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 따면 군대 안 가도 될까?

오경민 기자
한국 축구 대표팀 선수들이 결승전에서 일본에 승리한 후 시상대에서 환호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사진 크게보기

한국 축구 대표팀 선수들이 결승전에서 일본에 승리한 후 시상대에서 환호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뉴스레터 점선면 10월18일자(https://stib.ee/CTL9)에 게재된 글입니다. 경향신문 대표 뉴스레터 점선면은 이슈와 기사를 엄선해 입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점선면을 구독해 더 많은 뉴스레터를 메일함으로 받아보시려면 여기(https://url.kr/7vzi4n)로 접속해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세요.

[뉴스레터 점선면] 금메달 따면 군대 안 가도 될까?
[뉴스레터 점선면] 금메달 따면 군대 안 가도 될까?
지난주, 제 친구들은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과 서울세계불꽃축제 관련 사진을 앞다퉈 올렸습니다. 독자님도 관심을 기울이셨나요? 사실 전 둘 다 안 봤습니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을 안 본 지 꽤 오래됐어요. 저 같은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2020년대 들어 올림픽에 ‘관심이 없다’고 답한 이들이 ‘관심이 있다’고 답한 이들의 2배가량으로 나타났어요.

전보다는 줄었지만 여전히 높은 관심 속에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지난 10월8일 막을 내렸습니다. 한국은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인 39개 종목, 1140명의 선수단을 파견했어요. 축구·야구 등 인기 구기 종목에서도 메달을 휩쓸었고, 배드민턴·탁구·양궁·역도·주짓수·골프 등에서도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e스포츠와 13년 만에 정식 종목으로 되살아 난 바둑에서도 정상에 올랐고요.

언젠가부터 국제 스포츠대회가 끝나면 선수들의 ‘병역 혜택’을 두고 갑론을박이 따라붙습니다. 올해도 마찬가지네요. 그래서 이번 점선면 주제를 ‘체육요원 대체복무’로 정했습니다. 책 <역사와 쟁점으로 살펴보는 한국의 병역제도>와 <스포츠 코리아 판타지>를 참고했어요.



[뉴스레터 점선면] 금메달 따면 군대 안 가도 될까?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태권도 겨루기 남자 58㎏급 결승전에서 승리한 뒤 기뻐하는 장준 선수. 장준 선수는 2022 도쿄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해 병역 특례를 받았다. 연합뉴스. 사진 크게보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태권도 겨루기 남자 58㎏급 결승전에서 승리한 뒤 기뻐하는 장준 선수. 장준 선수는 2022 도쿄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해 병역 특례를 받았다. 연합뉴스.

금메달과 ‘병역 혜택’

·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남성 선수에게 ‘아시아에서 1위’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체육요원으로 대체복무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 이번 대회에서는 42개의 금메달이 나왔습니다. 이 중 축구 대표팀 19명·야구 대표팀 20명을 비롯해 아직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남성 선수들은 이번 대회로 ‘병역 혜택’을 받게 됐어요.

· 아시안게임이 끝날 때마다 선수들의 ‘병역 면제’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집니다. 사실 ‘면제’가 아니라 ‘대체복무’입니다. 체육요원이 돼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도 받아야 하고, 34개월 간 544시간의 ‘공익복무’도 해요.

· 대체복무인데 ‘면제’로 여겨지는 이유는 ‘공익복무’의 성격 때문입니다. 체육요원의 경우 ①선발 당시의 체육종목의 선수로 활동하는 것 ②대학에서 체육분야 학과를 전공하거나 해당 종목에서 선수로 활동하는 것 ③체육지도분야에서 종사하는 것 ④실업체육팀에서 해당 종목의 선수·코치·감독 등으로 종사하는 것 등이 공익 복무에 포함돼요. 사실상 체육을 그만두지 말고 계속하라는 의미입니다.

· 경력 단절이 없고, 출퇴근을 할 수 있고, 수입에도 영향이 없는 등 현역 군 복무와 다른 점이 많아 매번 관련 대회가 막을 내릴 때면 ‘형평성’ 논란이 제기됩니다.

