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자, 광월, 계화씨···산·들·바다에서 일하고 울고 위로받았다

이하늬·심윤지 기자
김춘자씨가 2021년 12월 21일 전남 진도군 수역리 자신의 대파밭에서 호미로 일을 하고 있다. 춘자씨는 남편과 함께 3300㎡(1000평) 밭을 건사한다. 이준헌 기자 heon@kyunghyang.com

김춘자씨가 2021년 12월 21일 전남 진도군 수역리 자신의 대파밭에서 호미로 일을 하고 있다. 춘자씨는 남편과 함께 3300㎡(1000평) 밭을 건사한다. 이준헌 기자 heon@kyunghyang.com

전라남도 진도군 수역리의 주종목은 대파와 배추다. 두 달 전 심은 대파가 김춘자씨(73)의 허리 높이까지 자랐다. 바람이 불 때마다 초록색 대파밭이 너울거렸다. 춘자씨의 대파밭은 1000평 남짓이다. 동네에서는 소농으로 꼽힌다. 대농으로 분류되는 이들은 만평 이상의 밭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 12월20일 진도에서 만난 춘자씨가 고랑에 난 잡초를 뽑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대파에 가려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농촌에서 여성의 일은 이런 식이다.

여성 농민의 삶을 그린 소설집 <호미>의 정성숙 작가는 이를 밭고랑에서 ‘기어다닌다’고 표현했다. 쭈구려 앉아 일하는 탓에 마을에는 허리와 무릎이 성한 여성이 드물다. 농촌진흥청이 발표한 ‘2020년 농업인 업무상 질병 조사 결과’에 따르면 농민은 장시간 근무, 반복 동작, 불편한 자세, 과도한 힘 또는 중량물 취급으로 인해 근골격계 질환을 많이 앓는다. 농기계 사고 치사율은 교통사고보다 9.1배 높다. 농기계는 육중하고 농민 대부분이 고령인 탓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광업, 건설업과 함께 농림어업을 3대 위험사업으로 분류한다.

춘자씨는 오전 4시에 일어나 남편과 자신의 밥을 챙기고 5시에 들로 나간다. 종일 쉬지 않고 일해야 1000평 밭을 건사할 수 있다. “밭매고 농약치고 풀 베고… 나가면 일이 천지제. 깔렸제.” 운전과 근력이 필요한 일은 남편, 나머지는 춘자씨 몫이다. 나머지 일은 춘자씨 말대로 ‘천지’지만 그 일들이 제대로 대우받은 적은 별로 없다.

춘자씨가 허리를 숙여 밭고랑을 정리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heon@kyunghyang.com

춘자씨가 허리를 숙여 밭고랑을 정리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heon@kyunghyang.com

여성을 이야기할 때 흔히 떠올리는 건 도시 여성이고 농촌을 이야기 할 때 주로 등장하는 건 남성 농민이다. 농촌에서 살아왔고 살아가는 여성들에 대해서는 좀처럼 다뤄지지 않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농가 인구의 51%(2019년 기준)가 여성이다. 경향신문 젠더기획팀은 4번째 이야기로 농촌 지역에 살고있는 여성들을 만났다.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강원도 태백시, 전남 진도군을 찾았다.

■국민학교 졸업도 전에 들로 산으로

“정확히는 몰라. 아홉 살 때 부텅가.” 언제부터 농사일을 했냐는 질문에 춘자씨가 답했다. 아홉 살 춘자씨는 온갖 작물을 구하기 위해 들로 산으로 다녔다. 동생들에게 먹일 밥을 지어야 했다. 그는 9남매 중에 맏이로 태어났다. 막내 동생과는 스무 살 차이다. 쑥밥, 톳밥, 무밥, 두릅밥, 꿩밥(전라도에서 춘란을 일컫는 말)밥.... “가난해서 안 먹어본 게 없어. 다 먹어봤어. 먹을 것이 없응께 산에 올라가 이런 걸 캐와서 절구통에 빻아서 죽을 끓여서 동상들 먹이고 설거지 하고. 식구가 겁나게 많응께 식구 챙기는 게 일이제. 그때는 곡식을 사서 먹을 수도 없었어. 곡식이 없었응께.”

