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수록, 알수록 흥미진진한 곳 ‘페츠베를린’

신혜광·이은혜

신혜광·이은혜의 ‘베를린 육아일기’

토요일 오전, 눈을 뜨자마자 바쁜 하루가 시작된다. 부스스 깨어 아침을 먹고 난 뒤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하고,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채 부랴부랴 나갈 준비를 하면 대충 오전 10시 정도가 된다. 그다음은 본격적으로 이번 주말의 목적지를 검색한다. 지도를 들었다 놨다 반복하며 이리저리 살핀다. ‘우리는 과연 이번 토요일에 어디에서 놀 것인가?’

[다른 삶]볼수록, 알수록 흥미진진한 곳 ‘페츠베를린’

가장 만만한 목적지는 언제나 공원이다. 웬만한 공원에는 찾기 쉬운 위치에 아이들이 놀 만한 놀이터가 있고, 널브러져 앉을 수 있는 너른 장소가 있으며, 시야도 탁 트여 있다. 시간과 냉장고가 허락한다면 간단한 도시락도 싸고, 돗자리를 비롯한 ‘대부분 아이의 짐’을 챙겨 집을 나선다. 놀이터에 가까워질수록 비슷비슷한 사람들과 마주한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누고 아이와 함께 그네나 미끄럼틀 차례를 기다리며 말을 건네기도 한다.

날씨만 허락한다면 사실 공원만 한 주말 목적지는 없다. 일단 가기 쉽고 편하며 고만고만한 아이들과 부모들이 주는 왠지 모를 안도감도 좋다. 자전거나 킥보드를 원하는 만큼 탈 수 있는 넉넉한 공간도 있고 사람의 소음을 부드럽게 받아주는 나무도 빼곡하다. 무엇보다 주중에 아이에게 뛰지 말라고 재차 반복한 미안함을 마음껏 풀 수도 있다. 당장 이번 주말에 ‘특별함’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살짝만 자유로워지면 가까운 공원에서 가장 큰 즐거움을 만날 수도 있다.

1919년 개장한 불하이데 공원에 있는 아이들의 실내 활동 시설
그림자 놀이터와 널브러져 책을 읽을 수 있는 코너에 야외수영장까지
일년 내내 즐길 거리가 넘치는 미스터리한 SF시리즈 같다

익숙한 곳이 아닌 색다른 장소를 찾는 것은 어쩌면 어른들의 마음
어디든 언제든 함께 웃을 수 있는 곳은 ‘행복한 선물’이 아닐까

반면 실내 목적지로 대규모 쇼핑몰도 있다. 한국처럼 세심하고 꼼꼼하게 모든 게 준비돼 ‘부모들의 지갑을 열기만 하면’ 되는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날씨에 영향받지 않고 놀 수 있는 쾌적한 환경이 조성돼 있다. 시의 곳곳에 몇 개 없던 대규모 쇼핑몰이 날로 늘어나고 있으며 그 규모도 점점 커지고 있다. 다양한 연령대의 방문객을 대상으로 한 상점에는 정말 없는 거 빼고 다 있다. 다양성을 자랑하는 음식들, 아이들을 위한 놀이기구를 비롯해 최근 수년 사이 베를린 곳곳에 생겨난 ‘대규모 쇼핑몰’은 그 규모나 외관에서 한국의 쇼핑몰 문화와 상당히 닮은 점이 많다.

살짝 뻔한 듯했던 주말 목적지 패턴에 새롭게 등장한 장소가 있었으니, 바로 ‘페츠베를린(FEZ-Berlin)’이다. 무려 1919년에 최초 개장한 베를린 북동쪽 불하이데 공원(Waldpark Wuhlheide)에 위치한 페츠베를린은 실내공간 1만3000㎡, 실외공간 17만5000㎡의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한다. 우연히 지인을 통해 접한 이 시설은 들여다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그 끝을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SF시리즈 같다. 아동, 청소년, 가족 등 다양한 연령대를 대상으로 한 이벤트 전담팀이 마련되어 있어 연중 흥미진진한 즐길거리가 이어진다. 베를린 음악학교와 수영장 등을 위한 운영팀과 관리팀이 개별 편성돼 있을 정도의 조직이다. 그러니 1년 내내 페츠베를린에서 아이와 함께 주말을 보낸다? 가능하다! 각기 다른 가정의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이 ‘적어도 하나쯤은’ 있을 것 같은 방대함 때문이다.

