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유서 뜯긴 자국 같다”던 군 조사관, 핵심 증거물 유실 의혹

이홍근·민서영 기자

지난 5월11일 성추행 사건으로 사망한 A하사의 아파트에서 발견된 노트 일부분. 사건 당일 노트에는 부채꼴 모양으로 찢긴 쪽 뿐 아니라, 이와 별개로 한 쪽 전체가 뜯겨나가 스프링에 남아 있던 종잇조각도 발견됐다. 스프링에 붙어 있는 종잇조각에 대해 조사관은 유가족에게 “유서가 뜯겨나간 자국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성추행 가해자의 수사기록에는 조사관이 언급한 종잇조각과 관련된 내용은 누락돼 있다.

지난 5월11일 성추행 사건으로 사망한 A하사의 아파트에서 발견된 노트 일부분. 사건 당일 노트에는 부채꼴 모양으로 찢긴 쪽 뿐 아니라, 이와 별개로 한 쪽 전체가 뜯겨나가 스프링에 남아 있던 종잇조각도 발견됐다. 스프링에 붙어 있는 종잇조각에 대해 조사관은 유가족에게 “유서가 뜯겨나간 자국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성추행 가해자의 수사기록에는 조사관이 언급한 종잇조각과 관련된 내용은 누락돼 있다.


군 경찰이 강제추행을 당한 뒤 사망한 공군 제8전투비행단 A하사 사건을 수사하며 유서로 추정되는 핵심 증거물을 유실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성추행 가해자가 A하사의 아파트 방범창을 뜯고 들어가 숨진 A하사를 발견했는데도 가해자의 신체·차량을 수색하지 않은 데 이어 증거물 관리까지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20일 경향신문이 강제추행·주거침입 등의 혐의로 재판 중인 이모 준위의 수사기록 3600여쪽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이 준위가 A하사의 아파트에 들어가 숨진 A하사를 발견한 지난 5월11일 거기에는 노트 한 권이 있었다. 공군본부 소속 조사관 B준위와 제8전투비행단 소속 조사관 C준위는 사건 당일 해당 노트의 스프링에서 종이 한 쪽이 뜯겨나간 뒤 남은 것 같은 조각을 발견했다.

B준위는 종잇조각을 유가족에게 보여주며 “유서가 뜯겨나간 자국 같다. A하사의 주머니에 뜯긴 유서가 있을 것 같으니 찾아보자”고 말했다. 그러나 A하사의 주머니에서 유서가 나오지 않았고 추가 감식을 위해 노트를 가져간 B준위는 나중에 해당 노트를 C준위에게 인계했다. 그런데 5월20일 무렵 유가족이 C준위로부터 돌려받은 노트에는 ‘유서의 흔적’이라고 했던 종잇조각이 없었다.

A하사의 아버지는 “현장에서 수사관이 직접 언급한 증거라서 뇌리에 깊게 남아 있었는데 돌려받았을 때는 사라진 상태였다”면서 “핵심 증거가 수사 과정에서 사라졌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B준위는 6월14일 유가족과의 통화에서 ‘노트에 조각이 붙어있는 걸 보고 저희 애 주머니에서 유서가 나올 거라는 이야기를 하셨잖아요’라는 질문에 “맞습니다”라고 답변했다.

유가족은 가해자인 이 준위가 유서를 가져간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이 준위는 6월4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진행된 거짓말탐지기 조사에서 ‘현장에서 노트북이나 유서 등 기록물을 챙겨 나온 일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변했지만 거짓이라는 판정이 나오기도 했다.

유가족이 유서의 행방을 의심하는 건 군 경찰의 초동수사에 그만큼 헛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A하사는 3월과 4월 두 차례 이 준위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한 뒤 5월11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가해자는 사건 당일 방범창을 뜯고 들어간 뒤 집안에 있는 A4용지 등을 만졌다. 이처럼 용의자가 현장을 훼손했음에도 군 경찰은 가해자의 신체·차량을 수색하지 않았다. A하사는 사망 이틀 전 가해자 차량에 탑승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블랙박스 영상도 삭제됐다. 유가족은 “초동 수사를 엉망으로 한 수사관들에 대해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B준위와 C준위는 이날 공군 공보실을 통해 “해당 증거물은 정상적으로 유가족에게 전달됐고 ‘이상 없이 수령했다’는 내용이 담긴 수령증에 유가족이 서명했다”면서 “이후에 증거물이 유실되었다는 주장을 전해 듣게 됐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유가족은 “종잇조각이 유실됐을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해 현장에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펼쳐보지 못했다”면서 “집에 돌아가 확인해보니 종잇조각이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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