1950~1960년대, 아이는 곧 투입되어야 하는 노동력이었다. 특히 많은 여성들이 국민학교(현 초등학교)를 다닐 나이부터 농사일과 함께 가사를 시작했다. 비도시권으로 갈수록 더 그랬다. 2020년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읍·면에 거주하는 1950년생 여성의 46.1%, 54.0%가 초졸인 반면 동에 거주하는 여성은 34.9%만 초졸이다. 같은 해에 태어났다해도 사는 곳에 따라 20%포인트나 차이가 난다.

강원도 횡성에서 태어난 이광월씨(66)의 어린시절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남동생은 대학까지 졸업했지만 광월씨는 국민학교만 졸업했다. 광월씨는 공부를 잘했다. 제일 좋아한 과목은 수학이다. 답이 딱딱 나오는 게 좋았다. 졸업하기 전엔 반에서 3등을 차지했지만 부모님은 중학교 입학금을 주지 않았다. 광월씨는 일을 손에서 놔버렸다. 그게 최대치의 반항이었다.

파업은 며칠 가지 못했다. “빨리 일터를 나가야 하니까 가마(머리) 빗고 그럴 시간이 없어서”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머리를 짧게 깎은 광월씨는 부모님을 도와 담배농사 일을 시작했다. 부모님이 담뱃잎을 따서 고랑에 놓아두면 열네살 광월씨가 달려가 안고 나와 새끼줄에 엮었다. 담뱃잎은 커다란 쌈 채소 같이 생겼지만 촉감이 달랐다. 잎은 찐득거렸고 입으로 가져가면 쓴 맛이 났다. 니코틴 진액 때문이다. “한번 담배밭에 나갔다오면 옷도 찐드윽찐드윽 손도 찐드윽찐드윽. 그때는 장갑도 없어서 (만지면) 손바닥이 노래지면서 찐득거려요. 밖에 나가질 않았어. 학교다니는 또래 애들을 보면 그런 내 모습이 수치스럽다고 할까. 굴욕감이라고 할까. 교복입고 가방들고 가는 게 정말 부러웠거든.”

그래도 광월씨와 춘자씨는 유년기를 ‘좋은 시절’로 기억한다. 결혼 후 여성들은 보다 본격적인 노동의 세계로 진입했다. ‘대가족 시집살이’라는 세계 안에서 여성들의 노동은 취침시간을 제외하곤 멈추지 않았지만, 이들이 낼 수 있는 목소리는 누구보다 작았다. “유교적 전통 사회에서 결혼을 통해 남편의 가정에 편입된 젊은 여성은 가계에서 가장 낮은 지위에 놓(농촌여성노인의 생애과정에 나타난 교차적 억압과 노년기 자아의 긴장‘, 정숙정, 2018, 한국사회학회)”이기 때문이다.

이광월씨(66)가 자신의 과수원에서 폐플라스틱으로 만든 바구니를 안고 있다. 광월씨는 밭농사부터 과수원까지 다양하게 수확시기를 조율해 1년 내내 수입이 발생하도록 만들었다. 이준헌 기자 heon@kyunghyang.com

이광월씨(66)가 자신의 과수원에서 폐플라스틱으로 만든 바구니를 안고 있다. 광월씨는 밭농사부터 과수원까지 다양하게 수확시기를 조율해 1년 내내 수입이 발생하도록 만들었다. 이준헌 기자 heon@kyunghyang.com

■결혼, 더 많이 일하고 더 낮은 지위

결혼은 주로 맞선을 통해 성사됐다. 도시에서는 연애결혼을 한다는 이야기도 들렸지만 농촌에서는 드문 일이었다. “연애하고 그러면 큰일 나. 누구 만나고 다니면 큰일 나.” 춘자씨가 손을 휘휘 내저으며 말했다. 광월씨는 남편의 첫 인상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쑥스러워서 멀리서만 보고 쳐다보지도 못했어. 바닷가에 과수원 하는 부잣집이라고 해서 (결혼했지).”

