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시민단체 ‘돈줄 죄기’ 명분…극우 먹잇감 된 수요시위

이유진·김세훈 기자

‘정의연 후원금 유용 의혹’ 3년, 한국 사회에 남긴 것

윤미향, 1심 벌금 1500만원
재판부 “죄책 가볍지 않아”

사태 초기 빠르게 정치화
운동권 정부 ‘민낯’ 프레임
검찰의 시민운동 몰이해
무리한 기소로 이어지기도

정의기억연대(옛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후원금을 유용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윤미향 무소속 의원(59)이 지난 10일 1심에서 벌금 1500만원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기소된 8개 혐의 중 업무상 횡령죄만 일부 인정했다. 사건은 2020년 5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윤 의원의 기부금 횡령 의혹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정의연 사태’의 후폭풍은 현재진행형이다. 아직은 1심 판결이고 ‘검찰의 무리한 기소였다’ ‘법원의 솜방망이 판결이다’라는 상반된 비판이 나오지만 이 사건의 소비 방식과 정치적 활용 방식에 대해선 한번쯤 짚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의연 사태는 초기부터 빠르게 정치화됐다. 보수진영은 문재인 정부의 이중성과 운동권 엘리트의 부패를 보여주는 ‘대표적 예시’로 활용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정의연 사태를 언급하며 “시민단체의 공금 유용과 회계 부정을 방지할 수 있는 ‘윤미향방지법’ 통과를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윤 대통령 당선 직후 꾸려진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제2의 윤미향사태’를 막겠다고 했다.

정의연 사태는 정부가 진보 시민단체의 ‘돈줄’을 죄는 명분이 됐다. 지난해 12월 전국 243개 지자체는 자체 계획을 수립해 이달까지 시민단체에 지원한 지방보조금 사용 현황을 전수조사하기로 했다. 세금 누수를 줄인다는 명분을 들었으나 진보 성향 시민단체를 압박하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관측이 나왔다.

이승훈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사무처장은 정의연 사태를 두고 12일 “진보 NGO 단체들에 대한 본격적인 공격이 시작된 첫 번째 사건”이라고 했다. 그는 “특히 윤석열 정부 들어서며 오세훈 서울시장이 시민단체를 ‘다단계조직’ ‘시민 혈세를 뽑아내는 ATM 기계’ 등으로 표현하면서 매번 정의연 사태를 언급했다”며 “이런 발언이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되면서 기업의 시민단체 후원이 절반 수준으로 줄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는 동안 정부가 정작 위안부 문제 해결에는 손을 놓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의연 후원금 유용 의혹을 맨 처음 제기한 이용수 할머니가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원회 사무실을 찾아 항의하는 일도 벌어졌다.

정의연 사태 이후 30년 역사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 알리기 운동의 동력은 크게 떨어졌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수요시위) 주변 풍경부터 달라졌다. 극우단체들은 2020년 6월부터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인근 평화의 소녀상 앞 집회신고를 선점했다. 수요시위가 열리는 낮 12시가 되면 확성기를 켜고 “위안부 사기극의 상징, 소녀상을 철거하라” “좌파 세력 척결”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일본에서는 ‘한국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도덕적 우위를 상실했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정의연 사태는) 한·미·일 극우세력의 좋은 먹잇감이 됐다. 위안부운동에 대한 후원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국제사회 활동도 위축됐다”면서 “극우세력은 윤미향 개인에서 시작해 종국엔 위안부 피해 존재 자체를 부정하며 피해자 개개인을 공격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시민운동에 대한 검찰의 몰이해가 무리한 기소로 이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를 들어 1심 재판부는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장례비 등 명목으로 1억7000만원을 개인계좌로 모금한 혐의에 대해 무죄 판단을 내렸다. “장례식 특성상 일회적 활동에 그치기 때문에 김복동 할머니 시민사회장례위원회는 기부금품법상 사회단체, 친목단체로 보기 어렵다. 기부금품법에 따라 등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 “김복동 할머니의 상징성, 피고인 윤미향의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할 때 윤미향이 김복동 할머니 장례식을 시민사회장으로 진행하고 이에 따른 장례 비용을 김복동 할머니를 추모하고자 하는 시민들로부터 모집한 행위는 동기와 목적 상당성이 인정된다”면서 “시민사회장까지 형사 처벌의 영역으로 확대한다면 시민사회장을 위축시킬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여성가족부 사업을 수행한 활동가들이 인건비 명목으로 받은 돈을 정대협에 기부한 것도 문제 삼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역시 무죄로 판단했다. 활동가들이 인건비 일부를 운영비가 부족한 시민단체에 기부하는 건 관행이라는 것이다.

물론 1심 판결에 따르더라도 윤 의원의 잘못은 가볍지 않다.

재판부는 윤 의원이 후원금을 개인계좌 등에 보관하면서 사용처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자금을 관리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시민들이 십시일반 기부한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단체였기에 누구보다 후원금 관리를 철저히 할 필요가 있었는데도 피고인 윤미향은 시민들의 기대를 저버린 채 범행을 저질렀다”며 “정대협이 우리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 영향력, 피고인 윤미향의 역할과 지위 등을 고려할 때, 피고인 윤미향의 죄책은 결코 가볍지 않다”고 밝혔다.


Today`s HOT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폭격 맞은 라파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침수된 아레나 두 그레미우 경기장 휴전 수용 소식에 박수 치는 로잔대 학생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