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인!” 대학가 ‘신흥 놀이’ 홀덤펍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김나연 기자

“건전한 게임문화” vs “도박 접근성 높아져”

전문가들 “우려 불식 위해 사각지대 보완해야”

지난 20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의 한 홀덤펍에서 이용객들이 홀덤 게임을 하고 있다. 김나연 기자

지난 20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의 한 홀덤펍에서 이용객들이 홀덤 게임을 하고 있다. 김나연 기자

지난 20일 오후 8시10분 서울 성북구 안암동에 있는 한 상가 건물 1층. 가게 통유리 너머로는 사뭇 심각하고 진지한 얼굴을 한 남성 10여명이 눈에 띄었다. 카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주점, 이른바 ‘홀덤펍’ 테이블에는 고려대 ‘과잠(학과 점퍼)’를 입고 홀덤 게임을 하고 있는 사람이 3명가량 보였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보니 ‘영업장 내의 도박 행위 적발 시 고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적혀 있는 유의사항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콜!” “올인!”이라는 외침이 테이블마다 들려왔다. 잠시 뒤 출입문이 열리고 5명의 손님이 우르르 들어왔다. 이미 게임을 즐기던 이들과 구면인듯 자연스럽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1인당 2만원씩 선결제를 한 뒤 음료와 칩을 받아들고 구석 자리에 있는 룰렛 테이블로 향했다. 이어 남녀 커플이 가게로 들어섰다. 직원이 달려가 말했다. “어서 오세요. 처음 오셨어요? 룰을 설명해드릴게요. 그냥 편하게 하시면 돼요.”

비슷한 시각 서울 서대문구 신촌 대학가에도 비슷한 풍경이 펼쳐졌다. 지하철 신촌역 1번 출구 인근에 있는 한 홀덤펍은 대기줄이 생길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가게에 놓인 3개의 테이블마다 10명씩 모여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과잠을 입은 대학생부터 넥타이를 맨 중년층까지 이용객 연령대도 다양했다. 이 가게 ‘오픈카톡방’에는 4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가입해 있다. 신촌역 주변에는 해당 업장 외에도 합법 홀덤펍이 4개 더 있다고 한다.

지난 20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한 홀덤펍에서 이용객들이 게임을 즐기는 모습이 통유리 너머로 보인다. 김나연 기자

지난 20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한 홀덤펍에서 이용객들이 게임을 즐기는 모습이 통유리 너머로 보인다. 김나연 기자

사행성 유흥시설로 여겨져온 홀덤펍이 최근 대학가의 ‘신흥 놀이’로 부상하고 있다. 단체로 즐길 수 있는 게임 문화라는 평과 중독성이 강한 도박에 대한 접근성을 높인다는 우려가 상존한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가 모호해 규제 사각지대에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홀덤펍은 돈을 걸지 않으면 합법이다. 통상 일반음식점으로 신고해 운영된다. 자유업이나 보드 카페로 분류된 곳도 있다. 코로나19 확산 당시에는 방역당국이 홀덤펍을 집합금지 대상에 포함시켰다. 지난 4월까지 홀덤펍에 영업제한이 적용됐고, 6월 들어 24시간 영업 제한이 풀렸다. 업계에 따르면 전국에 2000여개의 홀덤펍이 운영되고 있다.

대학가에서 유행하는 홀덤펍은 ‘밝고 건전한 문화’를 표방한다. 가게 전면을 통유리로 꾸민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지난 2월에는 대학생 홀덤 연합동아리가 결성됐고, 5월에는 제1회 전국 대학생 아마추어 스포츠 홀덤 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서울 지역 대학가에 홀덤펍 4개를 연 이도경씨(43)는 “누구나 건전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함으로써 문화의 일환으로 ‘홀덤’을 알리고 싶다”고 했다.

20일 서울시 마포구 신촌역 인근 건물 1층에서 홀덤펍이 영업 중이다. 김나연 기자

20일 서울시 마포구 신촌역 인근 건물 1층에서 홀덤펍이 영업 중이다. 김나연 기자

홀덤펍 이용객들도 대부분은 가볍게 스포츠나 게임을 즐기는 듯한 분위기였다. 대학생 김승원씨(23)는 “펍 안에서 불법 행위가 있으면 단속을 해야겠지만 오로지 스포츠로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다”고 했다. 지난 6월 친구 생일파티에서 홀덤 게임을 처음 접한 뒤 이곳을 자주 찾는 김모씨(24)도 “여기를 이용하면서 카지노가 궁금해진 적은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도박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대학생 박모씨(24)는 “홀덤 자체는 건전하지만 이런 게임 방식에 중독되면 ‘현금을 써보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들 것 같다”고 했다. 카카오톡이나 텔레그램 등을 통해 홀덤펍 밖에서 상품을 현금으로 바꾸는 행위도 엄연히 존재한다. 박씨는 “귀한 홀덤 티켓을 1000만원 넘는 값에 암거래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주민들 역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대학가인 서울 안암동에서 50년을 살았다는 김모씨(72)는 “딱 봐도 도박하는 것 같은데, 돈 넣고 돈 먹는 거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한 홀덤펍 관계자는 “내부자가 (적어둔) 자료가 있거나 현금을 교환하는 현장이 포착되지 않는 이상 도박죄를 피해간다”고 했다.

김영호 을지대 중독재활학과 교수는 “업장에 사행성 게임에 대한 경고문이나 도박 상담센터 연락처를 의무적으로 붙이는 등 시민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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