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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대목에 코로나가 덮쳤다…적막감과 불안이 교차하는 서울 가락시장

유선희 기자
지난 16일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의 한 청과물 점포 앞에 ‘시설폐쇄’ 알림문이 붙어 있다. 점포 안에는 미처 꺼내지 못한 과일 박스가 그대로  쌓여 있다. /유선희 기자

지난 16일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의 한 청과물 점포 앞에 ‘시설폐쇄’ 알림문이 붙어 있다. 점포 안에는 미처 꺼내지 못한 과일 박스가 그대로 쌓여 있다. /유선희 기자

“추석 대목을 앞두고 이게 무슨 일인지…. 지금 정신적 스트레스가 말도 못해요. 코로나19에 확진되면 문을 닫아야 하는데, 그동안 거래하던 손님들과 관계가 끊어질까봐 그 걱정이 제일 크죠. 경매에 참여하려고 매일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있어요.”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 16일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에서 만난 손안순씨(65)가 이렇게 말했다. 33년 동안 가락시장에서 시금치, 고사리 등을 판매해왔다는 손씨는 “연일 확진자가 나오니까 괴롭고, 매일매일 검사를 받는 것도 힘들다”며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계속 번지니 어쩌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가락시장에서는 지난 1일 시장 종사자 1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된 이후 최근까지 200명 가까이 확진자가 발생했다. 감염이 대거 발생한 청과물 시장 내 점포 총 119곳은 오는 22일까지 증상 유무에 관계없이 모두 잠정 폐쇄됐다. 그외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거나 의심되는 점포 10여곳도 추가로 문을 닫았다.

기자가 방문한 청과물 점포 일대에는 출입통제선이 설치돼 있었고 ‘시설폐쇄’ 알림문도 붙어 있었다. 출입통제선 뒤로 미처 꺼내지 못한 과일 박스들이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평소 추석 대목 같았으면 한창 분주히 움직이고 있을 상인들이 빠져나간 난 뒤 불 꺼진 시장에는 적막감이 맴돌았다. 시장에 설치돼 있는 스피커를 통해서는 ‘방역수칙을 잘 준수해달라’, ‘마스크를 잘 써달라’는 안내방송이 계속 흘러나왔다.

지난 16일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에서 청과물 점포를 운영하는 상인 박모씨가 마스크 2장을 겹쳐 쓴 채 일하고 있다. /유선희 기자

지난 16일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에서 청과물 점포를 운영하는 상인 박모씨가 마스크 2장을 겹쳐 쓴 채 일하고 있다. /유선희 기자

폐쇄를 면한 청과물 점포를 운영하고 있는 60대 박모씨는 마스크 두개를 겹쳐 쓰고 일하고 있었다. 박씨는 코로나19 백신을 두 차례 맞은 접종 완료자다. 그는 “2차까지 백신을 맞았는데도 불안해서 마스크를 두 겹으로 쓰고 있다”며 “그래도 정신력으로 버텨보자 하는 생각으로, 매일 아침 마음을 다잡고 출근하고 있다”고 했다. 농수산물 이송 일을 하는 이들의 얼굴은 페이스쉴드(얼굴보호 투명 가리개)를 착용하고 있느라 땀으로 범벅돼 있었다.

가락시장 상인들은 공통적으로 “코로나19에 확진되면 치료를 받고 완치가 될까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문을 닫는 동안 거래하던 단골손님들이 빠져나가게 되는 걸 가장 걱정하고 있다”고 했다. 육체적 건강 문제보다 생계 걱정이 우선인 것이다. 50대 상인 이모씨는 “요즘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술에 의존해 지내고 있다”며 “최근 자영업자들의 자살 소식을 접하면서 정말 남의 일 같지 않고, 소상공인들은 점점 더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정부에 바라는 점이 뭐냐고 묻자 이씨는 “없다. 그냥 도망가고 싶다”고 했다.

당초 19일부터 20일까지로 예정돼 있던 가락시장의 추석 휴업일은 이틀 가량 앞당겨지고 더 길어졌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잇따른 감염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내놓은 조치다. 채소부류는 휴업일 시작을 이틀 앞당겨 17일 저녁 경매 이후부터, 과일부류와 수산부류 선어·패류는 18일 아침 경매 이후로 휴업에 들어간다. 휴업종료일(경매시작일)은 기존과 동일하게 채소부류 오는 23일 저녁 경매부터, 과일부류 24일 새벽 경매부터, 선어·패류 23일 저녁 경매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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