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지킴이 박그림씨 “이렇게 산양이 많이 사는데···케이블카라니 말이 됩니까”
고3 때 처음 설악산에 올랐다는 박그림 녹색연합 공동대표(75)는 30년 동안 설악산을 지켜왔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에게 산을 지키는 일이 힘들지 않으냐고 묻자, 박대표는 “설악산은 감히 누가 지켜내고 말고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지난 3월20~21일, 4월6~8일 두 차례 박대표와 동행하며 그의 활동을 카메라에 담았다. 먼저 설악산 오색분소에서 출발해 대청봉에 오르는 1박 2일 일정을 따라 나섰다. 그는 입산 통제 기간에도 국립공원공단 직원의 동행하에 활동을 이어갔다. 산을 오르는 박대표의 걸음은 10분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5년 전 판정 받은 협심증 탓이다. 설악의 숨을 틔워주려 했던 그였지만, 정작 자신의 숨은 돌보지 못했다.
탐방로에서 마주친 노란 생강나무꽃에 코 끝을 대고 숨을 들이마시자 그의 표정이 편안해졌다. “설악산은 어머니 같은 존재죠.” 지치고 힘들 때면 그는 늘 설악산을 찾았다. 1992년부터는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가족과 함께 설악산 아래로 이사해 환경운동을 시작했다. 어머니 같은 산이 훼손된 모습에 고통스러워 잠을 이루지 못했던 그는 이듬해엔 녹색연합의 전신인 ‘설악 배달 녹색연합’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환경문제에 뛰어들었다.
입산이 통제돼 사람의 발길이 사라진 탐방로 곳곳에 야생동물들의 배설물이 눈에 띄었다. “겨울에 눈이 소복하게 쌓였을 때 이곳에 오면, 노루 발자국이 꾹꾹 찍혀 있어요. 눈을 감고 노루가 터벅터벅 걸어가는 상상을 하는 거예요. 경이롭지요.” 노루와 삵의 배설물을 만지며 야생동물 이야기를 이어가는 박대표의 표정은 내내 밝았다.
산 정상에 다다를 무렵 박대표는 전망이 트인 바위에 올라 건너편 능선을 가리켰다. “내일 저기로 하산하면서 산양 서식지 무인카메라를 확인할 겁니다.” 그는 산양 연구에 공을 들이고 있다. 50년 전 처음 설악산에서 마주친 산양의 눈빛은 그를 연구에 이르게 만들었다.
대청봉에 오른 박 대표는 정상임을 알리는 비석 앞에서 모자를 벗었다. 거센 바람에도 한참 동안 비석에 이마를 댄 채 기도하듯 서 있었다.
정상에서 내려온 그는 중청대피소에서 직원들과 안부 인사를 주고 받았다. 설악산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다음날 박대표는 탐방로가 아닌 ‘야생의 길’로 하산했다. 산비탈을 내려가자 전날 그가 바위 위에서 짓던 굳은 표정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나무들 사이엔 케이블카 상부 정류장을 표시한 깃발이 꽂혀 있었고, 주위에는 붉은 끈이 처져 있었다. 근처에는 산양 배설물이 수북했다. 박대표는 두 손에 배설물을 담았다. “이곳에 산양이 이렇게 살고 있는데, 케이블카를 놓겠다는 건 말도 안 되잖아요.”
20여 년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반대 운동을 해온 그는 “환경부가 케이블카 설치를 통과시킨 건 국립공원이 아니라 국립유원지로 가겠다는 것”이라며 분개했다.
앞서 지난 2월 27일 환경부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환경영향평가 재보완서를 검토한 뒤 ‘조건부 동의’ 의견을 국토교통부에 통보했다.
2주 뒤 다시 박대표를 만났다. 이번엔 설악산 백담분소에서 시작하는 산행이었다. 굽이치는 계곡을 따라 오르자 그의 산양연구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연구소에는 그가 30년간 모은 설악산 관련 자료가 가득했다.
이튿날 새벽 연구소를 나선 박대표는 물안개 자욱한 계곡 앞에서 바지를 걷고 등산화를 벗은 뒤 얼음장 같은 계곡물을 신성한 의식을 치르듯 건넜다. 계곡 건너의 통제 지역은 말 그대로 원시림이었다. 오소리 한 마리가 빼곡한 전나무 사이를 뛰어 내려갔고, 겨울잠에서 깬 살모사도 숲을 기었다.
숲속 가파른 길을 오르자 큰 굴이 나왔다. 굴 안에 오래되지 않은 산양의 배설물이 모여있었다. 박대표는 무인카메라에 담긴 어미와 새끼 산양의 영상을 기자에게 보여주며 천진하게 웃었다.
박대표는 ‘국립공원’다운 설악산을 꿈꾼다. 설악산에는 천연기념물인 산양, 반달가슴곰, 수달, 황조롱이 등 1562종의 동물들과 1013종의 식물 등이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 받아 국립공원,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천연보호구역, 백두대간 산림 보호림, 산림 유전자원 보호림으로 지정되었다.
“이곳을 지켜야 할 무슨 이유가 더 필요합니까.” 긴 설명을 마친 그가 기자를 보며 가쁜 숨을 쉬었다. 그가 뱉어낸 30년간의 숨이 설악 곳곳에 스며 있는 듯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