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덕수 주택 임대 후 한국시장 진출 날개 단 ‘AT&T’···230억대 통신기기 입찰 특혜 논란도

이유진·김희진 기자
새 정부 초대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된 한덕수 전 총리가 지난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생산선본부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첫 출근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새 정부 초대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된 한덕수 전 총리가 지난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생산선본부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첫 출근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덕수 국무총리 지명자 소유의 자택에 수억원의 월세를 선지급하고 입주했던 미국 통신업체 AT&T가 한국 시장에 진출하며 정부로부터 특혜를 받아 국내 기업들이 강하게 반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혜 논란이 집중된 1993년은 한 지명자가 청와대 통상산업비서관으로 근무하던 시기로 AT&T가 한 지명자의 서울 신문로 주택을 임차해 있던 시기와 겹친다. 한 지명자 측은 “AT&T 특혜 의혹과 한 지명자를 연관짓는 건 과도한 해석”이라고 했다.

7일 경향신문이 확보한 법인등기와 당시 보도 등에 따르면 AT&T는 1987년 10월 자회사를 통해 국내법인을 설립했다. 1988년에는 금성 소프트웨어와 독점판매 계약을 맺고 ‘유닉스’ 운영시스템 소스코드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12월 AT&T 미국 본사는 한국·일본·대만 소재 전화기 제조업체 12곳을 덤핑 혐의로 미 상무부와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소하기도 했다. 당시는 통신시장을 개방하라는 미국의 압력이 상당하던 때였다. 미국은 1988년 8월 새 종합무역법을 발효하고 이듬해인 1989년 한국 통신시장 개방을 놓고 한국 정부와 협상에 나섰다. 협상은 1992년까지 3년간 이어졌다. 그 사이 AT&T는 1990년 한국전기통신공사에 합작법인 설립을 요청하는 등 한국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한덕수 국무총리 지명자의 서울 종로구 신문로 자택. 1989년~1999년 당시 세계 최대 통신업체였던 AT&T와 미국계 글로벌 정유사인 모빌(현 엑슨모빌)의 한국 자회사에 임대하고 6억원대 임대수익 얻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유선희 기자

한덕수 국무총리 지명자의 서울 종로구 신문로 자택. 1989년~1999년 당시 세계 최대 통신업체였던 AT&T와 미국계 글로벌 정유사인 모빌(현 엑슨모빌)의 한국 자회사에 임대하고 6억원대 임대수익 얻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유선희 기자

한 지명자는 1989년 4월 장인으로부터 서울 신문로 단독주택을 매입하면서 곧바로 이 집을 AT&T에 임대했다. 당시 상공부에서 중소기업국장으로 재직 중이던 한 지명자는 1993년 1월 정보통신 관련 정책을 담당하는 전자정보공업국 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월 말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면서 3월에는 청와대 통상산업비서관에 발탁됐다. 이 때는 한·미 양국이 AT&T의 국내 조달시장 참여 허용을 두고 줄다리기를 벌이던 시기다. 양국은 한국 내 통신장비 구매입찰 참가자격·기준·절차 공개 여부를 두고 신경전을 벌였으나 3월31일 막후 협상에서 한국이 미국 측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기로 하면서 타결됐다.

한국시장의 빗장이 풀리자마자 AT&T는 같은 해 7~8월 실시된 한국통신 교환기 입찰에 참여한다. 1차 입찰에서는 전체 입찰물량 444억5000여만원 가운데 22.1%인 98억2000만원어치의 물량을 수주했으며, 2차 입찰에서는 전체 물량 722억5000만원 가운데 19.1%인 138억2000만원어치의 물량을 따냈다.

1994년 10월14일자 한겨레신문 1면.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화면 캡쳐

1994년 10월14일자 한겨레신문 1면.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화면 캡쳐

이는 특혜 시비로 이어졌다. 1994년 10월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서 체신과학기술위 소속 조영장 의원(민자당)은 한국통신 교환기 입찰 당시 삼성전자·금성정보통신 등 국내업체 4곳은 재무부의 공공입찰 관련 규정에 따라 수백쪽에 이르는 증빙서류를 제출했지만 AT&T는 이 같은 규정을 무시하고 견적서 1장만 제출했다고 지적했다. 당시 재무부 회계규정은 공공입찰에 참여하는 기업에 재료비·노무비 등에 대한 증빙서류를 제출하도록 했는데, AT&T는 “입찰 정보가 새 나간다”는 이유를 들어 견적서 1장 외 다른 서류는 제출하지 않았다. 한겨레신문은 1994년 10월14일자 기사에서 “(AT&T의) 편법적 입찰은 미국정부의 무역보복 압력에 밀려 정부가 지난해 3월 이 회사의 국내진출을 허용한 데 따른 것으로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고 전했다.

AT&T의 입찰 당시 청와대 통상산업비서관으로 있던 한 지명자는 1994년 6월 상공부 기획관리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어 12월 상공부가 통상자원부로 개편되면서 통상자원부 통상무역실장에 올라 1996년 12월까지 재임했다. 이 기간에도 AT&T를 둘러싼 특혜 의혹은 계속됐다. 1995년 한·미통신협상에서 한국 정부는 AT&T에 한해 신형 전화교환기의 인증절차 간소화를 허용하면서 ‘통신주권 침해’ 논란도 일었다. 통신장비의 품질 인증은 통상 1년의 검사 기간이 필요한데 AT&T에 대해서만 석 달 내 기능테스트만 거치면 공공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다는 것이다.

한국경제는 1995년 3월26일자 사설에서 “이번에도 정부는 양보심을 발휘해서 미국업체에 특혜를 베풀었다”며 “이번 통신협상 결과는 정부가 우리의 통신주권을 위태롭게 하는 선까지 양보했다는 뒷얘기를 들을 만하다”고 비판했다.

인사청문 준비단 관계자는 이날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외국인 임대 전문 부동산에 (월세 계약을) 일임했고 한 지명자는 임차인이 누군지 나중에야 알았다고 한다”며 “당시 AT&T 특혜 의혹과 한 지명자를 연관짓는 건 과도한 해석”이라고 말했다.

한 지명자는 1989년부터 99년까지 10년여 동안 신문로 자택을 AT&T와 미국계 글로벌 정유사인 모빌(현 엑슨모빌)의 한국 자회사 모빌오일코리아에 임대하고 6억2000만원의 월세 수익을 올려 이해 충돌 의혹이 제기된 터다.

인사청문 준비단은 8일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당시 후보자의 업무와 관련성이 전혀 없다”며 “한국 통신시장 한·미 협상이 진행될 때 후보자는 주무부처인 체신부가 아닌 상공부에 근무했으며, 청와대 통상산업비서관으로 근무할 때는 경제부처 간 정책 조정 업무를 맡았을 뿐 개별 업체와 관련된 업무는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Today`s HOT
올림픽 성화 도착에 환호하는 군중들 러시아 전승절 열병식 이스라엘공관 앞 친팔시위 축하하는 북마케도니아 우파 야당 지지자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영양실조에 걸리는 아이티 아이들
폭격 맞은 라파 골란고원에서 훈련하는 이스라엘 예비군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