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에 목숨 잃은 게 2년 전인데···여전히 컨테이너에 사는 이주노동자

유선희 기자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A씨가 사는 집. 제대로 된 대문이 없고 문틈도 벌어져 있다. 유선희 기자 사진 크게보기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A씨가 사는 집. 제대로 된 대문이 없고 문틈도 벌어져 있다. 유선희 기자

2020년 12월20일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속헹씨가 경기 포천에 있는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잠을 자다 목숨을 잃었다. 한파 경보가 내렸을 만큼 몹시 추운 날이었다.

고용노동부는 이듬해인 2021년 1월 농·어업 분야 이주노동자 주거시설 개선 대책을 발표했다. 컨테이너, 조립식 패널,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 등의 시설을 숙소로 제공하는 경우 신규 고용허가를 불허하는 것이 골자였다. 현장 점검을 통해 열악한 주거시설을 관리·감독하고, 기존에 불법 가설건축물에 거주 중인 이주노동자가 희망하면 사업장 변경도 허용하기로 했다.

속헹씨 사망 2주기를 맞은 지난 20일 경향신문은 윤미향 무소속 의원실, 김달성 목사 도움을 받아 경기 포천시 일대 이주노동자들을 만났다. 주거 조건은 여전히 열악했다. 정부는 업종별 구인난 해소를 위한 맞춤형 지원방안을 마련하겠다면서 외국인력(E-9,단순노무·비전문취업) 신속도입을 추진하고 규모를 늘리고 있는데, 거주시설 개선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A씨가 전기히터를 틀어놓고 설거지를 하는 모습. 유선희 기자

A씨가 전기히터를 틀어놓고 설거지를 하는 모습. 유선희 기자

“숙소 좀 개선해 주면 좋겠어요. 너무 춥고 화장실을 가려면 밖으로 나가야 하는 것도 불편합니다. 거주 문제를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요.”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A씨(23)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A씨는 고용허가제 E-9 비자로 들어와 3년째 경기 포천시의 한 농장에서 채소 수확 일을 하고 있다. 한 달에 나흘 휴식하는 것으로 근로계약을 맺었지만, 실제론 이틀밖에 못 쉰다. 월급제인데도 일이 없으면 급여가 깎인다. 가장 힘든 건 매서운 한파를 견디는 일이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 A씨는 벌어진 문틈 사이로 쪼그리고 앉아 설거지하고 있었다. 찬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탓에 바로 옆에는 전기히터가 ‘강’으로 틀어져 있었다. A씨 숙소는 대문마저 제대로 닫히지 않았다. 내부는 조립식 패널로, 대문은 철제 테두리를 비닐로 칭칭 감아 만들었다.

A씨는 “숙소를 개선해달라고 사업주한테 이야기했지만 소용이 없었다”며 “화장실은 바깥으로 나가야 해 밤에는 주로 참는다”고 말했다. 추위를 조금이나마 막기 위해 창문에 신문지를 몇 겹 덕지덕지 붙여놨다. 숙소 내부에는 전기히터를 두 대나 돌리고 있었다. 녹이 슬고 색이 바랜 벽걸이 에어컨도 눈에 띄었다. A씨는 “이전에 살던 분이 설치해놨는데 지금은 작동이 안 된다”고 했다.

E-9 비자로 올해 3월 한국에 온 베트남 이주노동자 2명은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에서 같이 살고 있었다. 역시나 화장실은 없었다. B씨(30)는 “씻을 곳은 있는데 아침, 점심으로는 찬물만 나온다”고 했다. 그곳은 수도꼭지와 대야가 전부였다. 컨테이너 방 하나에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7명이 사는 곳도 있었다.

베트남 이주노동자 B씨 일행이 사는 숙소의 세면장. 유선희 기자 사진 크게보기

베트남 이주노동자 B씨 일행이 사는 숙소의 세면장. 유선희 기자

정부가 지난해 1월 발표한 이주노동자 주거시설 개선대책에 따르면 사업주는 컨테이너나 조립식 패널,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 시설 등을 숙소로 제공해선 안 된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은 여전히 불법 건축물에 살고 있었다.

주거환경은 개선된 것이 없어 보이는데 이주노동자는 계속 늘어난다. 노동부는 업종별로 구인난 해소를 위한 맞춤형 지원방안을 마련하겠다면서 E-9 신속도입을 추진 중이다. 올해에만 8만4000명이 들어왔고 내년에는 11만명에게 비자를 내 줄 예정이다. 고용허가제 도입 이후 가장 큰 규모다. E-9 비자를 통해 이주노동자는 계속 늘어나는데 거주시설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국내 E-9 이주노동자는 지난 21일 기준 26만4000명이다. 외국인력 담당 노동부 지방관서 현장인력은 200명이다. 1인당 1320명을 담당하는 셈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행정적인 인력 한계 때문에 일일이 거주시설을 조사할 수는 없다”면서 “다만 매년 3000개소 사업장에 대해 지도 점검하고 있고, 농어촌 부분에서 문제가 되고 있어 200개소에 대해선 지난달부터 특별점검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 E-9 이주노동자들이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것은 사실로, 점검 보완에 대해 고민할 필요는 있다”며 “사업주에게 시설에 대한 사진 등을 제출하도록 하고, 일부 시설에는 특별점검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윤미향 의원은 “이번 현장점검 결과 근로기준법 및 시행령에서 규정하고 있는 최소한의 숙소 기준도 준수하지 않은 사업장을 확인했다”며 “정부의 관리감독 강화가 시급하고, 농촌 현장에 맞는 숙소기준 개선방향 등 중장기적으로 제도개선 대안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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