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1주기

놀러 가서, 죽었다

조형국 기자

1년 전 서울 도심 한복판 참사 이후

‘도시는 놀러 갈 때도 조심해야 할 곳’

‘누가 책임지나’ 재판은 1년째 표류

망언·무표정의 공권력도 아픔 헤집어

유족 조롱·희생자들 향한 혐오 ‘활개’

생존자·유족들 고통 여전···국가는?

10·29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벌어졌던 해밀턴호텔 골목을 인근 상가 간판 조명이 비추고 있다. |권도현 기자

10·29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벌어졌던 해밀턴호텔 골목을 인근 상가 간판 조명이 비추고 있다. |권도현 기자

놀러 가서-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사촌 동생의 취업을 축하하지 않았을 것이고, 생일 턱을 내라 부르는 친구들을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노트북이 얼마나 무겁다고, 그걸 집에 두고 오려고 약속 장소를 이태원으로 바꾸지도 않았을 것이다. 주말 저녁까지 일하러 가야 하냐는 아내의 투정을 뒤로하고 거래처 지인들을 만나러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정말 마지막이 될 줄 알았더라면 입대 전 마지막 데이트라며, 실습 전 마지막으로 재밌게 놀자며, 결혼 전 마지막 파티라며 사랑하는 연인과 동료·친구들을 만나려던 욕심을 접었을 것이다.

1년 전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전대미문의 참사 이후 도시는 ‘놀러 갈 때도 조심해야 하는 곳’이 됐다. 예상할 수 없었던 재난은 우리 공동체의 민낯을 드러냈다. 서로가 서로의 안전을 지킬 것이라는 기대, 국가가 시민을 보호할 것이라는 신뢰는 희미해졌다. ‘놀러 가서 죽었다’ 일곱 글자는 마치 그날의 좁은 골목처럼, 안전과 책임을 죽음에 압착시켰다.

살릴 수 있는 죽음이었다. “압사당할 것 같아요.” 그 신고는 압사 발생 4시간 전부터 빗발쳤다. 그에 앞서 ‘인파 관리가 필요하다’는 보고가 경찰 윗선에 올라갔다. 경고음은 곳곳에서 울렸지만 대응은 지지부진했다. 그날 집회를 막으려 용산 대통령실 앞에 집결했던 경찰은 수백명이 깔리고, 다치고, 죽고난 뒤에야 이태원에 왔다. 현장 대응 권한을 가진 자들은 스스로 결단하기보다 명령을 기다렸다. 연락이 곧장 닿은 이들은 그나마 나은 축에 속했다. 어떤 지휘관들은 연락조차 닿지 않아, 참사 소식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도배한 후에야 황급히 외출복을 챙겼다. 희생자들이 벽과 벽, 사람과 사람 사이로 빨려 들어가도록 내버려 둔 것은 망가진 국가 시스템이었다. 비명과 눈물 속에서 손과 팔을 잡아당기던 현장 요원들은 순식간에 사그라드는 삶의 불꽃을 속수무책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살아생전, 각자의 온도로 주변을 밝히고 데운 159개의 불꽃이었다. ‘수술방에서 일할 때 보람을 느낀다’며 간호대에 진학한 늦깎이 대학생, ‘도와야한다’며 위험을 무릅쓰고 인파에 뛰어든 방사선사, ‘소중한 이름이 잊힐까 봐’ 엄마 대신 미화씨라 불렀던 아들,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며 경찰관이 되려던 동생…어느 하나 가볍지 않은 159개의 사연이 그날 밤과 그 이후 허망히 소멸했다.

허망함은 금세 기시감으로 바뀌었다. 애도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는 듯, 일주일의 ‘국가애도기간’이 끝나자마자 윤석열 대통령은 “책임은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묻자”고 했다. 국무총리는 외신 간담회에서 생긴 동시통역 문제에 “잘 안 들리는 것을 책임질 사람의 첫 번째와 마지막 책임은 뭔가”라며 웃었다. 행정안전부 장관은 “미리 경찰을 배치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고 했다. 용산구청장은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했다”고 했다. 미처 슬퍼하지도 못한 이들 앞에서 정부는 너무 빨리 이성을 되찾았다.