결혼식 후 강릉 주문진 시가에 도착한 광월씨는 깜짝 놀랐다. 과수원과 집이 있는 건 사실이었지만 시할아버지와 시부모, 시누이 셋, 남편까지 식구가 일곱 명이나 됐다. “내가 그걸 모르고 갔어요. 식구를 물어보는 건 생각도 못 했더래요.”

시가에서 가사노동은 모두 광월씨의 몫이었다. 시할아버지와 시부모 상을 매번 따로 차려야 했기에 시누이 셋 도시락까지 포함하면 하루에 10번 상을 차렸다. 아기를 낳고는 아기 기저귀도 빨고 소변을 잘 가누지 못하는 시할아버지의 속옷도 빨았다. 밭일, 농사일도 안 할 수 없어 “아기들을 나무 밑에 두고” 과수원 일을 했다. 외출이라고는 생각도 못 하고 살았다. “삼시 세끼 밥 차려줘야 하는데 어떻게 (밖에) 나간대요.” 스물넷에 결혼한 광월씨는 지금도 그 집터에서 43년째 시어머니, 남편과 함께 산다.

강원도 영월군에서 나고 자란 문계화씨(66)는 고모의 중매로 남편을 만났다. “인물좋고 체격좋고 광업소 다니고 이러니까 배경이 좋잖네.” 계화씨는 결혼 직후 남편이 아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안정적인 직장이라고 생각했던 광업소에는 휴직계를 낸 상태였다. 얼마 뒤 남편은 간경화 진단을 받았다. “아유 앞이 막막하더라니까네.” 계화씨가 스물세살 때 일이다.

결혼 후 계화씨는 사실상 가장이 됐다. 남편은 광업소에 출근하는 날이 몇 안 됐다. 당연히 월급도 적었다. “신랑이 아프니까 아무거나 잘 못 먹자네. 그래서 밥 좀 싸가지고 (광업소로) 오라고 해. 하루는 그날이 월급날이야. 내가 오늘 월급날 아니냐고 그러니까네 남편이 100원짜리 동전 하나를 주는거야. 그 이야기를 하니까 지금 왜 눈물이 나려고 하지…. 어떻게 한 달을 살아. 기가 막히지. 그 100원 짜리를 계산동 다리를 지나면서 물에다가 던져버렸자네.” 1980년 당시 광부의 평균 임금은 5만원 정도로 추정되지만 출근을 적게 한 데다 쌀과 연탄 값 등을 제하고 나니 남는 게 없었던 것이다. 1974년 채탄부 임금은 4만5000원, 1978년 선탄부 임금은 3만원이었다.

문계화씨(66)가 장성광업소가 보이는 태백시 철암역 플랫폼에서 작업복을 입고 활짝 웃고 있다. 37년차 현역 광부인 계화씨는 장성광업소 선탄부 최고참이다. 이준헌 기자 heon@kyunghyang.com

문계화씨(66)가 장성광업소가 보이는 태백시 철암역 플랫폼에서 작업복을 입고 활짝 웃고 있다. 37년차 현역 광부인 계화씨는 장성광업소 선탄부 최고참이다. 이준헌 기자 heon@kyunghyang.com

그때부터 계화씨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농사 품삯일은 물론이고 건설현장에서 모래를 지고 나르는 일 등을 하며 아픈 남편과 두 아들을 건사했다. 일용직 일자리도 자주 있는 게 아니었다. 몸고생, 마음 고생에 살이 쭉쭉 빠졌다. 나중에는 뼈가 앙상해 바닥에 누울 수 없을 지경이 됐다.

농촌지역에 사는 많은 60~70대 여성들은 2000년대까지도 우물물로 가사일을 한 경험을 갖고 있다. 도시와 농촌의 인프라 격차가 줄어든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가사노동 강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상수도의 경우 농촌 지역(면 단위) 보급률은 2000년에도 27.9%에 그쳤고, 2009년에야 50%를 넘겼다(환경부 상수도 통계).

