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락치’와 ‘피해자’ 사이···김순호와 한희철의 엇갈린 길

이홍근 기자

“주민등록 용지 3~4장만 마련해라. 내가 한두 달 안으로 제대하게 될 거 같으니 그것에 사진도 붙이고 해서 만들어 보자”

“주민등록 용지 3~4장만 마련해라. 내가 한두 달 안으로 제대하게 될 거 같으니 그것에 사진도 붙이고 해서 만들어 보자”

서울대 공대 4학년생 한희철씨는 군에서 복무하던 1983년 10월 학생운동 동지 A씨에게 편지를 보냈다. 5·18민주화운동에 가담해 수배받던 대학생들이 주민등록증 일제갱신으로 신군부에 붙잡힐 위기에 처했으니 위조 주민등록증을 만들어 보자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5일 A씨가 헌병에게 붙잡히는 바람에 한씨의 편지가 군의 손에 들어갔다. 한씨는 즉시 녹화공작사업(운동권 인사의 이념을 바꿔 ‘프락치’로 활용하는 대공 활동) 대상자로 ‘발굴’됐다. 이날부터 3일간 국군보안사령부(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에 감금돼 곤봉으로 고문당한 한씨는 운동권 동료들에 대한 진술을 강요당했다. 군이 자신을 ‘프락치’로 활용하려 하자 한씨는 총기를 사용해 생을 마감했다.

경향신문은 10일 ‘녹화·선도공작 의문사 진상규명 대책위원회(대책위)’을 통해 입수한 한씨의 존안자료를 살펴봤다. 한씨의 존안자료는 김순호 행정안전부 초대 경찰국장의 존안자료와 함께 국가기록원에도 보관돼 있다. 김 국장은 1983년 녹화공작대상자로 입대한 뒤 프락치 활동을 했다는 의혹, 1989년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인노회) 동료들을 밀고해 경찰에 특채됐다는 의혹을 받는다.

국가기록원에 보관 중인 한씨 존안자료 갈무리. 녹화·선도공작 의문사 진상규명 대책위원회 제공

국가기록원에 보관 중인 한씨 존안자료 갈무리. 녹화·선도공작 의문사 진상규명 대책위원회 제공

존안자료에 따르면 12월8일 한씨는 보안사로 끌려가 수차례 폭행을 당했다. 폭행에 사용된 도구는 80cm 길이의 곤봉이었다. 보안사는 한씨를 끌고간 이유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한씨는 자신이 왜 고문을 당하는지 몰랐다고 한다. 한씨는 추후 유서와 함께 작성한 ‘성남YMCA 총무에게 드리는 글’에서 “전혀 무슨 일 때문인지 영문도 모르고 갔고, 제가 그간 해온 운동이라는 것도 특별히 현실적인 행동을 한 사건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내가 그간 운동을 열심히 해왔다는 사실을 저들이 잘 알리 만무하다는 생각만 하며 가게 되었다”고 적었다.

보안사는 한씨가 동료를 밀고하길 바랐다. 폭행 사이사이 보안사는 한씨가 주민등록증 위조를 시도한 사실과 성남시 대학생 연합회, YMCA 등지에서 활동한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넌지시 흘렸다. 그러나 한씨는 밀고를 거부했다. “진술을 하다보면 연이은 취조에 사정없이 사건은 커질 거고 난감했습니다. 전 죽을 방법을 찾았습니다. 제게 주어진 시간은 단 몇 분이었습니다.” 한씨는 수차례 자해를 시도했다.

결국 한씨는 “확인하면 다 나타날 부분”만 진술하기로 했다. 40장에 걸친 진술서와 반성문에는 주로 본인의 운동 활동과 동료들을 위한 변이 담겼다. ‘군 입대 전 운동권 활동을 반성하고 앞으로 절대 같은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반성문과 ‘보안사에서 조사받은 내용에 대해 외부에 절대 누설하지 않겠으며, 귀 사령부 대공업무와 관련 협조 요구시 이에 적극 협조하겠습니다’는 각서도 작성했다.

한씨가 YMCA 총무에게 전달할 목적으로 작성한 편지. 녹화·선도공작 의문사 진상규명 대책위원회 제공

한씨가 YMCA 총무에게 전달할 목적으로 작성한 편지. 녹화·선도공작 의문사 진상규명 대책위원회 제공

한씨는 10일 소속 부대로 돌아와 펜을 들었다. 자신이 보안사에서 고문당한 사실과 진술 내용, 심경을 편지에 담았다. 학생운동 동료가 피해를 입을까봐 미리 알리려 한 것이다. 한씨는 당일 새벽 편지를 소속 부대 이병에게 건네며 “YMCA 총무님에게 직접 전달할 수 없으면 소각시켜달라”고 부탁했다.

이튿날인 11일 새벽, 한씨는 근무를 바꿔 오전 4시부터 오전 5시30분까지 경계근무를 서겠다고 자원했다. 근무신고를 하고 실탄 15발을 지급받은 한씨는 오전4시35분경 유서를 남기고 총기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유서에는 한씨의 사망 전 심경이 담겼다. “전 현실에 순응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전 현실이 요구하는 비인간적이고 나태한 길을 거역한 사람입니다.”

군은 한씨의 사망 원인을 은폐했다. 취조의 주된 내용이 운동권 동료들에 관한 내용이었음에도 주민등록증 절취 지시에 따른 연행이라고만 했고, 프락치 활동을 강요한 사실은 예상 질문과 답변을 만들어 은폐했다. 조사 장소가 일반 아파트와 동일해 고문이 불가능했다는 허위사실을 발표하기도 했다.

사단 헌병대는 한씨가 보안사에서 조사받은 사실 자체를 감추려고 수사관에게 축소 수사를 지시했다. 소속부대 관할 보안부대는 한씨의 유서 뒷부분에 적힌 ‘보안사령관 전두환 귀하’라는 부분을 뺀 채 타이핑해 유족에게 건넸다.

녹화선도공작의문사진상규명대책위 소속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11월23일 서울 중구 군사망사고위원회 앞에서 의문사 김용권 사건 조사결과에 대한 군사망사고위원회의 발표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창길기자

녹화선도공작의문사진상규명대책위 소속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11월23일 서울 중구 군사망사고위원회 앞에서 의문사 김용권 사건 조사결과에 대한 군사망사고위원회의 발표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창길기자

한씨의 사건은 1984년 한국기독교학생회총연맹, 대한가톨릭대학생 전국협의회, 민주화운동청년연합, 한국기독청년협의회, 명동천주교회청년단체 연합회 등 5개 단체가 녹화공작을 공론화해 세상에 알려졌다. 한씨의 유족은 지난해 6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동료를 밀고하게 하는 녹화공작은 인간성을 말살하는 극도로 비인간적이고 야만적인 ‘사업’이었다. 그런 점에서 녹화공작 대상이 된 이들은 모두가 피해자였다. 그러나 피해자들의 선택이 같지는 않았다. 녹화공작 피해자들은 김 국장을 ‘밀고자’로 의심하고, 한씨를 ‘순교자’로 부른다.

대책위는 “전향과 변절을 거부하는 과정에서 한씨가 총기에 의해 숨졌다”면서 “한씨에게 정보 제공과 프락치를 강요한 군은 핵심 의혹 자료를 아직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의문사와 관련한 존안자료를 공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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