책임은 말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를 두고 시작된 재판은 1년째 표류 중이다. 지방자치단체와 경찰, 행정안전부와 국무조정실, 참사 현장에서 지근거리에 있던 용산 대통령실까지 어느 누구 ‘내 탓이오’ 나서는 이가 없었다. 경향신문이 입수한 검찰의 이태원 참사 수사기록과 공판기록을 보면, 이들은 1분 1초 단위로 당시 상황을 복기하고, 공문의 토씨 하나를 따져 묻고, 카카오톡 대화의 앞뒤 맥락을 강조하며 저마다의 이유로 ‘네 탓이오’라고 외쳐댔다. 재난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무엇 하나 변한 게 없었다. 9년 전 세월호 참사 때 선원과 선장과 업체와 조합과 해경과 정부가 무책임의 연쇄고리를 만든 것처럼, 지난여름 오송 지하차도 참사 때 홍수통제소와 청주시와 충북도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 서로 책임을 미룬 것처럼.

책임있는 자들이 책임 소재를 놓고 다투는 사이 정부는 가족을 잃은 이들을 방치했다. 슬픔을 보듬고 다독이기는커녕 숨기고 지우려 했다. 공감이 결여된 망언과 무표정한 공권력이 이들의 아픔을 헤집었다. 지하 35m 깊이에 추모공간을 만들라고 했고, 분향소를 세우려는 이들을 막고 끌어냈다. 지워지고 싶지 않아 광장에 세운 영정사진에 수천만원 변상금 통지서를 보냈다. 살아남고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희생자에게 국무총리는 “치료를 받겠다는 생각이 더 강했으면 좋지 않았을까”라고 했는데, 유족은 그 발언을 장례식장에서 들었다. 이태원 참사 진상을 추궁하는 국회 국정감사에서 대통령실 참모들은 필담을 주고받았다. “웃기고 있네.”

정부가 깔아놓은 판 위에서 혐오가 활개쳤다. 재갈이 풀린 혐오는 그날 이태원에 갔다는 이유로 희생자들을 비난하고, 그들을 막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족들을 조롱하고, 그들을 돕는 이들을 “참사 영업상”이라고 매도했다. 가짜뉴스를 잡는 데 열심인 정부는 단 한 번도 유족의 가슴에 비수로 꽂힌 ‘놀다가 죽었다’는 식의 언설을 제지하지 않았다.

목숨같은 가족을 잃고 지내온 1년, 유족들은 다시 거리로 나선다. “권력 있는 부모가 아니어서 미안해.” 아직 자식의 사망신고도 하지 못한 부모의 응어리진 한이 한철 냉소에 꺾일 리 만무하다. “너희가 겪었던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엄마가 힘들지만 노력하며 살아갈게. 당당한 모습으로 너에게 갈게.”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그 약속이 ‘딱딱 물은 책임’보다 무딜까.

이태원 참사 이후 1년, 국가는 159명의 죽음을 달래는 데 실패했다. 앞선 참사에서 그랬듯, 정부는 비 내리는 아스팔트 위로 이마를 찧으며 이어간 유족의 행진을 막지 못했다. ‘나라 구하다 죽었냐’ ‘놀다 죽은 걸 왜 국가가 책임지냐’는 폭언에 “놀러 간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책임이다”라는 말 한마디를 끝내 스스로 내놓지 않았다. 그 결과 대한민국의 2023년은 애도와 연민, 연대와 공감이 지워진 채 역사에 남게 됐다. 159명과, 그 유족들과, 여전히 고통에 신음하는 생존자와, 이들의 슬픔에 공분하는 모든 이에게 이날의 국가는,

-죽었다.


①묻지 못한 책임


②밝히지 못한 진실


③4개의 생일


④살아남았다는 이유로


⑤참사가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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