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 이민자 정착·공존 돕는 캐나다…한국이 닮을 점 많네

성우제

성우제의 ‘경계인’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사는 토론토 북쪽 영&핀치 사거리. 코리안타운은 도심에도 있지만 지금은 노스욕이라 불리는 이 지역이 한인타운으로 더 활성화되어 있다. 한국 음식을 맛보려고 한국 식당과 식품점들이 몰려 있는 이곳을 찾는 외국인들도 많다. 토론토에는 ‘그릭타운’ ‘리틀이탈리아’처럼 각각의 민족들이 중심이 되어 자기 문화를 뽐내는 지역들도 꽤 여럿이다.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사는 토론토 북쪽 영&핀치 사거리. 코리안타운은 도심에도 있지만 지금은 노스욕이라 불리는 이 지역이 한인타운으로 더 활성화되어 있다. 한국 음식을 맛보려고 한국 식당과 식품점들이 몰려 있는 이곳을 찾는 외국인들도 많다. 토론토에는 ‘그릭타운’ ‘리틀이탈리아’처럼 각각의 민족들이 중심이 되어 자기 문화를 뽐내는 지역들도 꽤 여럿이다.

얼마전 백신 접종을 거부한 노바크 조코비치의 호주오픈 출전이 무산되었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호주답구나.’

호주오픈 4연패와 10회 우승을 노리는 남자 테니스 세계 랭킹 1위가 참가하지 못한다면 대회가 입게 될 손실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한번 추방되고 나면 3년 동안 입국이 금지된다고 하니 어떤 무리수를 동원해서라도 조코비치 입국을 관철시켰을 법도 한데, 호주는 역시 단호했다. 코로나19 백신 미접종자는 누가 되었든 입국할 수 없다는 호주 연방법원의 최종 판결은 ‘원칙 적용에 어떤 예외도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해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역시 호주답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런 면으로 보자면 캐나다는 호주와 쌍생아처럼 닮은 나라이다. 눈앞의 큰 손실을 감수하고라도 한번 세운 원칙을 ‘칼같이’ 지키려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두 나라 모두 ‘이민자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안 되는 것은 절대 안 된다’는 원칙에 작은 균열이라도 생긴다면 이민자의 나라에서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캐나다는 올림픽 참가국만큼이나 많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다. 출신 배경과 언어, 피부색과 문화가 다른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도록 하려면,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는 원칙 적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스포츠 이벤트의 성패 같은 특별한 이유를 들어 이번만은 허용하자는 식의 예외를 두기 시작한다면 혼란이 어떤 식으로 번져갈는지 모른다. ‘예외 없는 원칙은 없다’는 말은 이민자의 나라에는 없다.

출신 배경·언어·문화 ‘각양각색’
예외 두면 혼란에 사회 균열 유발
이들의 ‘원칙 중시 문화’는 당연

한편에선 이민 정착 지원제 가동
취학·병원·법원서 무료 통역 제공
이민자들도 깜짝 놀랄만큼 정교

‘주류’ 강요 않고 고유 문화 존중
소수민족 배려에 인구 증가 필연
한국도 낮은 출생률에 인구절벽
‘문호 개방’ 프로그램 좋은 본보기

내가 보기에, 원칙을 중요시하는 문화는 이민자의 나라를 떠받치는 기둥 가운데 하나이다. 그 못지않게 중요한 기둥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초기 이민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땅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착지원 제도이다. 내 경우를 돌이켜보면, 이 프로그램은 캐나다에 살러들어온 이민자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정교하고 광범위하게 작동한다. 이민 문호를 열어 외국 사람들을 받아놓고 ‘말을 배우든, 직업을 구하든 당신들이 알아서 하라’며 방치한다면 그 또한 사회 혼란을 부추길 것이 틀림없다.