아이들과 함께 놀 수 있는 실내 공간 개념이 한국에서는 ‘키즈카페’로 통한다. 1년 내내 날씨나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다양한 시설과 장난감이 있고 부모들은 아이들이 보이는 위치에서 다과를 (심지어 장소에 따라서는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이 시설은, 이제는 한국에서 아이를 기르는 부모들에겐 빼놓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일상과 깊숙이 연관되어 있다. 물론 여름엔 너무 덥고 겨울엔 너무나도 추운, 극단적이기까지 한 기후의 다양성이 아이들의 야외 활동에 많은 제한을 하니 실내 활동공간이 자연스레 발달할 수밖에 없다.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한여름 주말, 잠시만 있어도 정수리가 뜨끈뜨끈해지는 놀이터는 가끔은 어른에게도 혹독하기까지 하다. 해가 갈수록 짧아지는 봄과 가을의 시간만으로는 애석하게도 매일매일 아이들의 에너지를 소진시킬 수 없다.

‘아이들의 실내 활동을 위한’ 시설인 페츠베를린의 건물 구조는 흡사 극장을 연상케 한다. 입구와 이어진 높고 넓은 규모의 홀이 건물의 중앙에 위치해 모든 공간을 이어준다. 홀의 한쪽에 위치한 널찍하고 낮은 계단, 홀과 이어진 여러 개의 작은 공간, 홀의 한쪽으로 연결되는 수영장 등 대부분의 시설은 모두 중앙홀을 지나게 되어있다. 방대한 규모의 중앙홀은 제아무리 크고 시끄러운 아이들의 소리도 모두 흩어지게 만들어 ‘생각보다’ 실내공간이 시끄럽지 않게 느껴진다. 바깥 풍경을 담아주는 커다란 창도 실내 공간을 실제보다 더 크게 느껴지도록 돕는다.

그밖에 소소한 활동 공간도 마련돼 있다. 각종 종이로 모양을 낸 그림자놀이터, 널브러져 책을 읽을 수 있는 코너, 스스로 과일을 잘라 만드는 셀프 스무디 코너, 각종 보드게임 코너, 나무 블록 쌓기 공간 등 걸음걸음마다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놀고 있다. 각종 놀이들은 주기적으로 바뀌며 홈페이지에 공지된다. 부활절이나 성탄절 등 국가적 공휴일의 경우 이와 관련된 놀이들이 준비된다. 2층에 위치한 극장에서는 어린이를 위한 영화가 상영되는데, 이를 제외하면 모니터나 빔과 같은 강한 시각적 자극은 없다.

입구 반대편에는 야외 수영장을 비롯해 여러 가지 야외 활동을 위한 공간이 있다. 각종 자전거와 킥보드, 세그웨이 등 탈거리는 물론 커다란 레고 블록까지 평소에 접하기 힘든 놀거리들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살짝 쌀쌀한 날씨에는 실내와 실외를 번갈아가며 왔다 갔다 하면 시간이 훌쩍 지난다. 입장료는 이용하는 프로그램별, 시설별로 구입하면 된다. 연령대별로 반나절씩 걸리는 프로그램이 있는 반면 두어 시간 만에 끝나는 프로그램도 있다. 입장료 가격은 2유로(약 2600원)에서 5유로(약 6700원) 사이, 수영장은 가족당 11.5유로(약 1만5000원) 정도에 구입 가능하다. 실내 프로그램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면 혹은 기다리던 프로그램이 아니라면 실외에서만 놀아도 된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해가 잘 드는 곳에 자리를 펼치고 옹기종기 앉은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커다란 건물만 아니라면 그저 널찍하고 탁 트인 공원에 놀러온 것과 다름없으니까.

가끔은 아이에게 ‘어딜 가고 싶은지’ 묻기도 한다. 지난 몇 년간 쌓인 아이의 경험을 토대로 혹시 또 가고 싶은 곳이 있을 것 같은 궁금증과 ‘그냥 아이가 가자고 했으니까’ 하고 의지하고 싶은 마음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집 아이는 뭘 먹고 싶냐고 물으면 항상 피자나 파스타를, 어딜 가고 싶냐고 하면 집 앞 놀이터를 이야기한다. 그럴 때마다 “에이…”를 연발하며 가기는 한다. 익숙한 곳이 아닌 새로운 곳에 가고 싶은 것은 아이가 아니라 어른의 마음일 수도 있다. 매번 먹는 것이 너무 익숙해 다른 음식을 먹고 싶은 것도 마찬가지로 어른의 마음일 수 있다. 주말에 색다른 장소에서 특별한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 역시 어른의 마음일 수 있다. 어쩌면 아이의 마음은, 어디가 됐건 언제가 됐건 그냥 까르르 웃을 수 있는 즐거움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함께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할 테니까.



[다른 삶]볼수록, 알수록 흥미진진한 곳 ‘페츠베를린’

▶신혜광·이은혜

현재 베를린에 거주 중인 3인 가족이다. 닭띠 아빠는 건축설계사무실에 다니고, 돼지띠 엄마는 그림을 그리고, 돼지띠 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닌다. 단독주택에 사는 것, 자동차로 베를린에서 나폴리까지 여행하는 것이 꿈이다. <스페인, 버틸 수밖에 없었다>와 <어느 멋진 일주일, 안달루시아>를 쓰고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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