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경찰 ‘인사 쿠데타’ 규정해 ‘통제 강화’ 명분 활용

이유진 기자

대통령실·행안부 엇박자보다 경찰 수뇌 ‘불순한 의도’에 초점

행안부 “경찰지원조직 없어 생긴 문제”…경찰국 신설 근거로

공직기강비서관실 감찰 가능성 관측도…경찰 지휘부는 침묵

“어이없는 일 벌어져”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로 출근하면서 치안감 인사 번복 사태에 관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어이없는 일 벌어져”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로 출근하면서 치안감 인사 번복 사태에 관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치안감 인사 번복 사태를 두고 23일 “국기문란” “인사 유출” 등 표현을 쓰며 강한 어조로 경찰 지휘부 ‘제압’에 나서면서 후폭풍이 커지고 있다. 경찰을 하루빨리 틀어쥐기 위해 행정안전부가 성급한 인사를 추진하다 대통령실과 엇박자를 내면서 벌어진 참사라는 게 경찰 내부와 시민사회의 다수 시각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도리어 이번 인사 참사를 행안부 내 경찰국 신설 등 경찰 통제 제도화를 강행하는 명분으로 활용하며 ‘되치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이번 인사 참사의 배경에 대해 이날 “경찰에서 행정안전부로 자체 추천한 인사를 그냥 고지를 내버린 것”이라고 했다. 이어 “대통령 재가도 나지 않고, 행안부에서 검토해서 대통령에게 의견도 내지 않은 상태에서 그런 인사가 밖으로 유출되고, 이것이 마치 인사가 번복된 것처럼 나간 것”이라며 “말이 안 되는 일이고 어떻게 보면 국기문란일 수 있다”고 했다. 이번 참사를 경찰의 단순 실수도 아니고 일종의 ‘인사 쿠데타’로 규정한 것이다. “경찰이 희한하게 대통령 결재가 나기 전에 기안 단계의 인사안을 공지해 사달이 났다”는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전날 발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찰 지휘부의 ‘불순한 의도’에 강조점을 둔 것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주장은 행안부와 경찰이 설명한 사건 경위와 배치된다. 행안부 측은 윤 대통령이 최종 인사안을 21일 오후 10시에 결재했다고 밝혔다. 행안부가 ‘최종안’이라며 치안감 인사를 번복한 2차 인사안이 경찰 내부에 공지된 것은 오후 9시34분이었다. 2차 인사안도 대통령이 결재하기 전에 공개됐고, 공개 주체는 행안부이다. ‘대통령 결재 전 공개’가 문제라면 1차 인사안을 공개한 것뿐만 아니라 2차 인사안을 공개한 것도 ‘국기문란’에 해당할 수 있고, 그에 대한 전적인 책임은 행안부에 있는 셈이다.

총경 “권력의 통제 반대”…경찰, 릴레이 1인 시위 박송희 전남 자치경찰정책과장이 23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총경 “권력의 통제 반대”…경찰, 릴레이 1인 시위 박송희 전남 자치경찰정책과장이 23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일각에선 윤 대통령과 이 장관이 경찰의 인사관행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벌어진 사태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그간 경찰 고위직 인사는 경찰청, 행안부, 대통령실이 서로 안을 조율하고, 경찰청 내부망을 통해 ‘인사 내정’으로 발표한 뒤 공식 결재 절차를 밟는 식으로 진행됐다.

윤 대통령 주장대로 ‘경찰이 자체 추천한 인사를 그냥 보직을 내버린’ 것일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중론이다. 대통령실과 행안부는 이번 인사 참사를 경찰 통제 강화의 명분으로 삼고 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인사 명단 관리는 행안부 치안정책관이 담당하는데, 치안정책관은 경찰청에서 파견 나온 경무관으로 해당 인사의 실수”라며 “경찰개혁안에 명시된 경찰 지원조직이 없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고 보인다”고 말했다. 행안부에 ‘경찰국’과 같은 조직이 없어서 생긴 문제라는 것이다.

이번 인사 참사가 전대미문의 ‘인사 사고’인 점, ‘진실 게임’ 양상으로 흐르는 점, 진상규명 여론이 높은 점, 윤 대통령이 이날 경찰 지휘부를 강하게 질타한 점 등으로 미루어 대통령실 소속 공직기강비서관실이 감찰에 착수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경찰 지휘부는 이번 인사 참사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경찰제도개선 자문위원회 권고안 발표 직후 “법치주의 훼손”이라는 입장문을 내며 반발한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이날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따로 보고받은 건 없다”고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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