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대에 깨끗한 바다 물려줄 의무 있어”…어민들은 왜 거리로 나왔나

김세훈 기자
20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 인근 을지로에서 ‘일본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전국 행동의 날’ 참가자들이 행진 도중 다이-인(Die-in)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 인근 을지로에서 ‘일본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전국 행동의 날’ 참가자들이 행진 도중 다이-인(Die-in)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업인 김영철씨(61)는 전남 여수에서 15년간 양식업으로 생계를 꾸려왔다. 묵묵히 바닷일을 해 온 김씨가 처음 거리로 나선 것은 2021년 4월이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계획을 발표한 때였다. 그는 전남 목포, 경남 통영, 경기 고양 등을 오가며 오염수 방류 반대 집회에 참여했다. 어선을 동원해 해상 시위도 벌였다.

김씨는 주변에서 ‘조용히 있으면 사람들이 (오염수 방류를) 안전하다고 여길 텐데 왜 굳이 나서서 문제제기를 하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그는 그때마다 “우리나라 국민 수준이 그렇게 낮지 않다. 침묵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씨는 정부가 어떻게든 오염수 방류를 막아줄 거라 믿었다. 그러나 후쿠시마 오염수를 보관하고 있는 도쿄전력은 오는 7월 오염수 방류를 예고했다. 김씨는 지난 20일 서울로 상경해 오염수 해양 투기 반대 집회에 참여했다.

전국의 어업인 약 1000여명(주최 측 추산)이 지난 20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앞에서 ‘일본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전국행동의 날’ 집회를 가졌다. ‘방사선 오염수 해양투기 반대’ ‘바다를 오염시키지 마라’ 등 문구가 적힌 손팻말과 깨끗한 바다를 의미하는 하늘색 풍선이 도로에 넘실거렸다. 김종식 전국어민회총연맹 회장은 집회에서 “일본의 오염수 투기를 막지 못하면 전국 수산업자들은 생계뿐 아니라 국민의 먹거리도 위협받게 된다. 윤석열 정부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계획 철회를 일본에 요구해야 한다”고 했다.

어민들은 정부가 일본 정부의 오염수 방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기삼 전국어민회총연맹 사무총장은 21일 통화에서 “한덕수 국무총리는 오염수가 안전하다면서, 시료를 확인하게 해달라고했더니 시료 채취는 위험해서 안 된다고 한다.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라며 “정부의 시찰단도 실제적인 검증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오염수 방류를 위한 일종의 명분 쌓기로 활용되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정부는 이날 21명으로 구성된 후쿠시마 오염수 시찰단을 5박6일 일정으로 일본에 파견했다.

경남 통영에서 18년간 어업에 종사해 온 전민경씨(50)는 “(오염수가 방류되어도) 우리야 남은 삶이 30년이라고 치면 그냥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지금 태어나는 어린아이들에게 오염수가 어떤 영향을 줄지를 생각하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며 “바다는 현 세대만의 것이 아니라 깨끗이 쓰고 후대에 물려줘야 하는 것임을 정부가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염수 방류의 영향은 어업인에 그치지 않고 어류를 판매하는 식당, 바닷물을 끌어다 쓰는 농지 등 산업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어민들은 후쿠시마 오염수 이슈가 이미 생계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했다. 전씨는 “벌써 통영에서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이슈 때문에 멍게값이 떨어지고 있다”며 “지금은 금어기라 영향력이 제한적이지만 6월에 배를 띄울 때가 되면 피해가 점점 불어날 것 같다. (상대적으로 오염수 영향이 적은) 양식업으로 방향을 틀겠다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이 사무총장은 “지금 어민들은 한계 상태에 있다. 기름값, 어선 자재 등 물가는 오를 대로 올랐는데 생선값마저 떨어지면 배를 띄우지를 못할 것”이라며 “업종을 바꾸려고 해도 어민들이 대부분 60~70대로 고령화되어 있어 쉽지 않다”고 했다.

김씨는 “오염수가 실제로 안전한지는 누구도 섣부르게 판단할 수 없다”며 “이미 초등학생도 ‘오염수는 위험하다’는 인식이 있는 상태에서 정부가 무작정 괜찮다고만 할 것이 아니다. 국민의 부정적인 인식을 설득하지 못하면 어민들의 생계는 바람 앞의 등불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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