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분쟁은 늘어나는데 왜 의료계약은 법의 보호를 못 받을까

김태훈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민법이 규정하는 계약의 종류는 15가지다. 증여, 매매, 임대차, 고용 등이 포함된 이 15가지 전형계약에 의료(진료)계약은 들어가지 않는다. 늘어나는 의료분쟁에서 환자가 인과관계 등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을 덜기 위해 환자와 의사가 맺는 의료계약도 민법이 규정하는 계약으로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다만 진료·수술 등 의료서비스 전반에서 의사의 방어적인 태도를 부르는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9일 대한변호사협회(변협)와 국회 인재근·오기형·양정숙 의원실이 공동으로 개최한 ‘진료계약의 민법 편입 개정을 위한 심포지엄’에서는 의료계약이 비전형계약으로 남아 있어 계약 당사자의 권리와 의무 등이 조항으로 명문화되지 못한 한계가 지적됐다. 가장 최근인 2015년 여행계약이 민법 전형계약에 15번째로 포함됐고, 법무부가 ‘디지털제품 제공 계약’을 전형계약의 하나로 새롭게 포함시킨 민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는 등 일상에서 접하는 다양한 계약관계가 민법의 테두리 안에 들어가는 추세다. 그럼에도 환자와 의사 간의 진료 요청과 치료행위를 통해 성립하는 의료계약은 전형계약에서 제외된 현실 탓에 특히 환자의 입증 책임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 줄곧 제기돼 왔다.

발제를 맡은 변협 진료계약 태스크포스(TF) 위원장 박호균 변호사는 의료계약이 체결되는 빈도가 잦고,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특수성이 있으므로 법적인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변호사는 “환자 측에 과실을 증명해야 하는 부담이 가중되고 있으며 재판에서도 의료분야 비전문가인 법관의 재량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의료계약을 민법의 전형계약으로 도입해 의료 제공자의 주의 의무는 명확히 규정하고 환자의 증명책임을 완화하면 문제를 상당 부분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진료비 심사 건수는 13억6000만건에 달했다. 비급여 진료까지 포함하면 연간 의료계약 건수는 일상적으로 흔히 접하는 근로계약 등과 비슷하다. 하지만 민법은 물론 특별법까지 촘촘하게 적용받는 근로계약과 달리 의료계약은 이러한 법적 규제에서 다소 비껴서 있는 셈이다. 2013년부터 의료계약을 민법의 전형계약으로 규정한 독일에서도 심각한 의료사고로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환자의 증명 부담을 덜어줘 법적 안정성을 높였다고 박 변호사는 말했다.

반면 의료계약을 민법 전형계약 중 하나인 위임계약으로 볼 수 있어 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추가로 규제를 가할 경우 의사의 의료행위가 위축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기영 경희대 공공대학원 교수는 “병원의 일상은 이미 법적으로 규범화돼 있어 추가적인 법적 분쟁은 환자와 의사 간 신뢰관계를 위협한다”며 “미국에서 과중한 의료책임의 결과 ‘방어적 의료’ 문제가 나타난 것처럼 의사가 소극적 태도를 보이게 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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