[뉴스레터 점선면] 금메달 따면 군대 안 가도 될까?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들은 체육요원에 편입돼 대체복무를 하게 됩니다. 현역 군 복무와 다른 점이 많아 사실상 ‘면제’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뉴스레터 점선면] 금메달 따면 군대 안 가도 될까?

1. 입대는 곧 은퇴

남성 선수 1만7418명을 13년간 추적 관찰해 군 복무 형태에 따른 선수 생활 복귀 양상을 살펴본 논문 <엘리트 남성선수의 군 복무별 현업복귀율과 선수경력의 비교분석>(2020, 이온 외 3명)을 보면, 선수들이 체육요원을 목표로 하는 이유를 통계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병역의무자가 된 선수 10명 중 9명(93.3%)이 현역으로 입대했습니다. 그리고 이 중 8명 중 1명(12.5%)만이 선수생활을 이어갔어요. 7명은 제대 이후 복귀하지 못했습니다.

그래픽=김규연 디자이너. 출처=<엘리트 남성선수의 군복무별 현업복귀율과 선수경력의 비교 분석> 사진 크게보기

그래픽=김규연 디자이너. 출처=<엘리트 남성선수의 군복무별 현업복귀율과 선수경력의 비교 분석>

현역으로 군 복무한 선수들의 평균 선수경력은 2.46년으로 다른 형태로 복무한 선수들보다 현저히 짧았습니다. 면제를 받거나 국군체육부대·경찰청 체육단에서 복무한 선수, 사회복무역(소위 공익근무)을 지낸 선수, 병역 특례를 받은 선수들의 경력은 약 10년에 걸쳐 이어진 데 반해서요.

“군입대로 인한 경력단절은 일반인들도 겪는 것이지만 스포츠선수의 경우 일반 학생에 비해 진로선택에 있어 선택의 폭이 좁기 때문에 군입대로 인한 경기력 감소 및 경력단절은 더욱 중요한 사항이다. (중략) 대부분의 운동선수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병역의무를 최대한 연기하여 운동선수로서의 생명을 유지하고 있으며, 군입대와 함께 은퇴를 고려한다.” 논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국군체육부대는 아주 소수 종목만 운영하고, 연 1회 필요할 때만 간헐적으로 인원을 보충합니다. 경찰청 체육단은 의무경찰이 폐지되면서 함께 사라졌고요. 체육요원은 선수생활을 유지할 거의 유일한 방도인 셈입니다.

2. 줄이고 고쳐도 이상한 ‘병역 특례’

체육요원 제도는 유신 시대인 1973년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당시에는 올림픽 3위는 물론 아시안게임 3위, 유니버시아드 3위, 세계선수권 3위 안에 들면 ‘병역 특례’를 줬어요. 한국체대 졸업성적이 상위 10%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국가 차원에서 선수를 육성하던 시절입니다.

곧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을 제외한 대회는 특례 대상에서 제외됐고, 아시안게임에서는 1위를 차지해야만 체육요원 편입 자격을 가질 수 있게 됐습니다.

그래픽=김규연 디자이너

그래픽=김규연 디자이너

체육요원 제도는 그때그때 대중의 요구나 국가에 필요에 따라 일관성 없이 운영됐습니다. 2002년 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한 국가대표팀에 ‘깜짝’ 혜택을 준 게 대표적입니다. 당시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대표팀에게 병역 특례를 줘야 한다는 여론이 컸어요. 정부는 병역법 시행령에 ‘월드컵 축구경기에서 16위 이상의 성적을 거둔 사람’을 추가했습니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국가대표팀이 4강에 올라 화제가 되자 여당과 정부가 이에 편승해 갑자기 대표팀에게 특례 자격을 주기로 했습니다. 비인기종목 선수들, 아마추어 선수들과의 형평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월드컵과 WBC는 특례 대상에서 이내 제외됐습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2012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뒤 기뻐하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사진 크게보기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2012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뒤 기뻐하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단체종목의 경우 실제로 출전한 선수만 해당한다’는 조항도 논란을 일으키자 사라졌습니다. 2012년 런던올림픽 때 일본과의 3·4위전 경기에서 2대0으로 승리가 확실시되자, 홍명보 감독은 경기 종료 4분을 남겨두고 아직 출전하지 않았던 선수를 투입했습니다. 병역 특례를 모두가 누리게 하기 위해 불필요한 선수 교체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국내외에서 조롱거리가 되자 이 조항도 2020년 삭제됐어요.

