간격이 10㎝ 이상인 곳에서 발생하는 사고는 공사 책임이지만, 151개 역 3607곳 승강장에서는 공사 책임이 아니었다. 2004년 시행령 개정 당시 붙인 부칙 한 문장이 17년째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안전발판이 4년째 감감무소식인 이유

※ 자세한 내용은 인터랙티브 <두 바퀴엔 절벽 같은 ‘28㎝’(https://news.khan.co.kr/kh_storytelling/2021/crevasse)>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자세한 내용은 인터랙티브 <두 바퀴엔 절벽 같은 ‘28㎝’(https://news.khan.co.kr/kh_storytelling/2021/crevasse)>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시, 2016년 자동안전발판 설치 약속했지만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실현된 곳은 없다

2016년 4월 서울시는 2019년까지 발빠짐 사고 위험이 높은 서울 지하철 46개 역에 자동안전발판 1311개를 설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이 중 설치된 것은 0건이다. 서울시의 계획은 감사원 감사에서 제동이 걸렸다. 감사원은 공사가 자체 개발한 자동안전발판의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고 봤다. 공사가 개별 발판의 안전은 인증을 받았지만, 전체 제어 시스템의 안전 인증을 받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공사는 ‘성능을 입증해 한국철도표준규격(KRS)을 획득하는 조건’으로 사업을 발주했다. ‘기계는 우리가 인증을 받았으니, 제어회로는 당신들이 만들어 인증을 받으라’는 조건으로 업체에 인증 책임을 떠넘긴 것이다. 해당 업체가 만든 제품은 2017년 1월 5호선 김포공항역에서 열차와 충돌했고, 같은 해 10월 업체는 기술력 부족 등을 이유로 사업을 포기했다.

이후 공사에서 자동안전발판 관련 논의는 사라졌다. ‘자동안전발판 재설치 방안을 강구 중(2017년 경영실적보고서)’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음(2018년 서울시 감사)’ ‘간격 10㎝ 이상인 곡선 승강장 자동안전발판 설치(2018년 철도 승강장 발빠짐 사고 저감대책)’ 등 숱한 계획을 내놨지만 실현된 것은 없었다. 지난해 7월 실시한 감사에서 서울시는 “감사일 현재까지 자동안전발판의 형식 결정을 위한 타지역 설치 사례 견학 5회, 자동안전발판 제작전문 업체 5곳 기술자문 외에 자동안전발판 설치를 위한 사업을 추진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이브]열차와 승강장 간격 ‘매우 위험’…보이나요, 누군가에겐 절망인 28㎝

자세한 내용은 인터랙티브 <두 바퀴엔 절벽 같은 ‘28cm’(https://news.khan.co.kr/kh_storytelling/2021/crevasse/)>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로가기: 두 바퀴엔 절벽 같은 ‘28cm’…열 곳 중 아홉곳에선 발이 빠져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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