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닮은 꼴”···인천공항공사, 을왕산 ‘아이퍼스 힐’ 개발 반대

박준철 기자
절토돼 방치된 인천 중구 을왕산 전경.|인천국제공항공사 제공

절토돼 방치된 인천 중구 을왕산 전경.|인천국제공항공사 제공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인천시 산하 경제자유구역청이 인천공항 인근 을왕산에 글로벌 복합영상산업단지 조성을 추진하는 ‘아이퍼스 힐(IFUS HILL)’ 사업에 대해 막대한 개발 이익이 민간업체에 돌아가는 사업구조 방식을 공공주도로 바꿔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인천공항공사는 또 개발 사업의 대주주가 레미콘업체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사업 추진보다는 을왕산에 매장된 골재채취에 따른 이익만 챙길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아이퍼스 힐 개발사업을 공공이 아닌 민간이 개발하는 사업구조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정리했으며 이를 13일까지 인천경제청에 공문으로 보낼 예정“이라고 11일 밝혔다. 인천공항공사는 다만 인천경제청이 추진 중인 경제자유구역 재지정에는 반대하지 않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앞서 인천경제청은 지난 4일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을왕산 개발에 반대하자 ‘인천경제청과 민간사업자인 SG산업개발, 인천국제공항공사 등 3자 협의체를 구성해 협의하자’는 공문을 보낸 바 있다.

■‘민간사업에 과도한 특혜’ 사업구조 반대

아이퍼스 힐은 을왕산 80만7733㎡(24만평)에 다목적 스튜디오와 미디어·컨벤션 센터, 패밀리·비즈니스 호텔 등 숙박·상업시설 등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인천경제청이 3.1%, SG산업개발이 96.7%의 지분을 갖고 있다. 전체 개발사업은 SG산업개발이 주도하게 된다.

인천공항공사는 전체 개발 면적 중 86%인 69만4632㎡을 소유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항공기의 안전 운항을 위해 2000년에 345억원을 보상해 주고 을왕산의 상당수 토지를 매입, 51.7m까지 절토했다. 인천공항공사는 당시 근린공원을 복구하는 조건으로 절토 허가를 받았다. 이후 인천경제청은 2014 아시안게임 당시 왕산마리나 요트경기장 조성을 위해 토석이 필요하다며 근린공원 복구의무를 승계하기로 약속하고 추가로 9m를 절토했다. 인천경제청은 그러나 공원 조성보다는 아이퍼스 힐 개발사업에 나서고 있다.

을왕산은 2003년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됐었다. 인천경제청이 이 곳에 복합문화공간인 ‘을왕산 park 52 개발’ 등을 추진했으나 무산되는 등 사업 전망이 불투명해지자 2018년 경제자유구역에서 해제됐다.

을왕산을 둘러싼 토지소유권 소송도 있었다. 인천공항공사 등의 을왕산 절토사업이 완료되자 땅을 팔았던 토지 소유주들은 “을왕산을 강제로 빼앗겼다”며 환매 소송을 제기했다. 인천공항공사는 1·2심에서 패소했다. 그러나 대법원에서는 승소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항공기의 안전을 위해 사후 관리까지 해야 한다”고 명시돼 항공기 안전을 위해 고도 제한을 관리·감독해야 할 의무가 인천국제공항공사에 있다고 설명했다.

절토된 오성산(앞) 뒤로 허리가 잘려나간 을왕산이 보인다.|인천국제공항공사 제공

절토된 오성산(앞) 뒤로 허리가 잘려나간 을왕산이 보인다.|인천국제공항공사 제공

인천경제청은 인천공항공사가 공문을 보내면 검토한 뒤 조만간 산업통상자원부에 을왕산 등 사업부지 일대를 경제자유구역으로 재지정 신청한다는 방침이다.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되면 토지 소유주가 반대해도 감정가나 조성원가로 토지를 강제수용할 수 있게 된다.

인천공항공사는 경제자유구역 지정 신청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지만 개발에 따른 이익이 막대하게 발생할 경우 논란에 휩싸이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관계자는 “임야인 을왕산을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해 개발하면 막대한 개발이익이 생길텐데, 이를 공공이 아닌 민간이 가져가는 것은 안된다”고 밝혔다. 인천공항 땅을 강제로 빼앗아 특정기업에 특혜를 주려는 ‘대장동’과 닮은꼴이라는 것이다.

인천공항공사는 민간사업자가 개발이익을 대부분 가져가면 토지주로서 개발이익을 확보 못해 향후 ‘배임’의 소지도 있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천공항공사는 또 “민간사업자는 개발보다는 을왕산에 매장된 엄청난 양의 골재에 관심이 더 높은 것 같다”며 의심의 눈초리다.

인천공항공사는 인천경제청이 제안한 3자 공동 개발 방식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국가 공기업이 민간이 주도하는 개발사업에 토지나 자금을 출자해 참여하려면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 등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승인도 어렵다는 입장이다. 특히 이를 관리·감독해야 할 주체가 개발사업에 참여했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아이퍼스 힐’ 개발사업 자체에 대한 의구심도 갖고 있다.

을왕산은 당초 높이가 119m였지만, 지금은 42m이다. 을왕산에는 아직도 골재량이 엄청나다. 골재업체 관계자들은 을왕산의 골재는 약 2000만㎥에 6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개발을 위해 10m만 절토해도 1000억원 이상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레미콘업체가 대주주인 SG산업개발이 자칫 사업 추진 보다는 골재 채취에 전력할 경우 사업 신뢰성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인천경제청 이달 중 경제자유구역 재지정 신청

인천공항공사가 을왕산의 공공개발을 요구함에 따라, 인천경제청이 경제자유구역으로 재지정 해 SG산업개발에게 개발사업권을 주려는 아이퍼스 힐 사업도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인천경제청이 을왕산 소유주인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승인도 받지 않고, 산업통상자원부에 경제자유구역 재지정을 신청할 경우, 인천공항공사는 소송까지 검토하고 있어 소송전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아이퍼스 힐 개발사업이 무산되면 인천경제청은 바로 옆 오성산을 인천국제공항공사가 260억원을 들여 공원으로 복원하는 것처럼, 인천경제청도 을왕산을 공원으로 복원해야 한다.

인천경제청 관계자는 “인천국제공항공사와 인천경제청이 을왕산을 경제자유구역으로 재지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합의가 됐고, 인천국제공항공사의 개발사업 참여를 논의하기 위해 최근 공문을 보낸 것”이라며 “인천국제공항공사가 회신하면, 이를 토대로 이달 중 산업부에 재지정 신청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SG산업개발은 2018년 공모를 통해 선정됐기 때문에 사업시행자를 바꾸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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