김성배 국민대 법대 교수는 “예술·체육요원제도는 변화하는 시대상황 속에서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예측가능하게 변화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의도나 부차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신성한 국방의무를 변화시키고 즉흥적으로 시혜적 혜택을 남발하고 사회적 무리가 생기면 축소하는 방향으로 비계획적으로 변화했다”고 지적합니다.

3. 메달 따면 개선장군?

체육요원의 의미는 병역법 제2조 10의3에 규정돼 있습니다.

“예술·체육 분야의 특기를 가진 사람으로서 제33조의7에 따라 편입되어 문화창달과 국위선양을 위한 예술·체육 분야의 업무에 복무하는 사람

‘문화창달’과 ‘국위선양’. 알 듯 말 듯 합니다. 의미를 정확히 알기 위해 체육요원 제도가 만들어지던 당시 상황을 들여다봤습니다. 정희준 동아대 스포츠과학부 교수의 <스포츠 코리아 판타지>를 참고했습니다.

신세기체조(아침체조) 2002년

한국의 경제 수준이 타이, 필리핀, 북한보다 못하던 1972년, 유신체제가 시작됐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신세기체조’ ‘국민체조’ 등을 만들고 “체력은 국력”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해 8월, 서독 뮌헨에서 제20회 올림픽이 열렸습니다. 이 올림픽에서 남한 유도 미들급 오승립 선수가 은메달을 획득합니다. 그런데 사격에서 북한 리호준 선수가 금메달을 땁니다. ‘해방 후 첫 금메달’을 남한보다 북한이 먼저 품에 안았습니다. 북한은 이 올림픽에서 108개국 중 22위에, 한국은 33위에 올랐습니다. 리호준 선수는 기자회견에서 이런 말까지 합니다. “적의 심장을 겨누는 심정으로 쐈습네다.” 그리고 다음 해, 체육 병역 특례 제도가 생겨납니다.

한국 첫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양정모 선수(맨 오른쪽)와 박정희 전 대통령(가운데). 경향신문 자료사진. 사진 크게보기

한국 첫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양정모 선수(맨 오른쪽)와 박정희 전 대통령(가운데). 경향신문 자료사진.

4년 뒤,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 종목에서 양정모 선수가 한국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다음날 각 신문 1면은 올림픽 소식으로 도배됐습니다. 경향신문도 마찬가지였는데요, 1면에 <태극기 아래 첫 금메달, 레슬링 양정모 민족의 숙원 이룩> <금메달이 걸리던 순간 애국가 퍼지자 눈물만> 등 기사를 실었어요. 일부를 보실까요.

“중앙에 태극기가 게양되면서 몽고기·성조기가 호위하듯 따라 올라갔다. 애국가가 올림픽 사상 최초로 연주되어 장내에 울려 퍼졌다. 부동자세로 태극기를 주시하던 양 선수의 양 볼에 어느새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옆자리에서 지켜보던 김택수 체육회장, 최재구 단장 등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이틀 뒤 귀국한 선수들을 인터뷰한 기사에는 이런 표현도 있어요. “격전장의 병사처럼 내 나라를 빛내겠다는 선수들의 사명감과 정신력이 몬트리올 하늘에 태극기를 잇달아 올리게 한 원동력이 됐다.” 선수들은 국가대항 ‘스포츠 전쟁’의 병사였고, 메달을 따면 ‘개선장군’이 됐습니다.