인프라 공백은 여성들의 노동으로 채워졌다. “우물에서 물을 퍼다가 가마솥에 채워놔야 하루종일 물을 쓰거든. 그거 퍼다가 채워놓고 나무해서 불을 때고. 세탁기가 어딨대요. 집 앞에 도랑이 있는데 거기 물 나오는 곳을 파서 빨래했죠.”(이광월)

그러다보니 부부가 같이 농사 일을 해도 여성이 더 바빴다. 농촌 상황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농업농민정책연구소가 2020년 6~8월 여성농민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농사 일을 함께 마치고 집에 돌아와 가사노동은 누가 하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69.2%가 ‘본인만 한다’ 고 답했다. ‘남편이나 가족구성원들과 나누어한다’는 응답은 25.1%로 나타났다.

이를 도시와 비교해보자. 서울시 ‘2019 성인지 통계’를 보면 가사노동을 부인이 전적으로 책임진다는 응답은 25.7%로 나타났고 나누어한다는 응답은 총 71.1%(남편이 약간 돕는다 49.7%, 공평하게 분담한다 21.4%)로 나타났다. 농촌의 3배에 달하는 수치다. 그래서 농촌 여성들은 자녀, 특히 딸이 농사를 짓지 않길 바란다. 농업농민정책연구소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9.3%가 자녀가 농사짓지 않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딸이 농사짓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응답은 89.0% 였다. 자신이 겪어봐서 아는 것이다.

■논·밭·집 명의자는 남성

농촌 여성들은 N잡러에 퇴근 없이 일했지만 손에 쥐는 건 없었다. 개인이 임금을 받는 도시 노동과 달리 농촌은 가구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집과 논밭은 모두 남편이나 시부모 혹은 시가 친척의 재산이다. 이미 오랜 시간을 거쳐 만들어진 경제공동체에 여성 개인이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들어가는 구조다.

돈이 없으니 뭐 하나 마음 편하게 할 수 없었다. 언제나 ‘허락’을 받거나 ‘부탁’해야 (돈을) 쓸 수 있었다. 타지에 있는 친정에 가는 것도 눈치가 보였고 친구는 만날 생각조차 못 한 채 수십년을 보냈다. “외출하려면 다문 몇 푼이라도 있어야지. 차도 타야하고 파마도 해야 하고…. 돈을 달라면 안 주진 않는데 말 꺼내기가 힘들었어요.”(이광월) “장에 갈라 하면 남편이 2000원 주고, 5000원 주고…. 시누이들이 옷 사오면 입고 그랬지.”(김춘자)

광월씨가 지난 해 수확한 호박. 광월씨의 창고에는 광월씨가 시가로 들어오기 전부터 있었던 나무그릇부터 그 해에 수확한 작물들까지 보관돼있다. 이준헌 기자 heon@kyunghyang.com

광월씨가 지난 해 수확한 호박. 광월씨의 창고에는 광월씨가 시가로 들어오기 전부터 있었던 나무그릇부터 그 해에 수확한 작물들까지 보관돼있다. 이준헌 기자 heon@kyunghyang.com

여성 농민 수는 2000년대부터 남성농민을 앞질렀다. 하지만 농가의 대표는 늘 남성이었고 지금도 남성이다. 시아버지, 남편, 아들로 경제권이 대물림된다. 농촌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더 많은 일을 하지만 권리나 혜택에서는 소외돼 있다.

2016년 남성 농민의 배우자를 공동경영주로 등록할 수 있게 한 ‘공동경영주 제도’가 도입됐지만 ‘이름뿐’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농어업경영체법의 근거가 되는 법률 조항들에는 공동경영주의 지위를 인정하는 조항이 없어, 실제 정책 대상에서는 소외돼 있기 때문이다. 농민수당도 마찬가지다. 농가당 1명에게만 농민수당이 지급되는 탓에 대부분의 여성 농민은 수당을 받지 못하고 있다. 충남연구원이 지난해 도내 농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농민수당 개선점을 묻는 문항에 남성 농민은 ‘지급액 인상’(35.5%)을 가장 중요하게 꼽은 반면, 여성 농민은 ‘농업인 개인별 지급’(31.9%)을 가장 중요하게 꼽았다.

