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감 2022

여가부, ‘버터나이프’ 후속사업 계획도 없이 예산편성 먼저했다

조해람 기자

구체적 계획·의견수렴 없이 사업 얼개만

활동가들 “젠더·성평등 일방적으로 지워”

새 사업 졸속 추진에 기존사업 해지 못해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 박민규 선임기자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 박민규 선임기자

“페미니즘에 경도됐다”는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의 한마디에 한창 진행 중이던 청년 성평등 사업(버터나이프크루)을 전면 폐지한 여성가족부가, 그 후속 사업을 제대로 된 사업계획서도 없이 ‘졸속’으로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여가부는 구체적인 계획 수립이나 의견 수렴 없이 사업의 얼개만 만들어 예산부터 편성했다. 여가부가 윤석열 정부의 ‘여가부 때리기’에 중심을 잡기는커녕, 정권 실세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의 메시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여가부는 지난 7월 청년 성평등 문화 추진단 ‘버터나이프크루’ 사업을 전면 취소하고, 새 청년 대상 성평등 사업으로 ‘지역 청년 공감대 제고 사업(청년공감대 사업)’을 신설했다. 청년공감대 사업은 현재 여가부의 유일한 청년 대상 성평등 사업이며, 예산도 약 4억원으로 버터나이프크루 사업 예산 4억5000만원과 거의 같다. 여가부는 지난 8월30일 발표한 2023년도 예산안에 이 사업을 포함했지만 자세한 내용은 소개하지 않았다.

버터나이프크루는 청년들이 성평등 의제를 직접 발굴하고 콘텐츠 제작 등 인식개선에 나서도록 하는 사업이다. 여가부는 올해 4기 사업에 참여할 팀을 선정해 지난 6월30일 출범식까지 마쳤다. 그러나 당시 국민의힘 대표 직무대행이자 원내대표였던 권 의원의 ‘한마디’에 뒤집혔다. 권 의원은 지난 7월4일 페이스북에 버터나이프크루 사업을 두고 “지원 대상이 페미니즘에 경도됐다”며 “김현숙 여가부 장관과 통화해 해당 사업의 문제점을 전달했다”고 했다. 여가부는 바로 다음 날인 7월5일 버터나이프크루 사업 전면 재검토를 발표했다.

계획 없이 일단 사업부터, 의견은 나중에?

여가부는 새 청년공감대 사업을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밀어붙인 것으로 드러났다. 경향신문이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청년공감대 사업의 사업계획서는 A4 1장 분량에 불과했다. 여가부는 사업 추진 배경을 “청년 간 젠더 인식격차가 증폭되고 있다”며 “이를 완화하기 위해 청년 간 상호 이해 및 공감대를 형성하고, 청년이 정책 개선에 참여하는 계기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지역 양성평등센터를 기반으로 일자리, 1인 가구, 안전 등의 주제로 청년 간 소통 기회(토론회 등)를 마련하고 정책 모니터링단을 운영한다”고 했다.

김현숙 여가부 장관이 지난 6월30일 버터나이프 크루 4기 출범식에 참여해 발언하고 있다. 버터나이프크루정상화공동대책위 제공

김현숙 여가부 장관이 지난 6월30일 버터나이프 크루 4기 출범식에 참여해 발언하고 있다. 버터나이프크루정상화공동대책위 제공

그러나 간담회·토론회를 언제 어떻게 진행할지, 모니터링단은 몇 명으로 구성해 언제 출범하는지 등 계획은 일절 없었다. 유 의원실이 구체적인 계획 여부를 질의하자 여가부는 “앞으로 전문가 간담회와 현장 간담회를 진행하면서 11월 안에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여가부 스스로도 구체적인 계획 없이 예산부터 편성했다고 시인한 것이다. 여가부는 유 의원실에 “사업 계획 수립을 위해 9월 말 전문가 간담회, 10월 양성평등센터 센터장·담당자 간담회를 계획 중”이라고 답했지만 실제로 진행된 건 10월11일 전문가 간담회뿐이었다.

10월11일 간담회에서 나온 아이디어들도 기존 버터나이프크루 사업의 프로그램들과 큰 차이점이 없었다. 간담회에서 전문가들은 “연속적이고 지속적인 활동이 되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며 “공론장, 전시회, 강연, 소셜다이닝 등 다양한 프로젝트 활동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소셜다이닝은 여러 사람이 공유주방을 빌려 요리를 하고 함께 식사하는 것으로 버터나이프크루 프로그램에도 포함돼 있었다. 권성동 의원은 지난 8월13일 페이스북에 “(버터나이프크루엔)공유주방에서 밥먹고 성평등 대화하기 등이 있다”며 “밥 먹고 토론하고 노는 건 자기 돈으로 하면 된다”고 한 바 있다. 유 의원은 “버터나이프크루 때는 국민의 혈세를 좀 먹는 아이디어였던 소셜다이닝이 이제 와 청년 정책 차별화 아이디어라니 참 아이러니하다”고 했다.