지금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지요. ‘국가주의’ 시대의 유물인 ‘국위 선양’은 이제 의미가 많이 바랬습니다.

4. 예술·체육요원 논위 ‘제자리 걸음’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한 야구 대표팀 선수들이 선동열 감독을 헹가래 치고 있다. 당시에도 병역 특례 관련 논란이 뒤이었다. 연합뉴스. 사진 크게보기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한 야구 대표팀 선수들이 선동열 감독을 헹가래 치고 있다. 당시에도 병역 특례 관련 논란이 뒤이었다. 연합뉴스.

50년 전 만들어진 제도이다 보니, 체육요원 제도는 매번 도마 위에 오릅니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때도 논쟁이 뜨거웠습니다. 당시 국방부·문화체육관광부·교육부 등이 참여하는 범부처 합동 TF까지 만들어졌어요. ‘체육요원 완전 폐지’까지 검토하겠다며 나선 TF는 이런 결론을 2019년 내놨습니다.

“제도 유지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했다. 세계 최상위 수준의 극소수인재들이 엄격한 선발기준에 따라 편입되어 해당 분야에서의 다양한 활동으로 국민사기를 진작하고 국가 품격을 제고할 뿐 아니라 국민들의 예술 및 체육활동에도 기여하는 바가 크다는 것을 고려할 때 제도의 지속 운영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했다.”

국가대표 선발 과정에서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겠다고 덧붙이긴 했지만, 다소 싱거운 결론입니다. 선수들의 입상으로 “국민사기가 진작”된다는 것도 시대에 뒤떨어진 진단이고요.

그룹 방탄소년단(BTS). 빅히트뮤직 제공. 사진 크게보기

그룹 방탄소년단(BTS). 빅히트뮤직 제공.

지난해 BTS의 입대를 앞두고도 병역법 개정이 거론됐습니다. 체육요원과 함께 관리되는 예술요원은 순수예술 분야 대회 입상자만 대상으로 하는데요, 대중문화도 여기 포함할지 논의한 거죠. 국회는 결국 입장을 보류했습니다.

매번 문제가 불거지지만 예술·체육요원 제도는 이렇다 할 개선 없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번 아시안게임 이후 또 체육요원 제도가 비판의 대상이 되자 지난 10월13일 이기식 병무청장이 관련 TF를 만들겠다고 선언했어요. “예술·체육 분야 병역특례 등 보충역 제도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요. 과연 5년 전과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요?

[뉴스레터 점선면] 금메달 따면 군대 안 가도 될까?

1973년 ‘문화창달’과 ‘국위선양’에 기여한 선수들을 위해 처음 만들어진 체육요원 제도는 최근 그 의미를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매번 논란에 휩싸이지만 정부와 국회는 이렇다 할 개선안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뉴스레터 점선면] 금메달 따면 군대 안 가도 될까?

1. 병력 손실 영향은 미미

국방부는 출생률 감소에 따른 병력 자원 감소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대체복무를 축소해야 한다는 입장이죠. 대체복무는 “잉여 병역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위해 병력충원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운영”하는 제도니까요.

하지만 산업기능요원과 석사 전문연구요원 등의 규모를 줄이면서도 예술·체육요원 제도에는 유보적인 입장을 취해왔어요. 사실 예술·체육요원의 규모는 매우 작습니다.

그래픽=김규연 디자이너. 사진 크게보기

그래픽=김규연 디자이너.

병무청 통계에 따르면 1973년 제도 시행 이후 2021년까지 체육요원 편입 인원은 총 979명이에요. 매년 약 20명 정도입니다. 매년 20만명가량이 현역으로 입대하는 것을 고려하면 0.01%가 채 안 되는 수치이고요. 예술요원을 합쳐도 40명 규모라, 병력 손실에 유의미한 영향을 준다고 말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2. 모두의 사정을 고려하는 복무제도

하지만 스타들이 현역 군 입대를 하지 않을 때, 사회에 주는 메시지는 강렬합니다. 매번 ‘공정성’ ‘형평성’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지난 10월13일 점선면 예고를 통해 독자님들 의견을 물었는데요, 제도에 반대하거나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독자님들은 이렇게 이유를 전해주셨어요.

