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눈치에 비동의 강간죄 추진 번복한 여가부…여성계 반발

조해람 기자
경향신문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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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가 ‘비동의 강간죄’를 추진하겠다고 했다가 정부·여당의 반대에 9시간 만에 발뺌한 일을 두고 여성계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정권 실세의 ‘한 마디’를 추종하느라 성폭력 피해자들의 권익은 뒷전이라는 것이다. 양성평등위원회의 심의까지 거친 정책을 하루아침에 부정한 데도 비판이 나온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222개 단체가 소속된 ‘강간죄개정을위한연대회의’는 27일 성명을 내 “비동의 강간죄는 일상권력과 성폭력을 해소하기 위해 세계가 가고 있는 체계”라며 “성평등한 삶, 가족, 관계, 폭력으로부터의 자유와 안전, 성과 재생산의 평등한 실현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는 시민들에게 이 정부는 지극한 방해물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여가부는 지난 26일 양성평등위원회가 심의·의결한 제3차 양성평등기본계획을 발표하며 형법상 강간죄의 성립요건을 ‘동의 여부’로 바꾸는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강간죄 성립 요건은 ‘폭행·협박 수반’인데, 실제 성폭력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그러나 여가부 발표 직후 법무부는 “법률 개정 계획이 없고 (여가부에) 반대 취지의 ‘신중 검토’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고 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도 페이스북에 “비동의 간음죄(비동의 강간죄) 도입에 반대한다”며 “윤석열 정부가 여가부 폐지를 공약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했다.

여가부는 발표 9시간 만인 오후 7시53분 출입기자단에 문자를 보내 “2015년 제1차 양성평등기본계획부터 포함돼 온 과제”라면서도 “윤석열 정부에서 새로 검토되거나 추진되는 계획이 아니며 정부는 개정 계획이 없다”고 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 연합뉴스 사진 크게보기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 연합뉴스

연대회의는 “그간의 강간죄는 사실상 강간죄를 피해자의 저항유무를 심문하는 죄로 만들었고, 이에 대한 비판은 오래된 법적 상식”이라며 “시민들의 삶의 변화를 가로막고 있는 정부와 여당이 개탄스럽다”고 했다. 법무부와 권 의원을 향해서는 “오만과 권한남용이 법치를 넘고 있다”고 했다.

비동의강간죄를 대표발의한 류호정 정의당 의원도 “비동의강간죄를 도입하면 무고한 남성의 인생을 망치는 ‘꽃뱀’이 늘어난다는 판타지와, 그 판타지를 믿는 일부 남성들의 키보드를 대변하는 정치인이 존재한다”며 “현행 강간죄가 얼마나 많은 여성을 좌절케 하고, 얼마나 많은 피해자를 죽음으로 내모는지 한 번만 생각해보라”고 했다.

여가부가 권 의원 등 ‘정권 실세’의 말 한 마디에 정책을 뒤엎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7월 여가부는 청년들이 성평등 의제를 직접 발굴하는 인식개선사업 ‘버터나이프크루’를 전면 폐지했다. 당시 버터나이프크루는 4기까지 진행됐고 김현숙 장관이 출범식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권 의원이 페이스북에 “지원 대상이 페미니즘에 경도됐다”고 말한 바로 다음 날 여가부는 “사업을 전면 재검토한다”며 사업을 끝냈다. 버터나이프크루가 중단된 뒤 여가부는 이를 대체할 후속 사업을 구체적인 사업계획도 없이 졸속으로 급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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