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벽’에 막힌 추모 행렬···통곡의 이태원 참사 100일 추모제

김송이 기자
이태원 참사 발생 100일을 하루 앞둔 4일 서울광장에 설치된 시민분향소에서 한 시민이 영정 앞에 추모 꽃을 놓고 있다. 성동훈 기자 사진 크게보기

이태원 참사 발생 100일을 하루 앞둔 4일 서울광장에 설치된 시민분향소에서 한 시민이 영정 앞에 추모 꽃을 놓고 있다. 성동훈 기자

“시민과 함께 추모하겠단 게 어떻게 불법이 됩니까.”

‘이태원 핼러윈 참사’ 발생 100일을 하루 앞둔 지난 4일,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100일 추모대회를 진행하며 서울 중구 시청앞 서울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대치 상황이 벌어졌다.

유가족 150여명과 추모대회 참가자들은 이날 오전 11시부터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분향소에서 서울광장까지 5㎞ 가량을 행진했다. 오후 1시 10분쯤 약 2000여명으로 늘어난 행진 대열이 서울광장에 도착하자 시민대책회의는 서울도서관 정문 왼쪽에 분향소를 예고 없이 설치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애초 광화문광장에서 추모대회를 열려고 했으나 서울시의 불허로 장소를 세종대로로 옮겼다.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내 분향소 설치를 불허하고, 경찰에 “불법 천막 등 설치를 저지해달라”는 시설 보호 요청을 했다. 경찰은 광화문광장에 차벽을 치고 이들의 진입을 막았다.

시민대책회의 관계자는 “서울시가 광장을 막고 광화문으로 나오는 분향소를 막았다. 그래서 저희는 이곳 서울시청 앞에 분향소를 차리려 한다”며 시민들에게 경찰 접근을 함께 막아달라고 소리쳤다.

경찰은 광화문광장 인근에 있던 기동대 경력 3000여명을 서울광장 인근으로 이동·배치했다. 경찰과 파란색 조끼를 입은 서울시 공무원 70여명은 삽시간에 서울도서관과 지하철 1호선 시청역 4, 5번 출구를 에워쌌다.

이태원 참사 발생 100일을 하루 앞둔 4일 거리 행진을 하던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와 유가족협의회가 서울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하려다 이를 막는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이태원 참사 발생 100일을 하루 앞둔 4일 거리 행진을 하던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와 유가족협의회가 서울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하려다 이를 막는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분향소 설치 공간을 확보하려는 참가자들과 이를 저지하려는 경찰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경찰은 안내방송을 통해 “서울시 점용허가를 받지 않고 불법설치한 천막”이라며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위반 행위다. 불법 행위에 대해선 채증하겠다”고 했다. 참가자들은 “그동안 경찰은 어디에 있었나” “10월29일 그날에도 시민의 안전을 지키지 못했다” “추모하고자 하는 시민 안전을 위협하지 말아라”고 항의했다. 이 과정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 1명이 서울시 공무원들과 충돌해 의식을 잃어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분향소에 159개 영정이 올려진 뒤 오후 2시50분쯤부터는 시청역 4번 출구 옆 세종대로에서 추모대회가 시작됐다. 이종철 유가족협의회 대표와 유가족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이정미 정의당 대표 등 야당 인사가 단상에 올라 정부에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이곳을 가득 메운 경찰기동대를 보십시오. 이들은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에 있었어야 했습니다” 이정미 대표의 발언에 아스팔트 바닥 위에 앉아있던 유가족과 시민들 사이에서 “맞습니다”라는 호응이 나왔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부대표도 “많은 분들이 우리와 함께하고 있단 것을 확인했다”면서 “우리가 무인도에 버려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정부가 무인도에 버려져 있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대치 중인 경찰과 윤희근 경찰청장을 향해선 “그 많은 경찰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어디에 있다가 나왔습니까”라고 외쳤다.

4일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와 유가족협의회가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에서부터 서울시청까지 행진하고 있다. 김송이 기자.

4일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와 유가족협의회가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에서부터 서울시청까지 행진하고 있다. 김송이 기자.

유가족과 시민들은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분향소에서 출발해 대통령실 앞, 서울역을 지나 서울시청까지 두 시간가량 행진했다. 빨간 머플러와 흰 장갑을 착용하고 가족의 영정을 품에 안은 유가족들이 선두에서 걸었다. 종교인 70여명은 현장을 찾지 못한 유가족을 대신해 영정을 들고 뒤따랐다.

이종철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행진에 앞서 “저희의 목소리를 전 국민에게 더 가까이서 호흡하기 위해 광장으로 나가려 한다”고 했다.

이들은 “국가책임 인정하고 대통령은 공식 사과하라” “참사의 최고책임자 행정안전부 장관을 파면하라” “성역 없는 진상규명을 위해 독립적인 조사기구 설치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4일 이태원 참사 100일 추모제에 참가한 한 유가족이 진상규명과 대통령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팻말을 몸에 착용하고 있다. 김송이 기자.

4일 이태원 참사 100일 추모제에 참가한 한 유가족이 진상규명과 대통령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팻말을 몸에 착용하고 있다. 김송이 기자.

“하늘의 별이 되다 OOO님” “심장 같았던 아들 OOO님” “따뜻하고 배려심 많았던 딸 OOO님” 선두에서 희생자 이름이 불릴 때마다 행진 대열에선 “기억하겠습니다”를 후창했다.

시민들도 행진에 동참하며 유가족을 지지했다. 남양주에서 “미안해요 우리가 많이” “잊지 않을게요”라는 문구의 손팻말을 직접 만들어 온 편동미씨(58)는 “기성세대로서 할 수 있는 게 이렇게 나오는 것밖에 없어서 나왔다”고 했다. 대통령 집무실을 행진하던 중 눈가를 훔치던 시민 김모씨는 “대통령이고,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시민으로서 화가 나고, 내가 당한 것 같은 느낌이라 집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세 가족이 함께 거리로 나온 윤경진씨(51)는 “유가족들이 사회가 외면한다는 느낌을 받으실 수 있는데 지치지 않고 함께 하겠단 얘기를 드리고 싶다”며 “아이와 함께 나온 것도 힘든 일이 있을 때 사회가 돕는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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