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들은 왜 출근길 지하철을 멈춰세웠나

박채영 기자

전장연, 5호선 곳곳 이동권 보장 촉구 시위

저상버스 드물고, 엘리베이터 없는 역 여전

“우리도 버스와 지하철 안전하게 타고 싶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20일 오전 서울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열차에 탑승해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피케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20일 오전 서울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열차에 탑승해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피케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아침 이룸장애인자립생활센터 문애린씨(42)는 휠체어를 타고 서울 지하철 5호선 승강장에서 동료들과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벌였다. 문씨가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 참여한 것은 20년째다. 2001년 경기도 시흥 오이도역에서 휠체어리프트를 타고 계단을 내려가던 장애인이 추락해 사망한 일이 계기가 됐다.

그러나 노원구에서 영등포구로 가는 문씨의 출근길은 여전히 2시간이 걸린다. 비장애인이라면 1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휠체어가 탈 수 있는 저상버스는 드물다. 한 번 놓치면 20~30분은 기다려야 한다. 지하철은 노후한 엘리베이터가 고장나거나 몇 개 없는 엘리베이터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을 때가 많다. 문씨는 “다행히 집과 직장 근처의 지하철역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지만 외부활동을 하다가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하철역에 가게되면 낭패”라고 말했다. 2020년 기준 전국의 저상버스 보급률은 27.8% 수준이다. 올해 12월 기준 서울시 지하철역 278곳 중 22곳에 엘리베이터가 없다.

문씨를 비롯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들은 이날 오전 7시10분부터 광화문역 등 서울 지하철 5호선 역 곳곳에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집이 있는 공덕역까지 이동하며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개정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전장연 회원들이 승강장에서 지하철에 탑승했다 내리는 방식으로 시위를 벌이자 경찰은 지하철 출입구를 막아섰다. 시위로 오전 9시 기준 방화행 열차는 1시간가량, 마천하남 방면 열차는 30분가량 연착됐다. 왕십리역에서는 스크린도어가 파손되기도 했다.

전장연은 오전 10시부터 홍 부총리의 집 앞에서 집회를 이어갔다. 이들은 기재부에 “국회에서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이 통과될 수 있도록 협력하고 내년 예산안에 반영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 20년간 바라 온 법안들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과 국토교통부의 협력뿐 아니라 예산 편성의 권한을 쥔 기획재정부가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장연이 기재부에 예산 반영을 촉구한 법안은 오는 22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교통법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될 법안들이다.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한 ‘버스 대폐차시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 법안은 시내버스를 새로 도입할 때 저상버스로 도입하는 것을 의무화하도록 한다. 2006년 만들어진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에는 버스 대폐차시 저상버스 도입이 권고 사항으로만 되어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다.

전장연은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발의한 법안의 통과도 요구한다. 법안은 이동지원센터의 설치를 의무화하고 특별교통수단 운영비를 국비로 보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는 장애인 콜택시 등 특별교통수단을 매입하는 데 필요한 비용만 중앙정부가 지원하고, 운영 비용은 지방자치단체가 충당한다. 재정 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는 지방비 부족을 이유로 특별교통수단 이용 시간을 제한한다.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 협의회장은 “교통약자법 편의 증진법이 통과되고 15년이 지나고도 장애인들은 저상버스가 없어서 버스를 탈 수 없고 지하철에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리프트를 타야 한다”며 “누군가는 우리가 시위하는 것을 보고 ‘동정하고 싶어도 동정할 수 없게 한다’고 말하더라. 하지만 우리는 동정받으려고 나온 것이 아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비장애인과 똑같이 버스와 지하철도 안전하게 타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20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있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집 앞에서 ‘기획재정부 장애인 이동권 보장 반대 규탄 결의대회’를 갖고 있다. 이석우 기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20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있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집 앞에서 ‘기획재정부 장애인 이동권 보장 반대 규탄 결의대회’를 갖고 있다. 이석우 기자

장애인들은 왜 출근길 지하철을 멈춰세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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