돈을 벌 곳도 마땅찮았다. 농촌에는 품삯일 말고는 여성 일자리가 전무하다시피 하다. 그마저도 1980년대 중후반까지는 돈이 아닌 곡물로 삯을 대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정성숙 작가는 “농업사회 구조에서 남편이 죽으면 재가(再嫁)를 하는 대표적인 이유가 여성들이 경제활동을 할 데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광업소가 ‘순직가족’ 여성에게 우선 취업 기회를 준 것도 이런 맥락이다. 탄광촌에는 사고나 병으로 남편이나 자식을 잃은 여성이 적지 않았다. ‘강원도 탄광촌의 역사와 문화’(정연수·2004) 연구에 따르면 1978년부터 1987년까지 10년간 석탄 산업 재해로 사망한 수는 총 1749명으로 매해 평균 175명이 탄광 사고로 사망했다.

계화씨도 남편이 사망하고 6개월 뒤인 1985년 6월부터 장성광업소에서 선탄 일을 시작했다. 선탄직은 여성이 일할 곳이 별로 없던 탄광촌에서 유일하게 괜찮은 여성 일자리였다. 월급이 나오고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선탄은 석탄에 포함된 이물질을 제거하고 석탄과 잡석을 분류하는 작업이다. 출근 첫날, 계화씨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눈물을 훔쳤다. “얼굴에 분가루 대신에 까만 거를 묻혔구나 싶은 게 적응이 안 되고 눈물이 나데.”

■“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이상해져부려”

모진 세월을 지내왔지만 말할 곳은 없었다. 농촌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또 다른 어려움은 고립이다. 집성촌이 대부분인 농촌에서는 사실상 온 마을이 시댁이다. “쉬쉬하는 도시와 달리 가정폭력이 ‘보란듯이’ 일어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자들은 각자 다른 곳에서 시집을 오는 반면, 남자들은 온 동네가 자기네 친척이니 걸릴 게 없다.”(정성숙)

첫 아이를 낳고 얼마 뒤, 춘자씨는 떠나기로 결심했다. “참말로 어떻게 할 수가 없”이 모든 게 힘들어서였다. “그만 살고자”하는 마음으로 대문 밖을 나가 무작정 걸었다. 달이 밝은 밤이었다. 시가도 친정도 아닌,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리라 마음 먹었지만 아이가 우는 것만 같고 따라오는 것만 같아 결국 발길을 돌렸다.

광월씨가 자신의 과수원에서 나뭇가지를 정리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heon@kyunghyang.com

광월씨가 자신의 과수원에서 나뭇가지를 정리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heon@kyunghyang.com

광월씨도 40년 넘게 시집살이를 하며 딱 한 번 집을 나선 적이 있다. 큰 아이를 들쳐 업고 두 시간을 걸어 주문진 읍내까지 나왔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아니 이게 무슨 돈이 있어야지. 돈이 있어야 버스를 탈 거 아니래요.” 그는 바닷가에 앉아 종일 바다만 바라보다 도로 두 시간을 걸어 시가로 돌아갔다. 지금껏 어느 누구에게도 하지 않은 이야기다.

그때부터 ‘힘들다’는 생각을 지워버렸다. 일에만 집중했다. 정성숙 작가는 “가부장 공동체에서 여성이 자기의지나 욕구가 있으면 속이 터져서 못 산다”며 “욕구를 실현할 조건이 안 되니 그냥 포기해버리는 것” 이라고 말했다. 귀촌 이후 33년째 농사를 짓고 있는 정 작가도 자신의 욕구를 포기하고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시간을 겪었다.

춘자씨는 답답할 때면 들로 산으로 다닌다. “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이상해져부려. 아무 생각도 안 하고 들로 나가. 나가면 마음이 편항께. 정 답답하면 저그 나가서 소나무하고 이야기를 혀. 소나무야 소나무야 너는 어찌 이리 건강하냐. 나는 마음이 이래이래. 소나무하고 말하고 갈대하고 말하고…. 나는 진짜 듣도 안 하고 보고 안 하고 그라고 살았네. 그래야 쓰겠다 싶어서.”

