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태원 핼러윈 참사

첫 신고 이후 30분 지났는데···구조요청에 112 상황실 “무슨 일이신데요”

윤기은 기자
지난 2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 생존자인 김모씨(28)가 서울 용산경찰서 앞에서 참사 당일 통화기록을 보이고 있다. 윤기은 기자

지난 2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 생존자인 김모씨(28)가 서울 용산경찰서 앞에서 참사 당일 통화기록을 보이고 있다. 윤기은 기자

112 신고를 받는 경찰 상황실이 소방에 이태원 압사 관련 첫 신고가 들어온 지 30분이 지난 시간까지도 사태 파악을 전혀 못했던 정황이 드러났다. 한 신고자가 사고 현장에 갇혀 112에 구조요청을 하자 “무슨 일이신데요, 이따 다시 전화드릴게요”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소방과 경찰 사이에 사고 상황이 제대로 공유되지 않은 것이다.

지난 2일 서울 용산경찰서에 만난 ‘이태원 핼러윈 참사’ 생존자 김모씨(28)는 기자에게 통화목록을 보여주며 참사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지난달 29일 10시쯤부터 아내와 골목에 갇힌 김씨는 발 아래부터 가슴 부위까지 주변 사람들로부터 눌린 채 한 손에 휴대전화를 쥐고 있었다. 김씨는 “손을 뺄수 없을 정도로 꽉 눌려 있었다”며 “주변 사람들이 물을 뿌리자 마찰력이 낮아져 휴대전화를 잡고 있던 손을 위쪽으로 빼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오후 10시38분, 김씨는 휴대전화를 쓸 수 있게 되자마자 119에 먼저 구조해달라는 신고를 했다.

그로부터 1분 뒤인 오후 10시39분, 김씨는 모친에게 전화해 “엄마 내가 이제 죽을 것 같은데, 여기 주변 사람들도 너무 많이 기절하고 죽어가는 것 같고, 나도 곧 죽을 것 같아. 나 좀 살려줘.”라고 말한 뒤 끊었다.

김씨의 스마트워치에 남은 통화목록을 보면 김씨는 당일 오후 10시41분 곧바로 112에 전화했다. 김씨에 따르면 전화를 받은 경찰은 “무슨 일이신데요. 건물 뭐가 보이세요?”라고 물었고, 김씨는 눈 앞에 보이는 간판 상호명을 알려줬다. 그랬더니 경찰은 “또 다른 건물은 안 보이세요?” 물었고, 김씨는 “안 보인다. 모르겠다. 여기는 뭐가 뭔지 모르겠고 그냥 빨리 와주세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경찰이 “이따 다시 전화드릴게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김씨는 “경찰은 사태 파악도 안 된 것 같았고 너무 안일한 태도로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김씨가 112에 전화한 시간은 소방이 압사와 관련한 첫 신고(10시15분)를 받은 지 26분 뒤였다. 그런데도 112 상황실은 상황 파악을 전혀 못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 전에도 경찰은 당일 오후 6시34분부터 소방에 첫 신고가 접수되기 전까지 압사를 우려하는 다급한 신고를 11건 이상 받은 터였다.

경찰과 통화를 마친 김씨는 모친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김씨는 모친과 통화에서 “사람들이 갇혀 있으니까 ‘이태원에 소방차 좀 불러달라’ 신고를 해달라”고 했다.

김씨는 모친과 통화를 마친 후 경찰한테 전화가 오고 있는 것을 확인했으나 인파에 밀려 휴대전화를 놓치고 말았다. 김씨는 당시 분실한 자신의 휴대전화를 이날 용산서에서 찾아갔다.

김씨는 아내와 함께 자정 넘어 구조됐고, 부부는 맨발로 인근 한강변까지 걸어가 모친의 차를 타고 귀가했다. 김씨는 참사 이후 ‘이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수많은 사람이 쓰러져 인공호흡을 받던 장면이 머릿속에 남아 용산서를 찾은 이날도 회사에 갈 수 없었다고 했다. 아내와는 축제나 수영장 등 사람 많은 곳에 다시는 가지 말자고 약속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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