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노가리 골목’에 오시라

이종건 옥바라지선교센터 사무국장
‘을지OB베어’ 공동대책위원회 활동가들이 지난 4월 26일 서울 중구 을지로 을지OB베어 앞에서 상생을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을지OB베어’ 공동대책위원회 활동가들이 지난 4월 26일 서울 중구 을지로 을지OB베어 앞에서 상생을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지난 4월 21일 새벽, 휴대전화 알림이 쉴 새 없이 울렸다. “용역”, “강제집행” 등의 문자메시지였다. “용ㅇ7ㄱ 드렁와”라는 문자는 급박한 상황임을 암시했다. 부리나케 택시를 타고 서울 을지로3가 ‘을지OB베어’로 향했다. 가는 내내 기도했다. 비참해지지 않게 해달라고.

새벽 4시쯤 도착한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용역 70여명이 을지OB베어에 들이닥쳤다. 당시 6평 남짓 좁은 가게에는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사장과 연대인 2명만이 언제 들어올지 모를 용역에 대비하고 있었다. 이들은 예고된 폭력 대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보려 했지만, 당하는 쪽은 언제나 세입자라는 냉혹한 현실은 예외가 없었다.

■아수라장이 된 을지OB베어

법원의 용역들이 을지OB베어에서 집기를 들어내기 시작했다. 최소 십수년에서 길게는 40년 이상 사용한 물품들이었다. 을지OB베어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시민들이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 장비, 박물관에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OB 맥주잔, 건물주 ‘만선호프’와의 상생을 촉구하는 내용의 전단 수천장까지…. 모든 게 트럭에 실려 어딘가로 옮겨졌다.

42년 전 을지OB베어는 한국 최초의 생맥줏집으로 지금 자리에 터를 잡았다. 호주머니 가벼운 손님들을 생각해 안주는 단출하게 노가리를 내놓았다. ‘노가리+맥주(노맥)’을 처음 선보인 곳이기도 하다. ‘여름에는 2도’, ‘겨울에는 4도’ 을지OB베어의 1대 사장 강효근씨가 발견한 최적의 맥주 온도다. 매일 들어오는 생맥주를 실온에 두지 않고 냉장고에 넣어 사흘간 숙성시킨다. 보통 생맥줏집에서 사용하는 냉각기를 이곳에선 찾아볼 수 없다. 직접 고안한 관을 통해 맥주를 뽑아내고 매일 그 관을 닦는다. 강씨의 딸이자 2대 사장인 강호신씨도 가게를 이어받은 뒤 한결같은 고집으로 맥주를 뽑아냈다.

레시피를 바꾸는 일은 없었다. 안주 하나 새로 추가하는 데만 몇년이 걸리는 느릿느릿한 가게가 바로 을지OB베어다. 바로 앞에 있는 뮌헨호프의 사장이 장사를 시작하기 전 “옆에서 맥주를 팔아도 되겠느냐”고 묻자, 1대 사장 강씨는 “잘해봅시다”라고 답하며 악수를 청했다고 한다.

이렇게 노가리 골목이 만들어졌다. 유명한 골목마다 있을 법한 ‘원조 논쟁’ 없이 터줏대감 을지OB베어와 후발 가게들이 함께 골목을 꾸려나갔다. 서울시에서 이 골목을 2015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2018년 을지OB베어를 ‘백년가게’로 선정하기도 했다. 골목의 트레이드마크인 야간 야장영업(영업장 이외의 장소에서 하는 영업)은 이런 골목의 특수성을 인정해 2017년 서울시 중구청이 허가한 결과였다. 어느새 을지로는 이른바 ‘힙지로(힙+을지로)’로 불리고 있었다.

