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췄을 뿐, 못 돌아가는 게 아냐···여성 재취업 '징검다리' 있다면

이성희 기자

‘일 경험’ 길 열어주는 서울시 ‘우먼업 인턴십’

잠시 멈췄을 뿐, 못 돌아가는 게 아냐···여성 재취업 '징검다리' 있다면

“이름이 뭐예요?”

주부 김수영씨(36·가명)는 지난해 아이의 한 친구 엄마가 묻기에 “○○ 엄마예요”라고 답했다. 상대방은 다시 물었다. “아니, ○○ 엄마 이름이 뭐냐고요.”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다. 엄마로 살아온 지난 7년간 ‘김수영’은 사라졌다는 것을. 수영씨는 그때서야 ‘나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임신·출산 전 그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제약회사에 다녔다. 서울대 대학원을 나왔고, 사내 평판도 좋아 마케팅부로 스카우트됐다. 아이 때문에 회사를 그만뒀지만 일을 손 놓는 기간이 이렇게 길어질지는 몰랐다. 양가 부모님이 모두 지방에 사셨고 아이는 육아도우미 누구에게도 적응하지 못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발생하는 여러 예상치 못한 변수는 오롯이 엄마가 감수해야 하더라고요.”

수영씨는 조그만 사무실 등에 이력서를 내고 있지만 면접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 “여성들이 일하지 않는 것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며 잠깐 멈춰있는 건데, 한국 사회는 기회를 주지도 않고 ‘넌 할 수 없을 거야’라고 단정 내리네요.”

잠시 멈췄을 뿐, 못 돌아가는 게 아냐···여성 재취업 '징검다리' 있다면

‘경력 공백’ 서울만 23만여명
 4명 중 3명 대졸 이상 고학력

28일 ‘2021 서울시 성인지 통계’를 보면, 수영씨처럼 육아·출산 등으로 일을 쉬고 있는 만 15~54세 이하 여성은 2020년 상반기 기준으로 서울에만 23만543명에 이른다. 이들 중 76.5%(17만6476명)는 대졸 이상 학력을 가지고 있었다. 경력단절 사유는 ‘결혼’이 21.0%로 가장 많았다. 이어 ‘임신·출산’ 19.6%, ‘가족 돌봄’ 11.3%, ‘육아’ 9.8%, ‘초등학생 자녀 교육’ 4.9% 등이었다. 30~44세의 경력단절 사유는 임신·출산, 육아 비중이 월등히 높으며, 연령이 높아질수록 자녀 교육 및 가족 돌봄 비중이 높아졌다. 사실상 여성들은 거의 전 연령대에 걸쳐 가정 내 돌봄 역할 탓에 일을 그만두게 되는 것이다.

직장을 그만둔 기간은 ‘10~20년 미만’이 27.6%로 가장 많았다. ‘5~10년 미만’은 21.9%였다. 대체로 연령이 높아질수록 일을 그만둔 기간도 길어졌다. 수영씨도 “회사를 그만둔 지 2년이 넘으니까 헤드헌터에게 연락이 오지 않더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여성 취업난은 더 극심해진 상황이다.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 52.2%였던 서울시 여성 고용률은 2020년 51.6%로 떨어졌다. 경력단절 여성들의 취업 자신감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서울시가 지난 10~17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시민 2395명에게 물었다. 그 결과 ‘일 공백을 채워줄 경험’이 45%로 1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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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십’ 직무현장 체험 통해
 희망 기업과 인재 매칭 성과

수영씨가 최근 ‘서울 우먼업 인턴십’ 참여를 신청해 합격을 기다리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먼업 인턴십은 경력단절 여성들이 일 경험을 통해 직무역량을 강화하고 재취업에 성공할 수 있도록 하는 서울시 지원 프로그램이다. 3개월간 직무현장에서 체험형 현장실습을 제공하는데, 이 기간 동안 서울시 생활임금 기준의 지원비(월 약 200만원)가 지급된다. 다만 통상적인 기초 취업 교육이 아닌 현장 투입이기 때문에 희망 직무와 관련한 전문자격증을 소지했거나 경력이 있어야 한다.

직무 분야도 홍보마케팅, 디자인, 재무회계, 정보기술 등 다양하다. 인턴십 종료 후 수료생에게는 일대일 전담상담사를 배치해 취업교육 및 취업맞춤 정보를 제공하는 등 취업연계 지원도 지속적으로 이뤄진다. 희망 업무와 그에 맞는 인재를 발굴·매칭하는 구조다 보니 성과도 좋다. 지난해 서울시 산하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1기를 운영해 현재까지 참여자 62명 중 절반가량이 취업에 성공했다. 올해는 77개 민간기업에 인턴 총 100명이 배치된다.

민간기업의 참여도 적극적이다. 박유경 굿모니터링(주) 대표는 “직원 중 40%가 경력단절 여성인데, 이들의 업무처리가 안정적이고 이직률도 낮다”며 “고학력·고스펙이어도 경력 공백이 있다는 이유로 여성들이 일자리를 얻지 못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심각한 낭비”라고 말했다.

김선순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은 “서울 우먼업 인턴십이 기업에는 직무에 적합한 여성 인재를 연계하고 경력단절 여성들에게는 재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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