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한 폭염에 노동자들이 스러진다

이효상 기자

연령 높을수록, 야외에서 일할수록 온열질환에 취약…“예방 위한 정부의 노력 절실”

서울에 폭염특보가 발효 중인 4일 서울 시내 한 건설현장에서 한 노동자가 파라솔을 치고 크레인 위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서울에 폭염특보가 발효 중인 4일 서울 시내 한 건설현장에서 한 노동자가 파라솔을 치고 크레인 위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네팔 더워. 더우면 일 안 시켜. 한국은 일 많이 시켜. 한국 더 더워.”

A씨가 숙소의 가스레인지 앞에서 프라이팬에 담긴 돼지고기를 뒤적거리며 말했다. 샤워를 마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A씨의 민소매 티는 벌써 땀에 젖었다. 그가 팔을 휘저을 때마다 떡 벌어진 어깨와 두툼한 상완근이 땀으로 번들거렸다.

올해 서른 살인 A씨는 지난 5월 네팔을 떠나 한국에 왔다. 그가 사는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일대에는 밭작물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 수백동이 늘어서 있다. A씨는 이중 한동의 비닐하우스에서 동료 B씨와 함께 산다. 검은 차광막을 씌웠다는 점만 빼면 이들의 숙소는 외관상 일반 비닐하우스와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안으로 몇 발자국 들어가면 보이는 빨랫줄과 옷가지가 이곳이 사람이 사는 곳임을 말해준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샌드위치 패널로 지은 가건물이 있다. 입구에서 가장 먼 곳에 잠을 자는 방이 있고, 그다음 칸에 주방, 주방 안쪽에 세면실이 있는 구조다. 1평 남짓의 주방은 가스레인지가 뿜어낸 열로 유난히 뜨거웠다. 창문이 있긴 하지만, 창문 너머를 비닐하우스 벽이 막고 있다. 열기가 빠져나갈 틈이 없는, 말 그대로 ‘온실’에서 산다.

■이주노동자에겐 물도, 휴식도 없다

A씨와 B씨는 일터도 온실이다. 이들은 30여동의 비닐하우스에서 배추와 열무를 키우는 농가에 고용돼 일하고 있다. 네팔에서도 농가에서 일했던 A씨는 한국의 여름이 더 힘겹다고 했다. 여름이 더운 것은 네팔이나 한국이나 큰 차이가 없다. 다른 건 일하는 방식이다. 한국의 농가는 아무리 더워도 쉬지 않는다. 보통 오전 6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하는데 쉬는 시간은 12시부터 1시까지 점심시간 1시간뿐이다. 반투명한 비닐로 덮여 열을 잔뜩 머금은 ‘찜통’ 하우스 안에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정부가 매년 여름이면 홍보에 열을 올리는 온열질환 예방수칙은 현장에서는 별 소용이 없다. 고용노동부나 농림축산식품부, 질병관리청 등 대부분의 부처는 폭염주의보·폭염경보가 발효된 경우 물·그늘·휴식 등으로 무더위를 피하라고 권고한다. 작업을 할 경우에는 1시간마다 10~15분가량 그늘에서 쉬고, 시원한 물을 자주 마시라는 등의 내용이다.

A씨에게는 해법이 될 수 없다. 일단 조건부터 맞지 않는다. 폭염주의보와 폭염경보는 일 최고 체감온도가 33도, 35도 이상으로 이틀 이상 유지될 때 발효된다. 특정 지역의 체감온도가 이 기준을 밑돌 때도 하우스 내부의 온도는 이 기준을 훨씬 상회할 가능성이 높다. 2017년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연구를 보면, 기온 33도의 폭염이 발생한 날 오후 2시에 논의 온도는 39.6도, 밭 온도는 40.2도까지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령 폭염특보가 발효된다 해도 하우스가 빼곡한 A씨의 일터 주변에는 이렇다 할 그늘이 없고, 쉴 시간도 주어지지 않는다.

포천에서 하우스 농사를 짓는 한국인 농장주 C씨는 “얼마나 더운지 물어봐 뭐하냐. 온도 높이려고 짓는 하우스가 더운 게 당연하지. 밖이 30도면, 안은 40도”라며 “여기 외국인들은 다 시급제로 일해 휴식을 준다고 해도 본인들이 싫어한다”고 했다.

