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생 여성 노동자 100명 중 28명이 우울 증상…왜?

박하얀 기자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2017 글로벌 취업박람회에서 해외취업에 도전하는 구직자들이 채용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2017 글로벌 취업박람회에서 해외취업에 도전하는 구직자들이 채용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직을 여섯 번 했는데, 무기계약직과 파견·용역을 오갔다. 한 곳을 빼고는 모두 3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이었고 150만원 미만의 월급을 받았다. 대부분 6개월이 되기 전 퇴사했다. 해고됐고, 계약 기간이 끝났고, 수습·인턴 기간 만료 후 채용되지 않았고, 권고사직됐다. 먼저 사표를 낸 적도 있지만, 직장 내 괴롭힘 피해 때문이었다. 취업과 이직을 반복하며 심신이 피폐해졌다. 사는 내내 경제적으로 힘들었다. 금전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 몸이 아플 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우울할 때 연락할 수 있는 사람, 여가를 함께 할 사람 모두 없다.”(1990년생 여성 A씨·고졸·서울 거주)

“이직을 세 번 했다. 마지막 직장에서 상사의 부당한 지시가 있었고, 휴가·휴직 사용이 자유롭지 않았으며 고용 안정성도 낮았다. 특히 성추행·성폭력 등 직장 내 성적 괴롭힘 문화가 심했다. 취업 준비를 많이 했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마음 건강이 나빠졌다. 내 미래는 밝지 않다고 생각한다. 죽을 만큼 가난하지 않은 이상 정부는 지원해주지 않는다.”(93년생 여성 B씨·대졸·경기 거주)

1990년대생 여성 노동자 100명 중 28명꼴로 우울 증상을 겪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불안정한 노동 환경과 직장 내 성폭력, 불합리한 채용 등 성차별 구조가 원인으로 분석됐다.

한국여성노동자회는 13일 ‘90년대생 여성 노동자의 노동 실태가 우울에 미치는 영향’ 토론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설문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8월30일부터 9월24일까지 1990~99년생 여성 4632명을 온라인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이다.

우울 증상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 응답자는 1319명(28.5%)이었다. 우울 정도를 자가진단하는 척도인 CES-D 점수가 16점 이상이면 ‘증상이 있다’로 분류된다. 심각한 정도별로는 ‘경증 우울’(16~20점)이 14.2%, ‘중등도 우울’(21~24점) 6.7%였으며 가장 심각한 ‘중증 우울’(25점 이상)도 7.6%에 달했다.

한국여성노동자회가 13일 유튜브 생중계로 진행한 토론회 ‘90년대생 여성 노동자의 우울’ 웹자보. 한국여성노동자회 제공

한국여성노동자회가 13일 유튜브 생중계로 진행한 토론회 ‘90년대생 여성 노동자의 우울’ 웹자보. 한국여성노동자회 제공

현재 일자리 여부, 일자리의 안정성, 비자발적 퇴사 경험 등이 특히 우울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분석됐다.

‘현재 일하고 있다’고 답한 이들 중 우울 정도가 정상 범주로 분류된 응답자는 2756명(74.2%)이었고, 중증 우울 정도는 230명(6.2%)에 그쳤다. 반면 ‘일한 적 있지만 현재는 하고 있지 않다’고 답한 이들의 중증 우울 정도 비율은 13.9%였다. ‘현재 일하고 있다’고 답한 이들 중 ‘중증 우울’이 차지하는 비율(6.2%)의 2배가 넘는다.

‘비자발적 퇴사 경험이 없다’고 응답한 집단의 정상 범주 비율은 ‘퇴사 경험이 있다’는 집단보다 높게 나타났다. 해고 또는 수습·인턴 기간 만료 후 채용되지 않은 경험이 있는 집단의 우울 정상 범주 비율은 이 같은 경험이 없는 집단보다 15%포인트가량 낮았다. 이직 경험이 없는 집단의 우울 정상 범주 비율은 이직 경험이 있는 이들에 비해 5.5%포인트 높았다.

홍단비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은 “일했던 경험이 있으나 현재 실업 상태인 청년 여성 노동자의 우울 수준이 높은 이유는 또 다시 그런 일자리에 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어느 일자리를 얻더라도 상황이 비슷할 것이라는 예측 등이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구조적인 문제들이 퇴사나 이직 등 개인화된 방식으로, 자기책임론으로 귀결되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했다.

실태조사 후속연구를 진행한 박선영 중앙대 중앙사회학연구소 연구원은 “절대빈곤 수준 이하를 충족해야 지원받을 수 있는 잔여적 관점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삶을 보장하는 정부 정책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며 “성차별적 괴롭힘을 직장 내 괴롭힘에 포괄하고 규제 시스템 및 처벌 수위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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