■나이 50, 내 이름으로 된 첫 적금통장

광월씨가 쉰이 다 되었을 때, 시아버지가 보증을 잘못 서 재산을 몽땅 날렸다. 시아버지의 경제권이 남편에게로 넘어왔다. 시부모에게 돈을 ‘타서’ 썼던 광월씨는 처음으로 자신 명의의 통장을 만들었다. 본인 명의의 적금 통장도 처음 만들었다. 임금을 받으려면 본인 명의 통장이 있어야 하는 도시와는 달리 농촌에는 통장조차 없는 여성이 많았다.

춘자씨가 자신이 번 돈을 직접 관리하기 시작한 건 광월씨보다 더 늦은 60대 후반이 되어서다. “넘의 일(남의 집 일)을 가서 (돈을) 벌어오면 어른 옆에 놔두고 그랬는데 지금은 안 줘. 나이를 먹으니까 돈 달라고 하기가 그러더만. 나도 돈이 있어야 쓰겠구나 싶어서 ‘내가 쓸랑게’ 그러니까 어른이 ‘자네 알아서 하게’ 그래.” ‘어른’은 춘자씨가 남편을 이르는 말이다.

돈은 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됐다. 통장을 만든 후, 광월씨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모으는 데 집중했다. 힘들거나 속상한 일이 있을 때마다 과수원으로 밭으로 나갔다. “일에 집중을 하면요. 힘든 일이 잊어져요. 또 집중한 만큼 나한테 얻어지는 수익이 있으니까, 그런 고통이 별로 생각이 안 나더래요.”

첫 적금 통장을 만들고 1년 뒤, 1000만원을 찾던 날은 아직 생생하다. “1000만원이라는 큰 돈을 겁이 나서 어떻게 가져온대요. 우리 아버님한테 ‘나 겁이 나서요. 같이 가요’ 이래서 버스를 타고 둘이 가서 적금을 가져왔어. 하유…그 전에는 생애 내가 천만원을 세어볼 수나 있었나. 천만원을 서랍에 넣어두고 밤에 한 장 한 장 손으로 세봤어요. 좋아서!”

문계화씨(66)가 자신의 집에서 화장대를 정리하고 있다. 광업소에서는 무채색 작업복을 입는 계화씨는 일이 끝난 뒤엔 화려한 색감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이준헌 기자 heon@kyunghyang.com

문계화씨(66)가 자신의 집에서 화장대를 정리하고 있다. 광업소에서는 무채색 작업복을 입는 계화씨는 일이 끝난 뒤엔 화려한 색감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이준헌 기자 heon@kyunghyang.com

광업소에서 일하기 시작한 계화씨는 생계 때문에 마음을 졸이지 않아도 된다는 게 좋았다. 광업소는 직원들에게 사택을 제공하고 쌀과 연탄을 배급했다. 남편이 병으로 일을 관두면서 월셋방을 전전하던 계화씨 가족은 다시 사택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됐다. “보람이 얼마나 좋아! 일을 하기만 하면 연탄주지, 쌀 주지, 집 주지.”

이들의 노동은 진행형이다. 계화씨는 매일 오전 7시10분 집을 나선다. 얼마나 할 수 있을까 했던 일을 37년째 하고 있다. 잠이 쏟아져 무릎이 저절로 꺾였던 병방근무(오전0시~8시)가 사라지고, 아이들 저녁을 챙기지 못 해 마음 졸이던 을방근무(오후4시~자정)도 사라졌다. 광업소의 흥망성쇠를 함께 했다.

계화씨가 작업복을 입고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거센 바람에도 계화씨는 고개를 한 번도 숙이지 않았다. 이준헌 기자 heon@kyunghyang.com

계화씨가 작업복을 입고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거센 바람에도 계화씨는 고개를 한 번도 숙이지 않았다. 이준헌 기자 heon@kyunghyang.com