물이라도 충분히 제공될까. “오늘 물을 얼마나 마셨냐”는 질문에 A씨는 2ℓ들이 생수통을 들어보이며 “2개 먹었어. 안 먹으면 죽어”라고 말했다. 3평 남짓의 A씨 방 한켠에는 물이 가득 차 있는 생수통이 수십개 놓여 있었다. “사장님이 물을 주지 않느냐”고 묻자 A씨는 “물 안 줘. 물 달라고도 했어. 안 준대. 마트에서 26개 사왔어”라고 했다. A씨는 이 농장에서 앞으로 3년은 더 일해야 한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를 운영하는 김달성 목사는 “낮에는 영상 40도가 넘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일하고 밤에는 찜통 같은 불법 가건물 기숙사에서 지낸다. 한국사회가 이들을 말하는 동물로 취급하는 게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환경정책·평가연구원에 따르면 2013년 이주노동자의 온열질환 발생률은 1만명당 13.5건으로 내국인(3.2건)보다 4배가량 높았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선풍기에 의지해 땀을 식힌다. /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쿠팡 물류센터에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선풍기에 의지해 땀을 식힌다. /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쉴 시간 있어도 쉴 곳이 없는 건설현장

더위는 보편적이지 않다. 사무실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며 더위를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A씨처럼 그리 덥지 않은 날씨에도 혹서와 외로운 싸움을 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 질병관리청이 운영하는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 상세 운영결과를 보면, 더위의 불평등한 얼굴이 잘 드러난다. 질병관리청은 매년 5월 20일부터 9월 말까지 전국의 약 500개 응급실로부터 신고를 받아 온열질환자 수를 집계한다. 올해는 지난 8월 16일까지 사망자 7명을 포함해 1427명의 온열질환자가 신고됐다. 환자의 특성을 살펴보면, 연령별로는 65세 이상이 389명(27.3%)으로 가장 많았고, 50대가 310명(21.7%)으로 뒤를 이었다. 직업별로는 단순노무 종사자가 346명(24.2%)으로 가장 많았고, 농림어업 숙련종사자도 127명(8.9%)으로 집계됐다. 반면 전문직·사무직은 각각 37명(2.8%)으로 비중이 적었다.

특히 일터에서 일하다 온열질환에 걸린 경우가 많았다. 실외작업장에서 530명(37.1%), 실내작업장에서 115명(8.1%)의 환자가 신고됐다. 논밭이나 비닐하우스에서 발병한 경우는 각각 207명(14.5%), 21명(1.5%)으로 집계됐다. 연령이 높을수록, 야외에서 일할수록 온열질환에 취약한 셈이다.

건설노동자들은 폭염에 취약한 대표적 직군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7월 28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올해 건설현장에서만 5명이 열사병 의심 사고로 사망했다. 이들의 죽음은 500개 응급실의 자발적 신고로 운영되는 질병관리청 응급실감시체계에는 포착되지 않았다. 어떤 공정을 맡느냐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건설노동자 대부분은 직사광선을 피하지 못하고 일한다. 늘 공기(工期) 압박에 쫓기는데다 장마 때 못한 일을 날씨가 좋을 때 몰아서 하는 경우가 많아 제때 휴식을 취하기도 어렵다.

32년차 형틀목수 임동석씨(57)는 올 초부터 인천 송도의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8월 초 폭우가 쏟아지기 전에는 현장 온도가 35~36도까지 올라가는 날이 많았다. 여름이 오고 이 현장에서만 2명의 작업자가 어지럼증을 호소하다 응급실로 실려갔다. 햇볕도 뜨겁고, 몸도 무겁다. 임씨는 “다리 사이로 안전벨트를 차는데 이것 무게만 해도 상당하다. 형틀목수다 보니까 연장통에, 못주머니까지 차면 20㎏은 나가는 것 같다”며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30년째 이 일을 하고 있지만 여름이 올 때마다 걱정된다. 올여름에만 몸무게가 4㎏ 정도 빠졌다”고 했다.