캐나다는 이민자를 받지 않으면 나라 자체가 소멸할 수도 있다. 나라 면적은 한국보다 100배가 큰 반면, 인구는 3700만명에 불과하다. ‘합계 출생률’은 1971년 이후 해마다 낮아져서 2020년에는 1.47명을 기록했다. 출생률이 한국보다는 높다고 하지만 나라의 크기에 비해 인구가 터무니없이 적다보니, 인구 감소에 위기감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할 사람이 부족한 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캐나다가 받아들이려고 하는 이민자 숫자는 1년에 25만명. 그러나 이 목표를 달성한 해는 그리 많지 않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사태로 절차가 지연되는 바람에 이민자 수가 급감하기도 했다.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부랴부랴 1년에 45만명을 받아들이겠다고 다시금 천명했다. 이민자가 적게 들어온다는 것은 낮은 출생률만큼이나 심각하고 다급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급하다고 해서 무작정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이민자를 선별한 다음, 그들이 입국을 하자마자 캐나다에 안착할 수 있도록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한다. 그런 서비스를 받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개인이 선택할 수 있으나, 그걸 알고도 받지 않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사례를 꼽아보면 이런 것들이다. 이민 비자를 가진 사람이 입국한 뒤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영주권자로서 캐나다 사회에 ‘등록’을 하는 것이다. 한국의 주민등록번호와 비슷한 사회보장번호(SIN)와 운전면허증, 의료카드 등의 신청서를 작성하고 제출할 때 나는 한국인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다. 그들은 모든 것을 꼼꼼하게 점검해주었다. 그 덕분에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들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런 도움을 받지 못했더라면 낯선 땅에 와서 여러모로 피곤하고 괴로웠을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은 캐나다 정부를 대신해 일을 하는 한인YMCA와 한인여성회 등에 소속된 전문가들이었다. 물론 이 단체들은 캐나다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는다.

아이들을 학교에 등록하는 것도 이민 초기에 해야 하는 큰일 가운데 하나이다. 내 경우, 큰아이가 청각장애가 있어서 특별한 서비스를 받았다. 아이를 집 근처 공립 초등학교에 데리고 가서 한국인 이민자라고 했더니 한국인 ‘소셜워커’를 바로 불러주었다. 며칠 후 교장은 담임교사, 교육청 관계자, 한국인 소셜워커가 참석하는 회의를 소집했다. 그들은 아이의 장애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청각장애 특수교육 프로그램이 있는 다른 학교로 아이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집에서 자동차로 40분 넘게 걸리는 먼 곳이었다. 학기 중이라 스쿨버스 배정이 어려워지자 교육청에서 비용을 대고 택시로 등하교를 시켜주었다. 우리를 도와주는 모든 사람들은 초기 이민자가 캐나다 영주권자로서 받을 수 있는 지원을 빠짐없이 받게 해주려고 애를 쓴다는 느낌을 주었다.

어른들은 무료로 영어를 배울 수 있는 학교도 소개받았다. 수업시간에 두 살배기 둘째아이를 옆방에 맡기고 영어를 배울 수 있는 ‘링크’ 프로그램도 찾아서 공부할 수 있었다. 초·중·고교에는 초기 이민자 자녀들을 위한 영어반(ESL)이 따로 설치되어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큰아이 담임교사 두 분과 면담하려고 한 학기에 두 번은 학교에 간 것 같다. 학교에서는 한국인 통역사를 불러주었다. 그 비용은 물론 학교가 부담했다. 아이가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언어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도 한국인 통역사를 불렀다. 나중에는 우리가 통역사를 부르지 말아달라고 학교와 병원 측에 요청했다. 통역사가 있으면 오히려 비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학교와 병원뿐만 아니라 공적인 업무를 볼 때는 거의 모든 곳에 한국인이나 한국인 통역사가 있었다. 통역은 내가 공적으로 누릴 수 있는 권리이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법정이다. 교통위반 티켓을 받으면 재판을 신청해 이의제기를 하는 사례가 많다. 그렇게 해야 벌점과 벌금을 깎을 수 있다. 사람들은 재판정에 가면 한국어 통역을 반드시 요청하라고 했다. 물론 통역 비용은 법원이 지불한다.

