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첫날 ‘점심 밥짓기’ 인수인계 받은 새마을금고 직원

유선희 기자

직장 괴롭힘 신고…지점장 “너같은 걸···” 폭언도

새벽 쓰러져 워크숍 불참하자 이사장 사유서 지시

전북 모 새마을금고 “폭언은 사실…대화 노력했어”

전북 남원시의 한 새마을금고에서 일하는 A씨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괴로워하면서 기록한 일기 일부. A씨 제공

전북 남원시의 한 새마을금고에서 일하는 A씨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괴로워하면서 기록한 일기 일부. A씨 제공

2020년 8월 전북 남원시의 한 새마을금고에 입사한 A씨(20대)는 출근 첫 날 ‘밥’을 지었다. 하는 일은 창구 수납 업무였는데 점심시간에 맞춰 쌀을 씻어 밥을 안치는 일을 인수·인계받았다. 담당 과장은 “남자화장실 수건을 빨아서 가지고 오라”고도 지시했다.

A씨는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정중히 거절했다. 담당 과장은 “로마에는 로마의 법이 있다” “시골이니까 네가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회식도 고역이었다. 코로나19 시국에도 이사장과 상무, 지점장(차장)은 늘 “나오라”고 했다. 회식 강행으로 회사는 보건소에서 경고장도 받았다.

A씨는 지점장으로부터 폭언도 들었다. 지난 5월3일 업무 중 A씨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자 지점장은 “나는 니가 X나게 싫다. 이러니 다들 널 싫어한다. 너 같은 걸 누가 좋아하냐”고 막말을 퍼부었다. 윗 상사인 상무에게 알렸지만, 분리조치나 진상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A씨는 지난 5월24일 지점장을 찾아가 직접 사과를 받았다.

A씨는 지난 6월3일 새벽 스트레스로 쓰러졌다. 이날은 회사에서 3박4일 제주도 워크숍을 떠나는 날이었다. 지점장에게 불참 사유를 직접 보고했지만 이사장은 이후 “보고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A씨에게 사유서를 쓰라고 지시했다. 지난 6월7일 이사장과 A씨가 나눈 대화 녹취록을 보면 이사장은 “몸 관리를 못한 것은 본인 탓이다. 직장에 애사심이 없다”고 말했다. A씨는 사유서에 지점장의 폭언 내용도 담았다. 이사장은 “내가 듣고자 하는 건 이게 아니다. 삭제하라”며 “잘못을 뉘우친다고 쓰고, 어떻게 고치겠다, 처벌을 감수하겠다고 쓰라”고 했다.

이사장의 지시로 지난 6월 A씨가 쓴 사유서. A씨가 사유서에 지점장의 폭언를 쓰자 이사장은 삭제를 지시했다. 이사장은 연필로 직접 삭제할 부분을 표시했다. A씨 제공

이사장의 지시로 지난 6월 A씨가 쓴 사유서. A씨가 사유서에 지점장의 폭언를 쓰자 이사장은 삭제를 지시했다. 이사장은 연필로 직접 삭제할 부분을 표시했다. A씨 제공

A씨는 녹취 등 직장 내 괴롭힘 증거를 차곡차곡 모은 뒤 지난 19일 고용노동부 전주지청에 신고하고 국민신문고에도 진정을 넣었다. A씨는 “하도 회사에서 제 탓을 하니 ‘내가 문제인가’ 되뇌었는데, 지점장 폭언 이후 직장갑질119와 전주지청 등에 자문을 구한 뒤 신고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해당 새마을금고 담당 상무는 기자와 통화에서 “지점장의 폭언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시인했다. 이어 “A씨와 (지점장의) 대화 자리를 마련하려고 했는데 지점장이 감정이 격화해 당장에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를 A씨에게도 전달했다”면서 “사무실 직원이 적어 분리조치를 하기 어려웠고, A씨가 다른 직원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않다 보니 일방적으로 그 말을 믿어줄 수는 없어 (지점장에 대한) 징계를 논의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A씨의 워크숍 불참을 보고했는데도 이사장이 사유서 제출을 요구한 것은 “A씨가 회사에 왔는데 이사장에게 직접 보고하지 않아 화가 난 것”이라고 했다.

회사에서 밥을 짓고 회식을 강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매일 밥을 사 먹는 데에 대한 부담이 있고 근처에 먹을 곳도 별로 없다. 밥만 짓고 반찬은 시켜 먹고 있으며 남직원도 밥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면서 “회식이라기보다 한 달에 한번, 두 번 직원회의를 마치고 다 같이 밥을 먹으러 가는 거다. 그런데 A씨가 다른 직원과 어울리지 못하고 자주 빠지니까 술을 먹지 않아도 공동체 생활을 하라는 의미에서 강제로라도 참석하라고 한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19 시국에 회식을 한 것은 “잘못했다”고 인정했다.

지난해 6월24일 제주시 도남동 정부제주지방합동청사 앞에서 ‘새마을금고 직장 내 괴롭힘 사망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열어 “제주의 한 새마을금고에서 27년을 일한 노동자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사망했다”고 주장하며 진상 조사를 촉구했다. 연합뉴스 제공

지난해 6월24일 제주시 도남동 정부제주지방합동청사 앞에서 ‘새마을금고 직장 내 괴롭힘 사망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열어 “제주의 한 새마을금고에서 27년을 일한 노동자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사망했다”고 주장하며 진상 조사를 촉구했다. 연합뉴스 제공

새마을금고의 직장 내 괴롭힘은 반복되고 있다. 지난 6월 인천의 한 새마을금고 이사장이 자신과 임원의 친인척 승진을 우선하고, 직장 내 괴롭힘 신고자는 승진에서 배제하는 등 전횡을 저지르다 적발됐다. 지난 3월에는 대구의 한 새마을금고 이사장이 직원에게 강제추행과 폭행을 한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또 지난해 4월에는 제주의 한 새마을금고에서 27년간 근무하던 직원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행정안전부는 올해 2월 새마을금고의 직장 내 갑질, 성희롱, 부정채용을 엄단하기 위해 ‘새마을금고 감독체계 강화방안’을 마련한다고 밝혔다. 새마을금고 중앙회는 “엄중 관리방침을 표명했음에도 논란이 반복되는 데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저희도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며 “전담창구 신설을 통한 금고 고충 처리부 운영 등 감독기관으로서 더 노력하겠다”고 했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위원장은 “새마을금고의 직장 내 갑질 문제는 계속 사회적으로 폭로되고 정부와 중앙회가 근절 대책을 내세웠음에도 제보가 계속 들어온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전국 새마을금고의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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