🤔 “군 복무라는 것이 돈보다 중요한 시간을 앗아가는 것에 대해 우리 젊은 사람들이 분노하는 것 같아요.” (슬기로운 불꽃님)

😟 “성실히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일반인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고 군대가 징벌로 느껴지게 만듭니다.” (청년고등어조봉학님)

😔 “군복무를 명예로운 일로 여길 수 없게 하는 사건 사고들을 접하는 가운데, (병역 특례가) 포상으로 주어집니다. 혜택을 받지 못하는 다수와 비교해 보다 합리적인 제도를 마련해야 합니다.” (린다씨님)


현역 군 입대를 하는 이들과의 ‘형평성’은 어떤 식으로 확보해야 할까요.

청와대 국가안보실, 국방부 전력정책관실 등에서 근무한 김신숙씨의 책 <역사와 쟁점으로 살펴보는 한국의 병역제도>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의무라는 명목하에 일률적으로 부담을 확대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남성에게 부과되는 부담이 과하다면 이를 완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지, 그 부담을 널리 퍼지게 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 있다.”

예술·체육요원 등 대체복무 제도를 폐지한다고 해서 다수의 제대군인 남성이 받은 불이익을 실질적으로 보상받을 수는 없습니다. 체육요원 제도를 폐지하기보다, 체육요원의 장점을 현역 군 복무에도 적용하는 방향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선수가 아닌 남성도 경력 단절을 겪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등은 <군 복무에 대한 사회통합적 보상체계 마련을 위한 정책방안 연구>에서 남성 1000명을 대상으로 남성들이 군대에서 어떤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조사했습니다. 가장 응답이 높았던 것은 “중요한 시기의 인생 공백(48.2%)” 였어요.

그다음으로 응답이 많았던 항목도 ‘인생 공백’의 파생 효과였습니다. 응답자들은 “취업지연에 따른 경제적 손실(16.0%)” “학업능력의 저하(15.2%)” 등이 군 복무에 따른 가장 큰 불이익이라고 여겼습니다.

앞서 체육요원 제도에 반대했던 청년고등어조봉학님은 이런 말을 덧붙이셨어요.

“저는 국방의 의무, 징병제 자체를 반대합니다. 군대에서 21개월간의 시간이 감옥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한국에서 남성으로 태어나 몸이 멀쩡하다는 이유만으로 자유를 억압받고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보상도 없이 버텨야만 하는 형벌로 느껴졌습니다. 군대가 형벌이 되지 않으려면, 모병제(지원병제)로 바뀌던가, 그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두가 군대에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체육요원 제도와 더불어 징병제 자체를 개선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체육선수든, 체육선수가 아니든 군대가 곧 ‘인생의 공백’이 되지 않도록 복무자의 입장에서 제도를 돌아봐야 합니다.

위 연구에서 남성들은 “자기계발을 위한 자유시간 확보” “제대 시 기업과 연계한 취업알선” “사회복귀 적응프로그램 운영” 등을 해결방안으로 제시했습니다.

3. 스포츠, 국위선양과 경기장을 넘어서

지난 10월8일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폐막식에서 한국 선수단이 관계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문재원 기자 사진 크게보기

지난 10월8일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폐막식에서 한국 선수단이 관계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문재원 기자

“운동선수의 병역문제 관한 쟁점을 ‘국위선양’에 두기보다는 평생 동안 운동만 해왔고 앞으로도 운동으로만 살아야 하는 체육특기자들을 중심으로 ‘개인손실의 형평성’의 측면에서 접근하여 합리적인 제도개선을 모색해야 한다.” 김대희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선임연구원은 체육요원 관련 연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김 연구원은 연구에서 체육요원 확대를 주장하기도 합니다. 근거는 이렇습니다. 국가대표 은퇴선수들의 은퇴 후 무직 비율은 40%가 넘습니다. 체육선수에게 입대는 곧 은퇴인데, 은퇴는 곧 무직이라는 겁니다. 지난해 대한체육회가 국회에 제출한 통계 수치도 비슷합니다. 무직 41.9%. 청년실업률(8.9%)의 4배가 넘습니다.