나는 이런 서비스를 악용하는 사례도 직접 보았다. 재판이 열리기 전, 나하고 영어로 멀쩡하게 대화하던 어떤 외국인 이민자는 막상 재판이 시작되자 무슨 소리를 들어도 “아이 엠 노 잉글리시”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는 영어를 못 알아듣는 척하기로 작정하고 통역을 일부러 요청하지 않은 듯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재판은 진행되지 않았다. 검사는 그에게 “네 티켓은 취소되었다. 집에 가라”고 했다. 그것마저 못 알아듣는 척하던 그는, 손짓으로 나가라고 하니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나라에서는 영어 못하는 것이 벼슬일 수도 있구나.’

개개인에 대한 다양한 정착 지원과 배려가 주로 이민 초기에 이루어진다면, 각 소수민족 사회에 대한 지원은 일상적으로 진행된다. 캐나다라는 나라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규정하자면 ‘따로 또 같이’ 문화에 기반한 다양한 사람들의 공존이다. 캐나다에 살러 왔으면 캐나다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 나라 사람이 되게 하는 방식이 재미있다. 캐나다 사회를 관통하는 주류문화를 수용하는 동시에,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내 경우 대한민국)의 문화 또한 지켜나가라는 것이다. ‘코리안 캐나디안’인 내 입장에서 보자면, 주류문화는 캐나다와 한국 문화 두 가지인 셈이다. 공용어로는 영어를 쓰지만 일상생활에서는 한국어를 주로 사용하는 만큼 나에게는 두 언어 모두 주류 언어인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나아가 캐나다 정부는 여러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이 자기 고유의 문화를 지키고 지속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외국에서 들어온 ‘새로운 캐나다 시민들’의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캐나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한글학교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한인회며 한인여성회, 한인노인회 같은 단체들도 지원 대상이다. 캐나다에 있는 모든 소수민족 커뮤니티가 이런 식으로 지원을 받는다고 보면 된다.

한국도 출생률이 급격하게 낮아지는 바람에 급기야 인구절벽에 맞닥뜨렸다는 뉴스를 자주 접한다. 출생률이 높아지지 않는 이상, 인구 문제 해결책은 이민문호를 개방하는 방법밖에 없다. 이민자 정책에 관한 한 가장 앞서가는 나라로 꼽히는 캐나다에 살면서 보니, 정식으로 이민자를 받아들이려면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정도는 단단하게 준비해야 할 것 같다. 원칙을 지키는 문화, 외국인 이민자들을 선별해 받아들이되 그들이 빨리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 가장 기본적인 이 두 가지를 준비하지 않은 채 이민자를 받아들인다면 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하려다 사회적 혼란만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관련 전문가들에 따르면, 캐나다 시민들은 이민자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제적·문화적 이득을 잘 이해하는 편이다. 인도적 차원에서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이해도도 높다. 대규모로 난민을 받아들여도 반대 여론 같은 것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같은 시민의식은 오랜 세월에 걸친 (학교)교육과 홍보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단일민족으로 살아온 한국사람들이 가장 넘기 어려운 벽은 바로 이것일는지도 모른다.

이민자들이 들어와 취직을 하거나 사업을 해서 고소득자가 되어도 그것을 백안시하지 않고 존중하는 문화, 이민자들이 자기 고유의 문화를 지켜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문화, 이런 문화들이 뿌리를 내린 곳이 이민자의 나라인 캐나다이다. 한국 같은 ‘후발주자’들에 좋은 본보기가 있는 것이다.



[다른 삶]‘따로 또 같이’ 이민자 정착·공존 돕는 캐나다…한국이 닮을 점 많네

▶성우제

캐나다사회문화연구소 소장. ‘원(原)시사저널’ 문화부 기자로 일하다 2002년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했다. 16년째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한국의 여러 매체에 기고해왔다. 재외동포문학상을 두 차례(소설 및 산문 부문) 수상했고 <느리게 가는 버스> <딸깍 열어주다> 등 단행본 5권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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