37년 전 장성광업소 정문을 지나면서 계화씨는 기도했다. “석공님요. 석공님요. 광업소가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지만 이 광업소 끝날 때 저도 같이 데려가주세요.” 계화씨는 지금도 기도를 한다. “그 험한 일을 하면서 손가락 하나 안 다치고 저를 이 나이까지 데려와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계화씨는 37년 현역 광부, 장성광업소 선탄부 최고참이다. 그는 스스로 ‘여자로서는 팔자가 세다’ 고 표현하면서도 자신의 노동으로 남편이 남기고 간 빚을 다 갚은 것, 두 아들을 대학까지 보낸 것, 여전히 스스로를 건사하고 있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내가 벌어서 내가 먹고 구애 안 받으니까네. 얼마나 편해. 사람들이 ‘아직도 일 다녀? 참 부럽네’ 그래.” 몇 년 전에는 운전 면허도 땄다. 다시 돌아가면 무슨 일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계화씨는 “좀 재미나게 살 것 같다”고 말했다. “큰 트럭 있지. 운동화 딱 졸라매고 그거 운전하면서 전국을 누비고 싶어요. 안 그러면 기관차 운전? 쏴악 달리고 얼마나 좋아. 모든 걸 훌훌 털어버리고 속 시원하게 크게 크게 휘집고 다니고 싶어.”

광월씨가 창고 소파에 앉아있다. 광월씨에게 ‘당당한 포즈’를 취해달라고 하자 다리를 꼬고 허리를 뒤로 기댔다. 10년 넘게부녀회장을 맡고 있는 광월씨는 마을 대소사의 중심이다. 이준헌 기자 heon@kyunghyang.com

광월씨가 창고 소파에 앉아있다. 광월씨에게 ‘당당한 포즈’를 취해달라고 하자 다리를 꼬고 허리를 뒤로 기댔다. 10년 넘게부녀회장을 맡고 있는 광월씨는 마을 대소사의 중심이다. 이준헌 기자 heon@kyunghyang.com

광월씨는 10여년 전 부녀회장이 됐다. 한 달에 한번씩 떳떳하게 외출할 수 있다는 이유로 시작했지만, 이제 광월씨는 마을 대소사의 중심이다. 밭농사와 과수원까지 다양하게 수확시기를 조율해 “연중 계속 수입이 들어올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도 자부심을 느낀다. 광월씨는 말한다. “농사도 사업가 정신이 있어야 해.”

춘자씨는 겨울이라 ‘꽉 묶인 손’이라면서도 대파밭과 배추밭을 오가며 바쁘게 움직인다. 지난 가을에는 김장을 400kg이나 했다. 김장 김치 400kg는 알맞게 나눠 동생들과 아들 셋의 집으로 보내졌다. 김치만이 아니다. 쌀, 고춧가루, 깨, 팥, 참기름, 간장, 된장…. 아홉 살 춘자씨가 산으로 들로 다니며 풀을 뜯어 동생들에게 밥을 해먹였던 것처럼 일흔넷의 춘자씨는 여전히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많은 사람을 먹인다.

누구도 춘자씨의 노동에 제대로 된 대우를 해주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이 가족들을 먹여 살렸다는 것을 안다. “내가 가장이라는 생각은 안 해도 내가 이 집에서 일을 이케이케 해서 이만큼이라도 해 나간다 그런 생각은 하제.” 그는 여성농민이자 가사노동자, 그리고 아픈 남편까지 돌본 요양보호사다. 직업이 세 개라는 말에 춘자씨가 “내가? 와따 진작 가르쳐주지”라며 무릎을 탁 쳤다. 춘자씨가 말했다. “내가 직업이 세 개인 큰 월급쟁이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야제. 어른(남편)한테 그래야제. 나 월급쟁이여!”

춘자씨가 자신의 집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춘자씨는 직업이 세 개라는 기자의 말에 “와따 진작 가르쳐주지”라며 무릎을 탁 쳤다. 이준헌 기자 heon@kyunghyang.com

춘자씨가 자신의 집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춘자씨는 직업이 세 개라는 기자의 말에 “와따 진작 가르쳐주지”라며 무릎을 탁 쳤다. 이준헌 기자 heon@kyunghyang.com


젠더기획 특별취재팀

장은교(젠더데스크) 이아름·심윤지(플랫) 조형국·이수민(데이터저널리즘팀 다이브) 이하늬(정책사회부) 이준헌(사진부) 최유진(뉴콘텐츠팀) 김윤숙(교열부)



[젠더기획]춘자, 광월, 계화씨···산·들·바다에서 일하고 울고 위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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