스포츠 선수의 실업은 단순히 군대의 문제는 아닙니다. 배경에는 학생 때부터 다른 과목 수업도 듣지 못한 채 오로지 운동에만 매진해야 하는 현실이 있습니다.

홍명보 감독.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사진 크게보기

홍명보 감독.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정윤수 스포츠평론가는 경향신문 칼럼을 통해 ‘국위선양’을 넘어서 선수들을 ‘경기장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이 나라 스포츠는 지난 70년대에 ‘국위선양’과 ‘대한건아’라는 과잉 열정을 기반에 두고 발전해 왔다. 상명하복의 군대적 편제와 강압적인 위계질서가 오랫동안 지배해 왔는데, 몇 차례의 계기(특히 2002한·일 월드컵의 히딩크 신드롬)에도 이 폭력적 관계는 관행이니 성적이니 대안부재니 하는 말을 핑계 삼아 여전히 완강하게 작동하고 있다. 이 폭력 관계는 개인의 창발성이나 자유의지 대신 강력한 통제와 동원의 방식으로 유지되며 그 최상위 이데올로기는 ‘국위선양’이라는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다. 비리와 폭력은 바로 이 낡은 시스템의 상처다.”

정 평론가는 개발 시대부터 유지돼 온 ‘국위선양’ 메시지가 스포츠의 가치를 ‘극기’ ‘승리’ 등으로 좁혀 선수들을 경기장 안에 고립시킨다고 말합니다. 선수들이 메달만을 위해 육성되며 성적 지상주의와 폭력에 노출된다는 겁니다.

그는 “스포츠를 경기장 밖으로 꺼내야 한다”며 “이는 스포츠와 사회의 다중적 교류, 그에 따른 문화콘텐츠 발현 및 스포츠 산업의 확장으로 연결”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국민체육진흥법 제1조(목적)

이 법은 국민체육을 진흥하여 국민의 체력을 증진하고, 건전한 정신을 함양하여 명랑한 국민 생활을 영위하게 하며, 나아가 체육을 통하여 국위 선양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2020년 8월 개정▶ 이 법은 국민체육을 진흥하여 국민의 체력을 증진하고, 체육활동으로 연대감을 높이며, 공정한 스포츠 정신으로 체육인 인권을 보호하고, 국민의 행복과 자긍심을 높여 건강한 공동체의 실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2020년, 시대의 흐름에 맞춰 국민체육진흥법 목적에서 ‘국위선양’이 삭제됐습니다. 이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체육이 과거 개발시대의 국위선양의 도구로 기능하지 않아야 한다”는 “국민체육의 목적이 국위선양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법률개정을 제안했다고 밝혔습니다.

체육선수를 둘러싼 문화와 제도도, 국가가 아닌 ‘개인의 행복과 자긍심’을 중심으로 차례차례 재편해야 하지 않을까요. 병역제도는 물론이고요.

[뉴스레터 점선면] 금메달 따면 군대 안 가도 될까?

체육요원과 현역 군 복무와의 ‘형평성’ 확보는 군 복무 부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체육선수들의 이른 은퇴와 실업은 군 복무 단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닌 만큼 메달만을 향한 선수 육성도 재고될 필요가 있습니다.

세 줄 점선면

▶ 50년 전 ‘국위선양’하던 체육선수들을 위해 마련됐던 체육요원 제도는 큰 개선 없이 명맥을 유지해 왔습니다.

▶ 체육선수들에게 현역 군 입대는 곧 은퇴를 의미합니다. 체육요원은 경력 단절을 막기 위한 거의 유일한 방법입니다.

▶ 체육요원과 현역 군 입대 사이 형평성 논란이 지속적으로 제기됩니다. 군복무 제도와 체육요원 제도의 전반적 개편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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