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헹 사망 2년, 변한 건 없었다…이주노동단체들 “한국 정부가 건강·주거권 침해” 국가배상소송 제기

조해람·김송이 기자

컨테이너·비닐하우스 등

노동자 주거환경 여전히 열악

노동부의 숙식비 공제 지침

임금 착취에 악용, 철회 주장

“숙소가 불안해서 살 수 없는 건 우리 탓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린 너무 질렸습니다.”

지난 7월13일 캄보디아 출신 여성 이주노동자 A씨는 목욕 중 소스라치게 놀랐다. 패널로 지은 샤워실 벽에 뚫린 구멍으로 누군가 안을 엿보고 있었다.

샤워실을 훔쳐보던 그는 때마침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옆 농장 노동자에게 들키자 급히 도망갔다. 알고 보니 범인은 A씨가 일하는 농장의 사장이었다.

A씨는 “고용센터에 신고하겠다고 하자 사장은 가버리라고 소리쳤다”며 “그 사건 때문에 동료들과 농장을 떠났지만, 추가노동 임금 등은 더 따질 수가 없다”고 했다.

이주노동·인권 관련 단체들이 한국 정부가 이주노동자의 건강권·주거권을 침해한다며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2020년 12월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숨진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속헹의 죽음 이후에도 변한 게 없다는 것이다.

‘이주노동119’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윤미향 무소속 의원은 27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최정규 원곡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속헹의 죽음에서는 (건강보험 미적용 등) 정부와 고용노동부의 책임과 관련된 여러 증거가 확인된다”며 “단지 금전적 배상뿐 아니라 속헹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캄보디아 출신 여성 노동자인 속헹은 2020년 12월20일 난방이 되지 않는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간경화로 인한 식도정맥류 파열이었다.

이주노동·인권 단체들은 열악한 숙소와 추위 때문에 질병이 악화됐다며 업무상 재해를 주장했다.

속헹의 죽음은 사망 494일째인 지난 4월27일에야 업무상 재해로 인정됐다.

최 변호사는 “속헹은 건강보험이 없어 4년 동안 한 번도 병원 진료를 받지 못하다 사망했다. 건강보험 없는 사업장에 속헹을 소개한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대한민국 고용노동부”라고 했다.

이어 “사인이 동사가 아니라 합병증으로 확인되자 한국 정부는 이 죽음을 사회적 죽음이 아닌 개인적 불운으로 넘기려 했다”며 “개인적 죽음이 아닌 산재라는 점이 명백하게 증명됐지만 한국 정부는 그 어떤 유감 표명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속헹의 죽음으로 농업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숙소 문제가 이슈화됐지만, 2년이 지난 지금도 이주노동자의 주거환경은 심각하게 열악하다. 이주노동119가 지난 1년 동안 캄보디아 노동자 344명을 대상으로 상담한 결과, 기숙사 숙소 유형을 밝힌 66명 가운데 절반가량인 30명이 비닐하우스에 살고 있었다.

고용주가 노동자의 숙식비를 임금에서 공제할 수 있도록 하는 고용노동부의 ‘숙식비 징수 지침’이 임금착취에 악용된다고도 했다.

이주노동119의 상담을 진행한 김이찬 지구인의정류장 대표는 “이주노동자 고용주만 불법 가설 숙소를 이용해 임금착취를 한다. 아주 예외적 사안으로, 노동부가 (지침을) 얼른 철회해야 한다”고 했다.

이주노동119는 “현장에는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는 비닐하우스, 샌드위치 패널, 컨테이너, 폐가 등의 기숙사 숙소가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서류상으로는 일반 주택이나 빌라 등에 기숙사를 쓰고 있다고 신고하고 실제로는 농지 옆 비닐하우스 내 기숙사를 쓰게 하는 경우도 많다”며 “기숙사 기준을 대폭 강화하고 임시 가건물 기숙사를 금지하라”고 했다.


Today`s HOT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틸라피아로 육수 만드는 브라질 주민들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이·팔 맞불 시위 불타는 해리포터 성
인도 스리 파르타샤 전차 축제 시위대 향해 페퍼 스프레이 뿌리는 경관들 토네이도로 쑥대밭된 오클라호마 마을 페루 버스 계곡 아래로 추락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