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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식 연루된 38년 전 ‘불발탄 폭발 사건’…풀리지 않은 의혹들

강은 기자    조형국 기자
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5일 서울 용산구 육군회관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첫 출근을 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5일 서울 용산구 육군회관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첫 출근을 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1985년 10월24일 이모 일병이 훈련 도중 ‘뻥’ 하는 소리 이후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발견됐다. 이 병사는 병원 후송 후 사망 판정을 받았다. 군이 인정한, 그리고 당시 중대장이었던 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주장하는 사망원인은 ‘40mm 고폭탄 불발탄’을 밟은 것. 그러나 당시 현장에 있던 병사·간부들은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군사망위) 조사에서 ‘훈련 중 발사한 60mm 박격포 포탄이 떨어져 숨졌다’고 진술했다. 엇갈리는 진술과 의혹은 이뿐만이 아니다.

신원식 중대장, 어디 있었나

당시 중대장으로 박격포 발사 지시·책임자였던 신 후보자의 사고 직후 위치를 두고 진술이 엇갈린다. 신 후보자는 군사망위 조사에서 “중대 지휘관측소(OP)에 위치해 있었다”며 “그 자리에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망 현장이나 환자도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신 후보자와 같이 ‘불발탄 사망’을 주장한 지휘관 말은 달랐다. 당시 대대장이었던 김모씨는 “뻥 소리를 듣고 중대장과 대대장이 현장에 달려갔다. 현장에서 가까운 중대장이 먼저 와 있었다”고 했다. 김씨 진술은 더 구체적이다. 그는 “(이 일병이) ‘소대장님 다리가 아픕니다’라고 얘기했고, 군의관과 소대장이 지혈하면서 ‘조금만 참아라, 괜찮다’라고 답했다”며 “나와 중대장 신원식은 그 소리를 듣고 그동안 자부심을 갖고 근무해왔는데 우리를 찾지 않고 소대장만 찾아 섭섭했다”고 말했다. “이런 얘기를 신원식도 했다. 그래서 사고 상황을 기억한다”며 “(이후) 엠뷸런스가 왔다”고도 했다. 당시 현장을 목격한 병사 이모씨도 “곧 중대장과 포반장 등도 사고 현장에 도착했고, 그 자리에서 중대장이 포반장에게 고함을 지르며 질책했다”고 진술했다.

‘불발탄 밟았다’ 누가 말했나

‘불발탄 피폭’을 최초로 언급한 이가 누구인지도 엇갈린다. 군사망위 조사에서 대대장은 중대장을, 중대장은 대대장을 최초 발화자로 지목했다.

신 후보자는 “사망원인은 헌병대 수사결과를 확인하신 대대장님 설명에 따라 인지했다”며 “대대장님이 ‘망인이 돌격 사격하던 중 엎드려 있다가 불발탄을 밟고 죽었다’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는 “헌병대에서 조사받지 않았다”고 했다.

대대장의 진술은 달랐다. 김씨는 “헌병대에서 나에게 (사건에 대해) 물었겠지만 설명한 기억은 없고, 중대장이 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신 후보자가 먼저 현장에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누군가 판초에 구멍이 뽕뽕 난 것을 보니 203 유발탄(불발탄)인 것 같다고 얘기했다”며 “‘누가 봤겠나. 지가 걸어가다 불발탄을 찬 것 같다’라는 얘기를 듣고 그 상황이 맞는 것 같았다”고 했다.

쓴 사람 없는 사체 검안서

헌병대 수사보고서에는 이 일병의 사체를 검안한 결과가 기록으로 남아있다. 사고 하루 뒤인 1985년 10월25일 8사단 헌병대가 작성한 ‘중요사건보고’를 보면 ‘8. 사체검안결과’ 란에 ‘양대퇴부 및 흉부 파편창에 의한 과다 출혈로 사망함’이라고 적혀있다. 작성자는 사단의무대 군의관 대위 전모씨였다.

전씨는 군사망위 재조사에서 사체 검안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군사망위 기록을 보면 “(전씨가) ‘나는 사체 검안을 한 적이 없다’고 답변했고, 재차 확인한 질의에도 완강하게 ‘사체 검안을 한 적이 없다’라고 하며 더 이상의 답변을 거부했음”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발탄도 불발탄도, 남은 증거가 없다

이모 일병 사인을 밝힐 핵심 증거인 탄 파편은 증거로 다뤄지지 않았다. 군사망위는 당시 현장 사진, 기록 등 탄 파편 종류를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 자료를 국방부에 요청했으나 군은 ‘해당 자료가 없다’고 회신했다. 군사망위가 입수한 다른 기록들에도 증거는 없었다. 사인을 공식 확인하기 위한 부검도 진행되지 않았다.

증거를 대신한 것은 판단이었다. 헌병대가 작성한 수사보고서에 적힌 ‘판초우의 파편 구멍이 40mm 고폭탄 파편 모양과 같고, 사고자 상처부위 맹관된 파편이 40mm 고폭탄 파편으로 판단됨’이 탄 파편과 관련한 유일한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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