건설현장에서도 정부의 온열질환 예방수칙은 무용지물이다. 쉴 시간이 있어도 쉴 곳이 없다. 임씨는 “현장에 휴게실이라고는 파라솔 하나 펴놓고 의자 20개 정도 놓은 게 다다. 하루에 200명 정도 나오는데 10명 중 1명이나 쉴까 말까다. 그나마도 현장에서 멀어 한참은 가야 한다. 명분쌓기용 휴게실 아니냐”고 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공사대금 20억원 이상의 건설현장에 휴게실과 화장실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세부적인 사항은 사업자 자율에 맡기고 있다. 최근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건설현장의 편의시설 부족이 노동자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경기도 소재 쿠팡 물류센터에서 근무하는 D씨가 지난 8월 17일 새벽 2시 1분에 측정한 물류센터 내부 온도. / D씨 제공

경기도 소재 쿠팡 물류센터에서 근무하는 D씨가 지난 8월 17일 새벽 2시 1분에 측정한 물류센터 내부 온도. / D씨 제공

■폭염이 만들어지는 쿠팡 물류센터

매년 여름이면 찾아오는 폭염은 이제 상수(常數)가 됐다. 폭염으로 인한 노동자들의 비극이 더 이상 자연재해가 아니라 대책을 찾지 못한 ‘인재’에 가깝다는 뜻이다. 실제 한 사업장에서는 인간에 의해 폭염이 만들어지고 있다. 온라인 커머스를 장악한 쿠팡의 물류센터다.

경기도 소재 쿠팡 물류센터에서 근무하는 D씨는 지난 8월 17일 새벽 2시 한장의 사진을 보내왔다. 그는 회사 몰래 반입한 온도계로 물류센터 내부의 온도를 틈날 때마다 체크했다. 새벽 2시 1분 기준으로 물류센터 내부 온도는 41.8도, 습도는 33%를 가리키고 있었다. 온도계 오작동은 아닐까. 공공운수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는 지난 7월 18일부터 8월 2일까지 동탄물류센터에서 모두 73회에 걸쳐 내부 온도를 측정했다. 온도가 30도 아래로 떨어진 적은 15번에 그쳤고, 평균값은 31.3도에 달했다.

쿠팡의 이상고온은 옥외노동자들이 겪는 폭염과 성격이 다르다. 비가 오거나 해가 저물어도 온도는 떨어지지 않는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4년간 일한 민병조 쿠팡물류센터지회장은 “한 개 층을 3단으로 나눠놓았다. 단마다 진열대가 빼곡히 늘어서 있어 공기가 잘 순환되지 않는다. 열이 빠질 곳이 없으니 새벽이 돼도 온도가 그대로 유지된다. 비가 오는 날에는 습도가 올라가서 완전 습식 사우나 간 것처럼 땀이 흐른다”고 했다. 노조 측은 냉방시설 확충 등 작업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회사 측에 교섭을 요구 중이다. 회사는 그러나 사업장별로 냉방기기를 확충하고 있다며 교섭을 거부하고 있다.

D씨는 “회사 측이 산업용 이동식 에어컨을 몇대 설치했는데 더 안 좋아졌다. 앞으로는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데 뒤에서는 뜨거운 바람이 나와 온도가 더 상승했다”며 “휴게실이 있지만 접근성이 떨어진다. 물류센터가 넓어 하루 20분 쉬는 시간 동안 왔다 갔다 하면 시간 다 까먹는다”고 했다.

지난 7월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던 노동자 3명이 온열질환에 쓰러지자 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을 개정했다. 종전에는 폭염에 직접 노출되는 옥외노동자에게만 ‘적절한 휴식’을 보장하도록 했다면, 개정 규칙은 ‘폭염에 노출되는 장소에서 작업하는 노동자’로 범위를 넓혔다. 하지만 얼마나 쉬어야 적절한 휴식인지 기준이 모호해 사업주 마음대로 휴게시간을 정하는 ‘고무줄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류현철 일환경건강센터 센터장은 “온열질환은 계속 늘어나는데 인간이 기온을 변화시킬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정부가 할 일은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적절히 개입하고 관리하는 것이 돼야 한다. 노동자들이 문제를 제기했다면 정부가 ‘온도를 측정하겠다’, ‘조사하겠다’고 나서야 하는데 예방을 위한 노력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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