한국여성의전화 등 전국 180 개 여성·시민·노동·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 15일 서울 종각 인근에서 윤석열 정부의 여성가족부 폐지안을 규탄하는 “성평등 민주주의 후퇴 우리가 막는다” 집회도중 윤석열 대통령과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을 풍자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한국여성의전화 등 전국 180 개 여성·시민·노동·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 15일 서울 종각 인근에서 윤석열 정부의 여성가족부 폐지안을 규탄하는 “성평등 민주주의 후퇴 우리가 막는다” 집회도중 윤석열 대통령과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을 풍자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여가부는 이처럼 졸속으로 사업을 추진하면서도 사업 방향에서는 전형적인 ‘이대남(20대 남성)’ 논리를 답습했다. 여가부는 유 의원실에 제출한 청년공감대 사업계획에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불평등하다는 인식이 20·30대 여성은 70% 이상이었으나, 30대 남성은 40.7%, 20대 남성은 31.5%가 동의했다”고 명시했다. 사업이 다루는 주제 역시 안전, 1인가구, 취업 등 ‘성평등’과는 거리가 먼 주제들이었다. 권 의원의 “페미니즘 경도” 발언이나 이 정부의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인식에 적극 호응한 것이다. 여가부가 최근 사업에서 ‘성평등’이라는 단어 대신 ‘양성평등’을 사용하는 등 젠더 관련 언급을 피하려는 흐름과도 다르지 않다.

버터나이프크루 사업 운영주체였던 사회적협동조합 ‘빠띠’의 박효경 활동가는 “여가부에서 버터나이프크루 사업 내용 변경을 얘기할 때도 젠더갈등 이런 쪽은 빼고 청년들 대상으로만 하는 사업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며 “함께 조정하고 같이 대안을 찾는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젠더나 성평등을 지워버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더 나아가 정부가 청년들과 성평등 문제를 같이 풀어가거나, 우리 사회의 성평등 문제를 풀어갈 의지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너무 급했나···버터나이프 계약해지도 못해

여가부는 새 사업을 너무 급하게 추진한 탓에 기존 버터나이프크루 운영주체인 ‘빠띠’와 계약 해지조차 마무리짓지 못했다. 여가부는 지난 7월28일 빠띠 측에 구두로 사업 중단을 통보한 뒤 아직 공식 문서를 보내지 않았다. 빠띠는 사업 중단에 관한 여가부의 공식 문서를 요청 중이고, 여가부는 빠띠 측에 ‘계약 해지 합의서’를 먼저 보내달라고 하고 있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조직 개편방안 세부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김창길기자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조직 개편방안 세부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김창길기자

행정규칙인 ‘국가용역계약일반조건’에 따르면 계약 담당 공무원은 계약해지 시 그 사실을 즉시 계약상대자에게 통지해야 하며, 이는 구두가 아니라 문서로 보완돼야 효력이 있다. 그러나 여가부는 ‘계약 중단과 관련된 모든 수발신 문서를 달라’는 유 의원실의 요청에 “전부 통화로 진행하고 있어 문서가 없다”고 답했다.

여가부가 버터나이프크루 사업 중단의 귀책을 빠띠 측에 미루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나온다. 계약 해지 관련 문서를 빠띠로부터 ‘먼저’ 받으면 여가부는 계약 해지 책임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유 의원은 “여가부의 귀책으로 사업이 중단됐는데 왜 자꾸 빠띠 측에 부담을 실으려고 하나”라며 “빠띠도 버터나이프크루도 우리 국민인데,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도록 머리를 싸매도 모자랄 판에 여가부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여가부 관계자는 “계약해지에 관해서는 빠띠 측이 요청한 사항을 종합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했다.

유 의원은 “버터나이프크루 사업 중단 때에도 윤석열 정부가 지지율 대폭락을 만회하기 위해 벌린 정치적 쇼라는 비판이 많았다”며 “청년 성평등 사업 공백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무작정 사업을 중단시킨 여가부가 후속 사업에서도 안일하고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충분히 고민한 사업이 맞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Today`s HOT
휴전 수용 소식에 박수 치는 로잔대 학생들 침수된 아레나 두 그레미우 경기장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해리슨 튤립 축제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