2014년쯤 만선호프를 인수하며 등장한 새 주인은 공격적으로 가게를 확장했다. 을지OB베어 이전에만 10개의 가게가 사라졌다. 지난 1월에는 을지OB베어가 입주한 건물의 지분 대부분을 만선호프 측에서 매입했다. 그는 건물주가 됐다. 을지OB베어는 만선호프 측의 무리한 요구에도 응할 생각이었다. 그저 이 자리에서 계속 장사를 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을지OB베어는 만선호프가 약속한 대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여섯 번째 강제집행이 이뤄졌다. 을지OB베어의 간판도 뜯겨나갔다. 용역들은 2대 사장의 아들인 3대 사장과 연대인들을 거꾸로 들어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들은 거의 반쯤 실신한 상태로 바닥을 기었다. 3대 사장은 용역의 다리를 붙잡고 연신 “아파요”, “살려주세요”, “제발 그만 하세요” 등을 쉰 목소리로 외쳤다. 가게 근처로 가면 용역들이 다시 그들의 팔과 다리를 들어 멀리 내다놨다. 기고 또 기었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시민 수십명이 도착할 때까지 3대 사장은 반나체 상태로 아스팔트 거리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사람은 정주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기면 문화를 만든다. 맥줏값을 올리지 못하는 사장의 마음을 손님들이 제대로 헤아리긴 어렵다. 마음값을 받았다 싶은 손님들은 문간이 닳도록 가게를 드나들며 단골이 된다. 이렇게 해서 상권이 만들어진다. 상권과 또 다른 이의 노력이 만나 골목이 됐다. 짐작하기 어려운 작은 가게의 노력과 손님들의 호응으로 만들어진 문화를 우리는 ‘공공성’, 즉 모두의 것이라 여겼다. 이곳을 노가리 골목이라 부르며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는 데 동의했다.

■이곳을 지키려는 이유

꼭 을지OB베어만을 지키자는 게 아니다. 2년에 한 번씩 이사해야 하는 세입자의 도시에서, 오르는 상가임대료에 살아남기만 해도 기적인 소상공인들의 도시에서, 그 모든 악조건을 뚫고 문화까지 일궈낸 가게가 을지OB베어다. 이런 가게를 잃은다면 도대체 다른 어떤 가게와 집, 사람, 마음을 지켜낼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이 없다. 그래서 이곳부터 지키려 한다.

이 가게조차 지킬 수 없다면 더 이상 노가리 골목은 얘기도 꺼내지 말자. 서울미래유산, 백년가게 등의 동현판도 녹여다 사람 쫓아낸 자리에 세워 마땅한 철장 만들기에 보태기나 할 일이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도 치우자. 주택임대차보호법은 또 무슨 소용인가. 그냥 짐을 싸서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면서 살자. 언제든 사라질 가게의 단골이 될 생각일랑 집어치우고, 곧 헤어질 이웃과는 인사도 나누지 말자.

무언가를 사랑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더디지만 정직하게 시간을 쓴다면 남이었던 사람도 이웃이 된다. 콘크리트 더미가 집이 되며 식량은 요리가 된다. 이 모든 일이 가치가 없다면, 콘크리트에 묻혀 떠도는 인생을 그러려니 하고 살다가 가면 된다.

사람의 삶은 마냥 떠돌 수만 없기에 어떤 이들은 싸우기로 마음을 먹는다. 을지OB베어가 그렇다. 이 싸움의 끝이 건물주 만선호프와 을지OB베어의 상생일 수 있다면, 그래서 ‘당연히 쫓겨나는 세상’에 제동을 걸 수 있다면 우리는 이 작은 가게에 갚을 수 없는 큰 빚을 지게 되는 셈이다.

을지OB베어와 노가리 골목을 사랑하는 시민들은 강제집행 이후 가게 앞에서 피켓을 들었다. 뮤지션들은 문화제를 열고, 종교인들은 예배를 드린다. 하루에만 수천명이 오가는 골목 사거리에서 “건물주 만선호프는 을지OB베어와 상생하라, 대화하라”를 외친다.

오후 6시부터 자정까지는 골목에 가장 많은 사람이 몰리는 시간이다. 따가운 눈살을 오기로 이겨가며 한번만 우리 이야기를 들어달라 호소하고 있다. 강제집행으로 문을 부수고 집기를 뜯어낼 수는 있지만 사람 간의 연대를 쉽게 끊을 순 없으리라. 하물며 42년의 인연으로 단단히 묶인 가게다. 을지OB베어와 단골들은 ‘상생’이라는 두 글자를 붙잡고 끝내 지워지지 않으려 몸부림칠 태세다.

만선호프에 있는 손님들에게 말했다. “맛있게 드시고 가게를 나올 때 만선호프 사장님께 한번만 이렇게 얘기해주세요. ‘저기 시끄러운 사람들이 상생하자는데 그냥 같이 장사하세요’라고요.”

맥주 한잔하기 딱 좋은 날씨다. 노가리 골목에 많은 사람이 찾아주길 바란다. 골목에서 ‘노맥’ 원조 가게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란다. 몇개 남지 않았지만 역사와 전통의 맥줏집을 충분히 즐기길 바란다. 그리고 을지OB베어가 여전히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려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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