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다큐
서울 강북구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 대안학교에서 호영이가 정우현 선생님과 놀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아직 수어를 습득하지 못한 호영이는 선생님과 1대1 수업을 통해 상황에 맞춰 말을 걸고 표현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서울 강북구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 대안학교에서 호영이가 정우현 선생님과 놀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아직 수어를 습득하지 못한 호영이는 선생님과 1대1 수업을 통해 상황에 맞춰 말을 걸고 표현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교실은 시끌벅적했다. 아이들은 할 말이 있을 땐 “선생님! 내 말도 봐 주세요”라는 뜻으로 책상을 ‘탁탁’ 두드렸고, 이에 질세라 다른 친구도 “저도 할 말이 있어요”라며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학생들 이야기를 ‘보기’ 위해 교사의 눈은 빠르게 움직였다. 쉬는 시간엔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공을 던지고 받으며 ‘엄지손가락(최고를 의미하는 수어)’을 들어 보이기도 하고, 공을 놓치면 웃음이 퍼졌다. 언어습득과정에 있는 호영이(7)는 와다다다 뛰다가 선생님을 꼬옥 안기도 하고, 폴짝폴짝 뛰며 떼를 쓰기도 했다. 교사들은 호영이 행동에 맞춰 분주하게 손과 얼굴을 움직였다. 지난 16일 농인(청각장애) 학생들을 위한 학교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소보사)’의 교실 풍경이다. 학교는 현재 청인 김주희 대표교사(43)와 농인 교사 4명, 초중고등반 학생 6명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소연 선생님이 농아동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다 함께 수어로 기자가 들고 있는 ‘사진기’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소연 선생님이 농아동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다 함께 수어로 기자가 들고 있는 ‘사진기’를 이야기하고 있다.

호영이(7, 언어습득과정)가 정우현 선생님과 함께 사진을 보며 수어로 무슨 단어인지 알아가고 있다.

호영이(7, 언어습득과정)가 정우현 선생님과 함께 사진을 보며 수어로 무슨 단어인지 알아가고 있다.

‘소보사’는 수어교육을 통해 농 정체성(농인으로서 나는 누구인지 인지하는 과정)과 농 문화 확립을 목표로 삼는 대안학교다. 김 대표교사는 2006년부터 수어 공부방을 열어 농학생들에게 국어, 영어, 수학을 가르쳤다. 당시 공부방을 다니던 학생들은 김 교사에게 “청각장애가 있으니 공부가 어렵고 못 하는 게 당연한 건 줄 알았는데 (수어로 배우니) 이해가 된다”며 놀라워했다. 한국의 농학교는 주로 구화(입술 모양 따라 말을 이해하고 소리 내어 이야기하는 것)로 수업이 이뤄진다. 공부방을 이어가던 김 교사는 아이들이 하교 후에 오기 때문에 저녁 시간에 짧게만 가르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고민 끝에 농인에겐 수어로 공부하는 학교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2017년 대안학교를 열게 됐다.

예빈이(10, 초등과정)와 호영이(7, 언어습득과정)가 서울 강북구의 한 놀이터에서 박상욱, 이소연 선생님과 함께 시소를 타고 있다. 야외활동은 친구와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수어를 습득하도록 돕는 수업 시간이다.

예빈이(10, 초등과정)와 호영이(7, 언어습득과정)가 서울 강북구의 한 놀이터에서 박상욱, 이소연 선생님과 함께 시소를 타고 있다. 야외활동은 친구와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수어를 습득하도록 돕는 수업 시간이다.

수어도 엄연한 하나의 언어다. 한국어와도 다르고 영어와도 다르다. 농인에게 중요한 것은 수어냐 구화냐가 아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청각장애 판정을 받는 순간부터 언어 교육의 초점이 못 듣는 소리를 더 잘 듣게 하는 데 맞춰진다. 정부의 인공와우 등 보조금에 대한 안내는 판정 즉시 이뤄지지만, 청인 부모가 농인 아이를 위해 수어를 배울 수 있도록 안내하는 서비스는 없다. 수어를 배우는 순간 장애를 극복하지 못한 것으로 보는 편견과 언어 치료 및 재활에 집중하는 환경에서 농 아동은 자신의 말을 배울 수 있는 시기를 놓치게 된다. 김 교사는 “뒤늦게 ‘우리 아이는 왜 안 되지?’하고 소보사를 찾게 만드는 환경이 안타깝다”고 했다.

수업시간 도중  가은이(17, 고등과정)가 상일이(16, 고등과정) 수어로 이야기하고 있다.

수업시간 도중 가은이(17, 고등과정)가 상일이(16, 고등과정) 수어로 이야기하고 있다.

예빈이가 자유 놀이 시간에 선생님과 수어로 대화하고 있다.

예빈이가 자유 놀이 시간에 선생님과 수어로 대화하고 있다.

예빈이(10)는 5년 전 처음 소보사를 찾기까지 구화로 할 수 있는 말은 한 단어였다. 예빈이의 부모는 이건 아니란 생각에 다른 방법을 찾다가 이곳을 알게 됐다. 예빈이는 6개월 만에 수어로 곧잘 조잘거리는 제 나이대 아이가 됐다. 동생이 생기면서 소보사를 떠나 고향 제주도로 돌아가게 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특수학교에 입학했지만 수어를 할 줄 아는 선생님은 없었다. 농인과 수어가 없는 곳에서 예빈이와 부모는 다시 한계를 느꼈다. “엄마, 나 다시 소보사로 돌아갈래요.” 예빈이는 올해 소보사에 재입학했다. 예빈이처럼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꽤 있다고 했다.

고등부의 영어 수업, 수학 수업, 자유 수업이 수어로 진행되고 있다.

고등부의 영어 수업, 수학 수업, 자유 수업이 수어로 진행되고 있다.

서울 강북구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 대안학교에서 지난 20일 학생들과 선생님이 주말을 어떻게 보냈는지 이야기 나누고 있다. 대부분의 농인 학생이 청인 가족과 주말을 함께 보내기 때문에 ‘주말 이야기’ 시간을 통해 혹시나 생길 수 있는 소외감을 해소하고 안부를 확인한다. /한수빈 기자

서울 강북구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 대안학교에서 지난 20일 학생들과 선생님이 주말을 어떻게 보냈는지 이야기 나누고 있다. 대부분의 농인 학생이 청인 가족과 주말을 함께 보내기 때문에 ‘주말 이야기’ 시간을 통해 혹시나 생길 수 있는 소외감을 해소하고 안부를 확인한다. /한수빈 기자

교사들은 인건비도 확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소보사를 지속하는 이유는 하나라고 입을 모았다. “어딘가에 수어로 버젓이 잘 배우고 성장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학생들이 다 졸업하고 한 명의 학생도 없는 학교가 되더라도 다음 아이를 기다리며 같은 자리에 서있을 겁니다.”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모여 7월에 개최되는 WFD(세계농인대회)에 대한 회의를 하고 있다.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모여 7월에 개최되는 WFD(세계농인대회)에 대한 회의를 하고 있다.

이런 기사 어떠세요?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