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동 잦아도 단 두 벌뿐…오늘도 땀에 찌들고, 탄내 진동하는 방화복 입고 나갑니다”

김태희 기자
경기 화성의 한 119안전센터에서  근무하는 소방관이 지난 24일 까맣게 변한 방화복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태희기자

경기 화성의 한 119안전센터에서 근무하는 소방관이 지난 24일 까맣게 변한 방화복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태희기자

지난 24일 경기 화성의 한 119안전센터에서 만난 조상열 소방위(57)의 방화복에는 땀 냄새와 탄내가 뒤섞여 있었다. 3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 속 화재 현장 진압을 마치고 복귀한 뒤에도 방화복을 제대로 세척하지 못한 탓이다.

조 소방위가 근무하는 화성은 소규모 공장이 밀집된 지역이다. 화재가 잦아 많게는 하루 7번까지 출동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가 가진 방화복은 2벌이 전부여서 돌려 입어가며 모든 현장에 나가야 한다. 지역의 소방재난본부는 소방청 지침에 따라 내근 소방관에게는 1벌, 현장 소방관에게는 2벌의 방화복을 각각 지급하고 있다.

방염처리가 된 두꺼운 방화복을 세탁한 뒤 건조까지 마치려면 하루 이상이 걸린다. 출동이 많아지게 되면 소방관들은 어쩔 수 없이 덜 마르고 축축한 상태의 방화복을 입고 나갈 수밖에 없다. 시간이 없다 보니 세척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조 소방위의 방화복에는 정체 모를 검은 얼룩이 곳곳에 묻어있다.

“이전에 근무했던 곳은 화재가 별로 없어 2벌로 충분했죠. 그런데 화성은 전국에서 출동 횟수가 손에 꼽힐 정도로 많거든요. 2벌은 정말 턱없이 모자라죠. 덜 마른 상태로 입어야 하니 방화복에서는 항상 악취가 나요. 안되는 줄 알면서도 오염 정도가 심하지 않으면 그냥 세탁하는 걸 포기하는 경우도 생겨요.”

조 소방위는 열악한 방화복 세탁 환경도 지적했다. 그는 “방화복 전용 세탁기 보급이 이뤄지고 있지만 이곳을 비롯한 대다수의 119안전센터에서는 일반 세탁기, 일반 세제를 쓰고 있다”면서 “화재 현장의 유독물질이 사라질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고양의 한 119안전센터에서 근무하는 이수석 소방위(45)는 여름보다 겨울이 더 힘들다고 말했다. “여름에는 냄새만 참으면 되는데 겨울에는 작전활동에 지장이 생길 정도에요. 물을 잔뜩 머금은 방화복을 입고 나가면 꽁꽁 얼어버려 그 추위를 견디기가 정말 힘들더라고요. 5년 전에는 추위를 못 이겨 창고에 버려진 낡은 방화복을 입고 나간 적도 있어요.”

그는 방화복 등 장비 세척에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소방관의 활동력이 떨어진다고도 했다. 그는 “화재진압을 마치고 돌아오면 기본적인 장비 세척에만 1시간이 걸리고 방화복은 종일 빨고 말려야 한다”면서 “대기 시간에 체력을 보충하기 힘들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일선 소방관들이 겪는 방화복 부족 문제는 통계상으로도 나타난다. 한국화재소방학회가 발간한 ‘소방관의 특수방화복 사용과 관리실태’(2020년) 연구 보고서를 보면 현장 소방관의 절반 가량은 3벌 이상의 방화복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었다.

연구는 2019년 4월2일부터 4월22일까지 재직 소방공무원 중 화재진압과 인명구조 업무를 수행하는 1097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했다. ‘안전한 현장 활동을 위해 필요한 최소 방화복 수량’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의 48.7%는 “3벌 이상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또 ‘방화복 세탁 후 청결만족도’를 묻는 질문에는 31.8%만 만족하고 있었으며, 응답자의 78.3%는 ‘방화복 전문운영·관리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정용우 소방을 사랑하는 공무원노동조합 경기위원장은 “모든 지역에 일괄적으로 2벌의 방화복을 지급하는 건 문제가 있다”면서 “예산이 부족하면 출동이 잦은 지역을 우선해 방화복을 늘리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소방관의 안전을 위해 전문 세탁업체에 세척을 맡기는 등 체계적인 방화복 세탁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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