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앞 경사로 깔면 누구나 1층이 있는 삶”

강은 기자

핫플 성수동 신선한 시도

서울 성북구 성수동의 한 아이스크림 가게 사장 김태진씨(왼쪽)와 이충현 건축사(가운데), 홍윤희 협동조합 무의 이사장이 지난달 31일 가게 입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서울 성북구 성수동의 한 아이스크림 가게 사장 김태진씨(왼쪽)와 이충현 건축사(가운데), 홍윤희 협동조합 무의 이사장이 지난달 31일 가게 입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보행 약자에 이동권 보장
협동조합 ‘무의’ 프로젝트
가게 찾아다니며 설치 권유
“어려운 점은 건물주 설득”

“안녕하세요. 저희는 ‘1층이 있는 삶’을 위해 경사로를 놓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습니다. 휠체어 손님들이 편하게 들어올 수 있게 설치를 해드리는데요….”

협동조합 ‘무의’의 홍윤희 이사장은 한동안 서울 성동구 성수동 ‘아틀리에길’ 일대 식당과 카페를 돌며 같은 인사를 반복했다. 인사말을 맺을 때쯤이면 은연중에 상대방 표정을 살피는 버릇도 생겼다. 홍 이사장이 방문한 가게들마다 어김없이 “떨떠름한” 반응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사장님 안 계세요.” “필요 없어요.” “경사로가 뭐예요?”

장애인 이동권 개선을 위한 콘텐츠를 만드는 협동조합 무의는 성수동 상점에 경사로를 놓는 ‘모두의 1층’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공익변호사 단체인 사단법인 ‘두루’, 지역 건축사무소 관계자 약 10명과 힘을 모았다.

경사로 제작 및 설치에 드는 비용은 아산나눔재단에서 지원을 받았다. 가게를 찾아갈 때마다 “무료로 설치해드린다”는 설명도 빼놓지 않지만 제안을 받아들이는 곳은 매우 드물다. 지금까지 성수동 일대 가게 4곳에 경사로가 설치됐다.

지난달 31일 김태진씨(45)가 운영하는 아이스크림 가게 입구에는 알루미늄 소재의 20㎝ 높이 경사로가 놓여 있었다.

‘1호 경사로’의 주인공인 그는 ‘왜 경사로를 설치했느냐’는 질문에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건물 외관이 크게 바뀌거나 다른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잖아요. 마침 가게 열 때 바닥 공사가 너무 높게 된 것도 걸렸거든요. 얼마 전에도 휠체어를 탄 젊은 남성분이 편하게 들어오셨는데 ‘경사로 놓길 잘했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성수동은 길이 좁고 노후 주택이 많은 지역이다. 개성 있는 상점이 다수 들어서 젊은이들이 몰리는 ‘핫플’(인기 장소)이 됐지만 이동약자들이 다니기에는 여전히 불편한 곳이 많다. 프로젝트 관계자들이 성수동 아틀리에길에 있는 272개 점포를 조사한 결과 경사로가 마련된 가게는 36곳(13%)에 불과했다.

일본 라멘 가게를 운영하는 조용진씨(49)는 김씨보다는 걱정이 컸던 사례다. 그는 “건물주에게 이야기하는 게 가장 부담이 됐다”고 말했다. “얘기하는 게 편하지는 않죠. 괜히 트집 잡힐 수도 있고. 다행히 저희는 흔쾌히 허락을 받았지만….” 조씨는 “내가 정의롭지는 않아도, 좋은 일을 방해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조씨는 “점주들이 더 흔쾌히 경사로를 놓으려면 지자체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자체가 경사로 제작 및 설치에 드는 비용을 지원해주거나, 경사로 두는 데 구청 허가가 필요한 경우 그 절차를 간소하게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성동구는 ‘모두의 1층’ 팀 의견을 반영해 ‘경사로 설치 조례’를 입법 예고했다. 조례안은 경사로 설치 비용 지원 등을 구청장 책무로 규정했다. 지자체 예산으로 경사로 설치를 지원할 수 있게 하는 근거도 명시했다. 홍 이사장은 “다른 지자체와도 협업을 늘려서 경사로 설치가 더 널리 확대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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